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술마을’은 국내 예술가 중에서도 대학생 또래가 많은 청년예술가의 작품활동에 주목합니다. 청년들은 마을 어디선가 그들만의 표현 방식을 통해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이번 중대신문 문화면에서는 ‘해체’를 주제로 한 김성현 안무가의 공연 <borderline>을 다녀왔습니다. 똑똑, 문을 두드려보세요. 우리 옆집에 어떤 청년예술가가 살고 있을까요?

사진제공 김성현 안무가
사진제공 김성현 안무가
공연 중 어항을 형상화한 장면
공연 중 어항을 형상화한 장면
실물 연어가 하강하는 장면
실물 연어가 하강하는 장면

 

바다를 동경하던 아이가
힘차게 장벽을 뛰어올라
그리운 고향을 찾기까지

연어는 본디 강에서 태어나 자유를 찾아 드넓은 바다로 간다. 이윽고 산란기가 되면 자신이 살던 강으로 되돌아온다. 세찬 물살을 거슬러 경계를 넘어온 고향에 유전자를 남기고 나면 장렬히 생을 마감한다. 강과 바다 사이에서 피고 지는 연어의 삶과 죽음. 우리 주위에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경계가 존재한다. 이 역시 연어의 기나긴 여정처럼 쉬이 넘나들 수 없다. 

  경계를 모두 해체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해체의 사전적 의미는 ‘단체, 조직 따위가 흩어지거나 흩어지게 하는 것’으로 혼란, 갈등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해체는 기존 경계를 허문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도 볼 수 있다. 서찬석 교수(사회학과)는 해체가 새로운 시작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기존 조직이 해체됨에 따라 새로운 집단이 형성되기도 해요. 예를 들어 핀란드 기업 ‘노키아’는 도산했지만 해당 기업이 남긴 인력과 자본은 여러 스타트업 기업 탄생의 밑거름이 됐죠. 따라서 해체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어요."

  김성현 안무가의 현대무용 공연 <borderline> 역시 해체의 긍정적 기능을 주제로 한다. 해당 공연은 보이지 않는 선으로 우리를 갈라놓은 모든 경계를 허물고 자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생생(生生)한 현장 속으로
  경쾌한 음악에 맞춰 물결치는 평온한 바다. 이윽고 음악 소리가 잦아들고 배경은 해면 아래로 서서히 내려간다. 심해에 다다랐을까. 푸른 조명과 함께 한 남자가 헤엄치며 등장한다. 이어 천장 중앙에 매달려있던 생선(生鮮), 연어 한 마리가 내려온다. 남자는 연어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칼을 집어 들어 조각조각 해체하기 시작한다. 

  김성현 안무가는 ‘해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실물 생선을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무대 위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을 고민했어요. 회를 뜨는 퍼포먼스는 아무도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죠.” 그러나 실제 연어가 무대에 오르기까지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다. 새로운 시도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공연장 측에서는 생연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우려가 컸어요. 하지만 저는 모형을 사용하면 해체를 직접 보여줄 수 없으니 공연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죠. 우여곡절 끝에 공연장의 허가를 받아 생선을 사용했어요.”

  이후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서 공연이 진행된다. 적막 속에서 남자는 해체된 연어를 헝겊으로 조심스럽게 감싼다. 수의를 입은 연어가 상여에 실리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연어를 위한 장례식을 시작한다. 연어를 위해 인간이 장례를 치러주는 터무니없는 광경에도 관객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김성현 안무가의 예상을 벗어난 반응이다. “관객들이 많이 웃을 줄 알았어요. 한편으로는 관객이 무대와의 경계를 지키려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해도 괜찮은데 말이에요.”

  반전의 희열
  장례식이 끝나자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무용수들도 발랄한 의상으로 갈아입고 다시 등장한다.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한 손에는 소형 카메라가 쥐어져 있다. 무대 뒤를 채운 배경화면은 네 칸의 바둑판 모양으로 나뉘어 네 명의 무용수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의 시선을 보여준다. 얼굴 정면이 화면을 꽉 메웠다가 낮은 각도에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뜬금없이 천장이 보이기도 한다. 생기 넘치는 무용수의 움직임을 따라 카메라도 발랄하고 엉뚱한 모습을 담아낸다. 

  김성현 안무가는 이 장면이 어항을 형상화했다고 말한다. “어항을 볼 때 물고기와 사람 사이에는 유리라는 경계가 있잖아요. 우리가 볼 수 없는 카메라 이면의 시선 또한 경계에 닿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화면에 나오는 무용수들의 모습이 관객에게는 마치 어항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게 연출했어요.” 소형 카메라를 통해 관객은 카메라를 통해 무대와 객석 사이 경계를 넘어 무대 밖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신명 나는 춤사위가 끝나고 빈 무대 위에 통조림 캔이 하나씩 올려진다. 턴테이블 위의 통조림은 줄지어 원을 그리며 이동한다. 앞서 장례식을 치른 연어의 결과물인 듯하다. 동시에 라디오 디제이가 치열하고 애달픈 연어의 삶을 이야기한다. 연어는 강보다 바다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강물로 되돌아오니 그들이 넘어야 할 경계는 강에 있다며. 김성현 안무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해체돼 통조림이 된 연어의 모습이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통조림의 의미는 해석하기 나름이에요. 해체뿐 아니라 인간의 잔혹함, 관 등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죠.”

   드넓은 바다를 향해
  다시 원점으로. 통조림이 된 연어는 해체 이전의 상태로, 배경은 잔잔한 바다가 펼쳐진 첫 장면으로 되돌아간다. 네 명의 무용수가 바다 앞에 등장해 파도에 몸을 맡긴 듯 넘실넘실 걸음을 걷는다. 제각기 다른 몸짓이 자유로운 행보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김성현 안무가는 장면의 모티브를 사람의 걸음걸이에서 떠올렸다고 설명한다. “걸음걸이는 시간의 흐름을 의미해요. 아기, 청년, 노인의 걸음걸이가 모두 다르듯이 말이에요.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지만, 시간과 함께 우리는 성장하죠.” 한 걸음 한 걸음 경계를 넘어 아무런 갈등도 시련도 존재하지 않는 무아지경의 세계로 나아간다. 

  유유한 강가에서 태어난 연어는 더 큰 세상을 꿈꾸며 떠나와 회귀하는 험난한 여정을 반복한다. 김성현 안무가는 인간의 삶도 연어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자유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에도 얼마나 많은 장애물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연어처럼 경계를 넘기 위한 모험을 감수할 때 우리는 자유에 한발짝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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