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의 변신
  • 최지환 기자
  • 승인 2020.03.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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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술, 갈색술 지겨워 죽겠다는 당신, 

가성비와 다양성으로 무장한 전통주의 매력에 빠져보자

소주와 맥주는 지겹다. 위스키랑 보드카는 비싸다. 그렇다면 전통주는 어떨까? 전통주는 아재들이나 먹는 올드한 술이라고? 천만의 말씀. ‘뉴트로’ 열풍과 ‘혼술’ 트렌드에 힘입어 독특한 아이디어와 질 좋은 재료, 정성 어린 손길로 무장한 우리술이 등장하고 있다. 수백년 전 고문헌을 발굴해 만든 술부터 우리 농산물에 유럽 양조기법을 접목해 만든 술까지 무려 2000여종이 넘는다. 드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전통주를 함께 탐험하며 슬기…, 아니 술기로운 주류생활을 해보자. 혹시 아는가. 당신의 인생술을 찾을 수 있을지.

DOK 브루어리의 ‘걍 즐겨’, 한강주조의 ‘나루 생 막걸리’ 

  그래서 전통주가 뭔데

  맥주는 보리를 발효시킨 술. 와인은 과일로 빚은 술. 그럼 전통주는 뭘까? 법률상 전통주는 민속주와 지역특산주로 구분된다. 국가무형문화재, 시·도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제조하거나 대한민국식품명인이 제조한 술이 민속주다. 그리고 농어업 경영체 및 생산자단체가 직접 생산하거나 제조장이 소재한 관할 지자체와 인접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주원료로 제조한 술이 지역특산주다.

  어렵다. 술 한잔하자고 법전까지 살펴봐야 한다니. 좀 쉽게 설명해달라고 전통주갤러리 이정희 부관장에게 부탁했다. “우리 농산물로 빚은 술이라면 다 전통주라고 할 수 있죠.” 와인이나 브랜디 같은 외국의 제법을 차용했더라도 지역의 쌀, 과일 등을 재료로 쓰면 전통주라는 설명이다.

  곡물이나 전분을 함유한 원료를 누룩이나 효모로 발효하면 술이 된다. 이 술을 거친 천으로 거르면 우리가 흔히 막걸리라 부르는 탁주다. 맑은 부분만 떠서 고운 천으로 거른 술은 약주라 부른다. 약주라는 이름 때문에 약재가 들어간 술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약재를 넣지 않은 술도 약주라고 부른다. 일제가 지난 1909년 개정한 주세법에서 일본식 맑은술을 청주, 한국식 맑은술을 약주라 부르던 것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머루, 사과, 포도 등 과일을 발효 시켜 만든 술은 과실주다. 요즘에는 복숭아, 한라봉, 오디 등 과일을 사용해 빚은 참신한 술도 많다. 이들 발효주를 끓여 알코올만 증발시킨 후 다시 냉각해 모은 술이 증류주다. 안동소주 같은 증류식 소주가 대표적인 한국 증류주라고 할 수 있다.

  전통주의 시련과 부활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전통주는 우리 일상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집집마다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술을 빚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우리 술의 맥이 끊긴다. 이어 1960년대 쌀로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하는 「양곡관리법」을 거치면서 우리의 주류문화는 희석식 소주와 맥주가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 2008년 전통주의 주세를 50% 감면 하도록 「주세법」이 개정되고 주류제조면허 발급기준도 완화하면서 2008년 275개밖에 불과했던 지역특산주 제조면허는 꾸준히 늘어 지난 2018년 973개로 늘었다. “과거에는 양조면허를 받는 게 어려웠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주류면허가 쉽게 나오는 편이라 젊은이들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술을 도전할 수 있죠.”라고 이정희 부관장이 설명했다.

  주세가 낮아 가성비가 좋다는 것도 장점 중 하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전통주의 최대 장점은 다양성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먹는 희석식 소주는 고도로 정제된 알코올인 주정과 증류주를 섞고 조미료를 더해 만들어진다. 덕분에 맛이 전부 비슷비슷하다. 하지만 증류식 소주의 경우 증류 과정에서 원재료의 성분이 녹아나 고유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다. ‘문배술’ 같은 경우에는 문배(배의 한 종류)의 향, ‘황금보리’의 경우 구수한 보리 향이 난다. 같은 안동소주라 하더라도 사용되는 누룩과 제조방식이 달라 양조장마다 각기 다른 맛을 뽐낸다.

  탁주도 밀이나 정부비축미, 수입쌀로 빚은 싸구려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최근에는 개성을 뽐내는 술이 등장하고 있다. 쌀의 양을 두 배 늘려 쌀의 단맛을 강조한 ‘나루 생 막걸리’, 탄압 속에서도 이어 내려오는 전통 누룩을 보존해 복잡한 맛을 자랑하는 ‘금정산성 막걸리’,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천연 탄산을 극대화한 ‘복순도가 손막걸리’ 등 각기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배상면주가의 ‘심술 알쓰’. 알쓰는 ‘알코올 쓰레기’의 줄인말이 아니라 ‘알코올 쓰담쓰담’의 줄인말이다.

 

  촌스러운 디자인을 벗어 던진 전통주도 줄이어 등장하고 있다. ‘걍 즐겨’는 현대미술 같은 기하학적 라벨을 디자인했다. ‘심술 알쓰’는 파우치 형태의 디자인과 끈을 연결할 수 있는 구멍, 시력테스트를 패러디한 ‘꽐라테스트’ 등 요소 덕분에 국제 디자인 공모전인 ‘iF 디자인 어워드 2020’ 포장 부분에서 상을 받았다.

전통주용으로 개발된 ‘플레이버 휠’. 맛과 향을 묘사하는 89개 단어들로 구성했다. 플레이버 휠을 참고해 전통주의 맛을 음미해보자.

 

  혼술과 함께하는 전통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덕분에 강제로 방콕해 보내는 하루하루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위대한 택배 아저씨 덕분이다. 뭐든지 택배로 주문할 수 있는 축복받은 시대다.

  이런. 한가지 문제가 있다. 두눈 씻고 봐도 소주랑 맥주를 파는 곳이 없다. 다른 건 다 팔 수 있어도 주류 구매는 안 된다. 딱 하나 예외가 있다. 바로 전통주다. 전통주에 한해 온라인 구매가 가능하다. G마켓, 11번가, 인터파크 등 오픈마켓뿐만 아니라 네이버에서도 검색해 구매할 수 있다. 원하는 제품을 종류별로 골라 주문할 수 있는 ‘술팜’ 같은 전통주 전문 온라인 쇼핑몰도 등장했다. 덕분에 G마켓에서 전통주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59% 느는 등 전통주가 인기를 끌고 있다. 왁자지껄한 술집이 부담스러운 요즘. 집에서 차분히 전통주를 음미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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