각주구검(刻舟求劍)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강을 건너는 사람이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바로 배 위에 그 자리를 표시했다가 배가 건너편 뭍에 도착하자 칼자국 표시 아래의 물속으로 뛰어들었다는 이야기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찰금편(察今編)>에 나오는 이 고사는 일반적으로 융통성 없이 현실에 맞지 않는 어리석음을 뜻한다.

  대부분 이 이야기를 접하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반응을 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비유를 곰곰이 따져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칼을 떨어뜨렸을 때 표시한 곳은 과거의 위치이다. 배가 뭍에 도착한 현재에서는 과거에 표시한 위치에서 칼을 찾을 수 없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빈번하게 과거의 관점, 방식으로 현재를 재단하려고 한다.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의 고리타분함을 비꼬는 표현으로 라떼 이즈 홀스(Latte is horse)’라는 말이 유행했다. 기성세대가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을 할 때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한다는 점을 포착한 기발한 신조어이다. 그런데 나 때는이라는 시점과 과거에 새긴 칼의 위치는 변화한 지금 현재를 간과하였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사한 발상이다.

  변화는 필연적이다. 속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인간 사회는 변화하였고, 변화하고 있다. 변화는 새로움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새로움이 낯설음이 되는 경우이다. 인간에게는 낯선 것을 거부하고, 익숙한 상태를 지속하려고 하는 심리적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기준으로 삼으려 하고, 새롭게 변화한 것은 낯선 것으로 치부하여 수용하기 꺼려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것은 과거에 익숙한 이들에게 낯설 뿐, 새로움과 더불어 성장한 이들에게는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간격이 물살을 지나친 배 안의 표시나 때는을 만드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변화와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과거에 머물 수밖에 없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미디어와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면서 과거의 시각과 방법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일들이 대량으로 발생하고 있다. 대학도 디지털 문화 속에서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라 불리는 새로운 세대들이 중심이 되었다. 이들은 SNS, 멀티태스킹, 인터랙티브, 컨버전스 컬처 등 이전과 다른 소통 방식과 문화적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교수와 학생이 소통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시점과 위치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 때는보다는 지금은어떠한지를 알려고 해야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스템이 낯설지만 새로운 환경을 이해해야 한다. 최소한 지금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내가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다름을 틀림으로 착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 마음 속에 새긴 칼의 위치에 집착하지 말고 배의 움직임, 즉 변화와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면 내가 표시한 그곳 아래로 아무리 뛰어들어도 칼을 찾을 수 없다.

 

이명현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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