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 중대신문
  • 승인 2020.03.3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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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좋은 학생이었던 적이 없었다. 제도교육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 때문이었는지, 어린 시절의 설익은 반항심 때문이었는지, 제도교육에 정면으로 저항할 용기는 없으면서 항상 조금씩은 엇나가려고 했다. 대학생이 돼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강단에 선 이들을 불신했다. 강의를 열심히 들은 기억보다는 ‘왜 저런 내용을 배워야 하지’라며 따분해했고, 강의 내용의 이면에 숨은 정치적 편향성을 의심했으며, ‘왜 본인의 주장만 내세우지’ 하며 언짢아했다.

  심지어 ‘제도권을 바꾸기 위해 제도권으로 들어간다’는 나름 비겁한 변명을 하며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또 박사학위를 위해 유학 생활을 하면서도 제도권에 대한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았다. 읽으라는 글을 굳이 읽지 않았고, 교수님이 서 있는 입장을 굳이 따르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우여곡절 끝에 사회학과 교수가 되어 강단에 서게 됐다.

  앞자리에 앉은 친구들에게 마음이 가고,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있는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갖는 건 어쩔 수 없다. 강의가 끝나고도 남아서 질문하는 친구들을 보며 그 열정에 놀란다. 동시에 과거의 나와 같은 친구들도 발견한다. 굳이 강의실 맨 뒤에 앉는 친구들, 굳이 강의 중에 출튀를 하는 어드벤쳐를 즐기는 친구들, 굳이 시험을 열심히 준비하지 않는 친구들,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의 학점은 기대하는 친구들.

  주변에서 많은 이들이 ‘너도 그 자리에 가면 똑같이 될 거야’라고 말했고, 중앙대에 온 지 2년이 지난 지금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수업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강의자의 위치와 학점을 위해 듣기 싫은 수업도 들어야 하는 학생의 위치는 확실히 다르다. 하지만 동시에, 위치의 변화에 따라 표변하는 사람은 되지 않으려 한다. 과거의 학생이었던 내가 납득할 수 있는 교수가 되려 노력하고 반성한다,

  무엇보다, 차별하지 않으려 한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목적은 제각기 다르고 이제까지의 삶의 궤적도 미래의 꿈도 다양하다. 열심히 할 수도, 열심히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능력과 노력에 따라 학점을 부여할 뿐, 마음으로 구별하지는 않으려 한다.

  또한 스스로의 서투름을 감추지 않으려 한다. 원래 사회과학 공부 외에는 만사가 서툰 사람이었지만, 굳이 서투름을 숨기고 모든 것을 아는체하는 강의자가 되지 않으려 한다. 나아가 학생들로부터 최대한 배우려 한다. 사회는 계속 변화하고 20년 후에는 그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사회가 것이다. 그들의 시대를 예측하기 위해서 그들을 읽고 이해하고 배우려 한다.

  나를 알던 옛 친구들은 내가 불성실한 학생이었던 죄로 학교에 계속 묶여있는 벌을 받는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적어도 마음은 여전히 대학생이다. 소싯적의 마음을 잊지 않고, 제도교육에 한없이 비판적이었던 나를 망각하지 않고, 과거의 내가 부끄러워하지 않는 현재의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서찬석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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