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백(Aside)은 연극 용어로 ‘인물이 관객에게 하는 말’을 의미합니다. 인물의 곁에서는 듣지 못하기 때문에 오직 관객에게만 들리는 말이죠. 사회를 하나의 무대로 본다면 어떨까요. 이번 학기 중대신문 사회면은 우리 사회라는 무대 위,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방백을 할 수밖에 없던 인물들을 조명하려 합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이 극의 관객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응하셨다면 이번 주는 “청소년의 성교육에 관한 방백”으로 1막을 열어보려 합니다. 인터미션 후 2막까지 꼭 자리를 지켜주세요. 이제 시작합니다.

 

 

성 고정관념 강화하고

성적지향성 인정하지 않아

 

시대착오적 성교육으로

고통받는 청소년들

 

지난 2015년 「학교성교육표준안」(「표준안」)이 발표됐다. 이는 시대착오적인 성폭력 대응법 등을 이유로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16년 7월 교육부는 누리집에 공개했던 학교 성교육 관련 교사용 자료를 모두 삭제 처리했다. 다음해 해당 자료를 수정 배포했다. 그러나 보완했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표준안」에는 너무도 많은 문제가 나타난다.

  다양 성(性)을 인정해야

  한국은 성(性)이라는 한 글자로 sex, gender, sexuality를 모두 지칭한다. 그렇기에 성교육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성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표준안」에서는 성교육의 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하지 않는다. 한국여성의전화 오은영 활동가는 성교육의 이유를 ‘삶의 행복’이라고 서술한 부분에서 의문을 느꼈다고 전했다. “성교육은 인권 고양의 문제이자 자신의 몸을 알아가는 목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또한 「표준안」에서는 성을 삶의 행복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데 이처럼 서술한 부분이 낯설게 느껴지네요.”

  「표준안」은 성을 임신과 출산에 관계해 피상적으로만 알려준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백목련 활동가는 생명의 잉태를 성의 이유라고 표현하는 방식은 누군가에게 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신과 출산이 성의 이유라면 난임 부부, 성소수자들에게는 굉장한 낙인이 될 거예요. 성은 자신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중요한데 재생산 중심의 성교육은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배제하죠.” 이에 생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성을 지양하는 서술도 문제다.

  양현아 교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는 「표준안」의 시대착오적인 면을 지적했다. “현대 사회에서 고정된 성 역할은 허물어지는 추세입니다. 「남녀고용평등법」을 비롯한 법도 월경 또는 임신과 같이 생물학적 필요를 제외하고는 성 역할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제정돼 있죠. 그러나 교육부의 「표준안」은 성 역할을 직접적으로 인정하고 있어 비교육적입니다.”

  「표준안」은 생물학적 기준으로 여성과 남성을 분류하고 각 성별에 관한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있다. ‘여성은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 자각하고 대리적인 정서적 반응을 한다’, ‘남성은 정서적인 공감보다는 대안적인 행동, 즉 문제 해결적인 행동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오은영 활동가는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내용이 성 고정관념을 강화한다고 이야기한다. “남성은 성욕이 강하고, 여성은 감정적이라는 방향으로 성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있어요. 여성폭력의 경우 성별 권력 관계에 기반을 두는 폭력이 많은데 그 권력 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죠.”

  백목련 활동가는 「표준안」이 개인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성애를 바탕으로 결혼을 해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사람들을 정상이라고 분류하죠. 또한 가정은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음에도 일정한 시기가 되면 결혼을 해서 원가정에서 독립하고 자녀를 낳아 내 가정을 구성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건 상당히 큰 문제예요.” 이는 「표준안」에 삽입된 신생아 돌보기와 같은 내용에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기도 하다.

  특정한 방식의 삶을 정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오은영 활동가는 「표준안」이 청소년들로 하여금 정체성을 고민하기 힘들게 한다고 설명했다. “특정한 생애주기를 기반으로 서술돼 있고 다양성을 보여주지 못하니 이외의 방향을 상상할 수 없게 하죠. 지금은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없는 것 같아요”

  「표준안」 운영 시 유의사항에는 ‘양성평등의 관점을 유지하도록 한다’고 명시돼있다. 이어 「표준안」은 ‘성적지향’ 용어를 사용 금지하고 ‘성소수자 인권’을 언급하지 않는다. 탁틴내일청소년성문화센터 한송이 센터장은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성교육을 비판했다. “이성애를 제외한 성소수적 지향은 비정상적이라고 간주하고 있어요. 청소년들의 판단을 미숙하다고 치부하고 그들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한 행보입니다.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혐오를 조장하고 인권침해를 당연시하죠.” 카츠미(15)씨는 성적지향성에 관한 이해 부족으로 성소수자로서 혐오를 받을 때가 있다고 밝혔다. “청소년 상담소에서 성적지향성을 부정하는 폭력적인 시도를 하거나 ‘운동을 하라’는 발언을 하며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예도 있어요. 이러한 태도는 성소수자들에게 고통을 줍니다.”

  지난 2017년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진행한 학생의 성 권리 인식 및 경험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적 지향에 대해 고민한 학생은 전체의 13.3%에 달한다. 성소수자와 관련한 정보 및 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한 학생도 전체의 33.4%를 차지했다. 「표준안」에 따른 성교육이 청소년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제 5?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대한민국 본심의’에서도 교육부는 성교육에 성소수자를 포함할 계획이 없다고 답변했다.

  피해를 어떻게 피해?

  「표준안」은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성 친구와 단둘이 집에 있을 때’에는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라고 서술하며 ‘친구들끼리 여행 갔을 때’에는 ‘친구들끼리 여행 가지 않는다’고 대처 방법을 제시한다. 백목련 활동가는 이러한 성폭력 예방법은 무의미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그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유용한 지침이 아니라 그 상황 자체를 제한하라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또한 성폭력 예방을 위해 피해자가 해야 할 행동지침을 제시한다. 오은영 활동가는 「표준안」이 성폭력 위기에 놓인 피해자에게 책임을 부담시킨다고 전했다. “사실상 성폭력은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성폭력을 피해자가 피해야 하는 것으로 제시해요. 피해자가 피해 상황에서 거절을 잘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죠.” 박시현 교수(간호학과)는 해당 내용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되레 자신이 올바른 예방을 하지 못했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피해자를 비난하는 방향은 성폭력 및 젠더 폭력 예방 차원에서 지양하는 바죠.” 한송이 센터장은 이런 상황이 피해를 지속하고 심화한다고 언급했다. “피해가 발생하면 최대한 빠르게 상담을 받고 치료하는 게 최선이에요. 그런데 성폭력 피해자가 잘못했다는 메시지는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게 하죠.” 이러한 「표준안」은 ‘피해자 되지 않기’보다 ‘방관자 되지 않기’를 지향하는 성교육 현장의 담론에 비해서도 훨씬 뒤처져 있다.

  피해자에게 요구하는 성폭력 대응 방법마저도 부적절하다. 「표준안」 운용 자료는 성폭력 위기 시 대응 방법을 두가지로 구분해 제시한다. 첫번째는 급소를 발로 차거나 깨물거나 할퀴는 등 가해자를 공격하라는 내용이며 두번째는 성병이나 에이즈 감염자로 위장하거나 간질 발작을 흉내 내는 행동으로 가해자의 성폭력 의지를 없애라는 내용이다. 이미은 청소년지도사는 이러한 방법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체력적인 면에서 우월하거나 피해자가 도망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도움이 되지 않아요. 오히려 가해자의 심기를 건드려 더 끔찍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인 성폭력 위기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다.

  피해를 당한 이후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교육도 부족하다. 박시현 교수는 피해자가 공공기관에 신고하는 행위를 격려하고 그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전했다. “성폭력은 가족 혹은 교사에 의해서도 행해지므로 그들에게 이야기하라는 내용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어요. 공식적인 방법으로 신고하고 도움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소중한 성, 존중하는 교육

  「표준안」은 최근 제기된 디지털 성폭력, 스쿨 미투 등의 성범죄 관련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박지원(17)씨는 요즘 논의되는 성범죄 내용을 성교육 과정에서 접하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스쿨미투, 디지털 성폭력과 같이 최근 발생한 이슈들을 성교육 강의나 책에서 본 적이 없어요. 이런 내용이 성교육에 포함된다면 피해자를 위해 미투 운동을 벌이고 연대하며 힘을 더할 수 있을 겁니다.”

  양현아 교수는 시대 상황을 고려한 성교육 연구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금 세대는 SNS를 통해서 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메신저를 통한 음란행위가 이뤄지기도 하죠. 오늘날 성교육에 이러한 정보의 비중을 더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시현 교수는 「표준안」에서 ‘존중’의 개념을 가르치는 부분도 미약하다고 이야기했다. “자아존중 및 상대에 대한 존중은 성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개념이에요. 상대의 인권을 존중하는 교육이 필요하죠.” 자신의 성적지향성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피해 상황을 이해하고, 계속해서 변화하는 성범죄 정보를 제공하는 성교육.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우리는 6년째 이어가야만 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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