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의혈창작문학상: 소설부문
  • 김서현 기자
  • 승인 2019.12.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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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문 당선: 조수아 학생(동덕여대 국어국문학과 4), 「보편의 여름」

펜끝의 시작, 그 끝은 창대하기를

문예창작전공과 중대신문 공동 주최로 열리는 의혈창작문학상이 올해로 29회째를 맞이했습니다. 의혈창작문학상은 청년 문학도들이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된 자리인데요. 전국에 있는 전문대 이상 학부 재학생(휴학생 포함)을 대상으로 지난달 15일까지 시와 소설, 두 부문으로 나눠 지원을 받았습니다. 심사는 예심과 본심으로 나눠 진행했습니다.

  이번 의혈창작문학상에서는 소설 당선작 1편과 시 가작 2편이 선정됐습니다. 올해도 풍성한 작품들이 의혈창작문학상을 빛냈는데요. 당선작과 가작을 위한 시상식은 오는 18일 102관(약학대학 및 R&D센터) 11층 University Club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올해 소설 부문의 당선작은 조수아 학생(동덕여대 국어국문학과 4)의 「보편의 여름」입니다. 예심을 거쳐 「보편의 여름」과 「보호자」 두 작품이 본선에 올라갔습니다. 이후 방현석 교수(문예창작전공)와 오정희 교수(문예창작전공)의 손에 당선작이 뽑혔죠. 심사에 참가한 교수진은 올해 의혈창작문학상 소설 부문에서 문학도들의 개성이 돋보였다는 평을 남겼습니다.

  「서시(序詩)」, 「별 헤는 밤」 등의 대표 작품을 남긴 윤동주 시인은 시를 통해 자신의 고민과 사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문학 작품은 스스로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줍니다. ‘제29회 의혈창작문학상’에 참가한 많은 문학도들도 시와 소설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자유롭게 풀어냈습니다. 그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살펴보며 문학의 전당으로 들어가 봅시다.

 

<작품전문>

보편의 여름

할머니의 오빠 정성찬씨는 일찍이 동경으로 건너갔다. 정성찬씨가 무엇을 바라고 동경에 간 것은 아닐 테지만 그는 건물, 그러니까 당시 지어지기 시작하던 5층 이상의 목조 건물들에 대한 이상한 동경이 있었다. 한켠에 가득히 쌓아둔 나무를 인부들이 옮기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잦았다. 붉은 색에 가까운 나무들은 그대로 남아있거나, 채색되거나 해서 하나의 건물을 이뤘다. 정성찬씨가 동경행 비행기에 오르기로 결심한 것도 그쯤이었다. 줄곧 넋을 놓고 바라보던 건물이 완성되자, 정성찬씨는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도쿄로 가겠다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것이 할머니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정성찬씨였다. 그 뒤로도 자신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 예정인지에 대한 변명과도 같은 편지들이 왔다고는 하는데, 당시 아홉 살이었던 할머니가 한자가 가득한 편지 내용을 기억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의 삶은 어린아이의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나.

할머니가 힘겹게 의자에서 일어섰다. 1950년이면 나는 가늠할 수도 없는 시기다. 그 당시에 일본 유학을 갔다는 사람은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웠던 윤동주나 정지용같은 시인 말고는 들어본 적도 없었고, 상상해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멀게 느껴졌다. 따지자면 내게도 가까운 사람이 아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정성찬이라는, 할머니에게 그러한 이름을 가진 오빠가 있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 것도 그가 죽은 뒤였으니까. 부엌으로 걸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떠들어댔다. 왕할머니는 반대하지 않았나. 우리 때는 각자 자기 삶을 살았다. 더군다나 딱히 반대할 이유도 없었기에 오빠는 무리 없이 옆 나라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할머니는 가고 싶지 않았나?

어렸다. 그리고 어려웠다.

단단하고 차가운 두 마디. 할머니의 뒷모습은 그림자처럼 어두웠다.

*

할머니가 열세 살 때, 정성찬씨는 스물네 살이었으며 동경대 1학년이 된 채였다. 만 나이로 계산하는 일본에서 그는 스물 세 살이었지만 자신의 나이를 한 살 낮춰 말하는 걸 꺼려했다고 한다. 엄연히 살아왔던 1년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나. 그래서 그는 자신에 대해 소개할 때 특히나 자신감이 없어보였다고. 스물 셋입니다만, 이라고 대답하며 말끝을 흐렸으며 그가 그럴 때마다 일본인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정성찬씨를 쳐다봤으리라 생각된다. 정성찬씨는 역시나 건축학부를 다녔는데, 대체 조선인인 그가 어떻게 동경 최고의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섬유공장에서 일하면서 만났던 여자 덕분임에 틀림없다고 그의 직장 동료는 말하지만, 실제로 정성찬씨가 입학시험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설령 수석입학을 할 실력이 된다고 해도, 가진 것도, 아는 이도 없이 일본에 간 조선인 정성찬씨가 무사히 일본 대학에 갈 수 있었다는 자체가 나는 의문이었다. 아니면 설마. 그 이유 때문일지도.

입학시험이 끝난 뒤, 자전거 주차장에서 정성찬씨는 누군가를 만났었다. 그는 정성찬씨가 조선인인줄 모르고 말을 걸었는데 거기다 정성찬씨는 무턱대고 죄송합니다, 라고 대답하며 머리를 숙였다. 그제야 그는 정성찬씨가 일본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동경대에 녹이 슨 자전거와 함께 서 있는 조선인 정성찬씨가 신기한 모양이었는지, 그는 실례인 것을 알면서도 정성찬씨에게 당신은 왜 이곳까지 왔나, 하고 물었다.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정성찬씨는 무언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검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건물이었다. 이런 것을 보면 어쩐지 쓸쓸해져서요, 하고 정성찬씨는 말했다. 그리고는 자전거를 끌고 유유히 그를 지나쳐갔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정성찬씨가 졸업논문을 쓰며 매일같이 술을 마시던 때 룸메이트이자 친구였던 안도씨에게 잠꼬대처럼 풀어놓았다는 이야기이다. 이후에도 안도씨는 정성찬씨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고 하는데, 정성찬씨의 친인척들은 안도씨가 매번 같은 말을 반복해서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나는 왠지 이 이야기를 붙잡고 싶어진다. 그는 낯선 조선인 정성찬씨에 대해 알고 싶어졌을 것이고, 정성찬씨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서툰 일본어로 내뱉었던 그 말은 분명 그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을까? 정성찬씨와 짧은 대화를 나눈 그가 누구인지, 그의 속마음은 어떤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이 이야기의 모든 말들이 너무도 신경이 쓰였고 전해들은 그대로 믿고만 싶었다. 아니, 그냥 믿겼다. 정체모를 조력자로 인해 원하던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기적 같은 이야기로 다가왔다고나 할까.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상태로 살아가다 보면, 어떤 작은 일도 붙잡고 싶어지기 마련이니까.

나는 정성찬씨 또한 이 이야기에 매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4학년 말에 정성찬씨가 유리코씨에게 운이 좋아서 이곳에 들어왔고 이제 무사히 떠날 수도 있게 되었다, 고 말했다는 것을 보면. 정성찬씨 본인에게도 자신의 인생이 놀랍게 느껴진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유리코씨는 운이 아니라 당신의 능력이라고 얘기해줬지만 정성찬씨는 그에 대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고. 그때가 정성찬씨가 졸업논문을 제출하기 닷 새 전이었다. 당시에 고민이 많았는지, 정성찬씨가 홀로 스미다 강(隅田川) 주변을 배회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기도 했다고 한다.

정성찬씨는 졸업논문으로 모두의 건축, 이라는 문학적 기질이 다분한 글을 썼는데, 이는 일본 건축계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특별히 정성찬씨의 논문이 대단하거나 훌륭해서가 아니라, 한국인이 일본의 건축에 대해 논문을 썼다는 것 자체가 일본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정성찬씨 외 일곱 명의 논문 발표회 당일, 일본인들은 정성찬씨를 호기심과 의아심, 또 한편으로는 업신여기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렇게 불안정한 곳에서 건물을 설계하고 도시를 세우는 행위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존재로 거듭나는 것인가……. 마지막까지 정성찬씨의 목소리가 몹시 떨려, 지켜보는 유리코씨마저 몸이 떨렸다고 한다. 논문 발표를 무사히 잘 마치나 싶었는데, 극도로 긴장한 탓이었나. 정성찬씨는 퇴장하다가 졸도했다. 그 때문에 예정대로 한국에 돌아가지 못했다. 유리코씨는 지금에서야 아무렇지 않게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그가 죽는 줄 알았다고, 놀라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과거에 그랬었던 사람 치고 너무도 무덤덤하게. 또 정성찬씨가 쓰러지지 않았다면 자신과 결혼할 일도 없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정성찬씨는 일본에서 꽤나 안정적인, 보통의 가족을 이루고 산 것처럼 보였다. 아내인 유리코씨와 두 아들과 함께. 정성찬씨는 한 건설회사에 들어가 도시개발사업 관련 일을 했다고 한다. 당시의 일본은 엄청난 경제 호황기였기에 어떤 사업이든지 맡기만 하면 큰돈이 들어왔고, 그것은 일반 서민의 가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정성찬씨네 가족도 도쿄시 고토구의 한 주택에서 미나토구의 타워멘션으로 이사를 했다. 정성찬씨가 계획한 건물들은 문제없이 건설되어 갔고, 유리코씨는 취미로 꽃꽂이를 배우러 다녔으며, 두 아들들은 사립 유치원에 입학했다. 주말에는 가족 모두가 테니스를 치거나 하코네의 온천에 가기도 했다. 그런 평온한 나날들을 살아갔다. 나로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만큼 이상적인 가족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

내가 그 가족과 만나게 된 때는, 영원할 것만 같은 버블이 꺼진 한참 뒤였고 정성찬씨의 장례식이 끝난 어느 여름이었다. 멀리서 손님이 오신다는 할머니의 말에 우리 가족은 급히 광주로 내려갔다. 할머니 집 근처에 도착하고 나서야, 뭐라도 사가야겠다는 생각에 가게를 찾았지만 다 문이 닫혀 있었다. 굳게 내려진 상가의 셔터들을 보고 나는 수박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과일가게라도 하나 열었으면 좋았을 텐데. 며칠 동안 지속되는 더위에 다들 어디론가 도망쳤나, 하얀 종이에 ‘휴가’라고 써 붙여 둔 가게가 많았다. 그날도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였는데 이곳이 남쪽 지방이라 그런지 더 덥게 느껴졌다. 밖에 잠깐만 나와 있어도 땀이 흘러내렸다. 눈앞에 있는 것이 푸른 바다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짜증을 낼만한 그런 날씨였다. 우리는 적당히 아파트 앞에 있는 작은 매점에서 초록매실과 비타오백을 사서 16층으로 올라갔다.

도대체 어떤 손님이 오는 거야?

할머니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손님의 정체랄까, 어떤 사람이 오는지조차 몰랐다. 짐작조차 할 수 없어서 자꾸 캐물었지만 집 안에는 건조한 공기만 맴돌았다. 가끔 그릇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끊임없이 음식을 가져왔다. 거실에 펼쳐진 커다란 상 위에 간장게장, 닭백숙, 갈비, 잡채와 같은 음식들이 가득 채워졌다. 전 세계인이 입을 모아 맛있다고 극찬하는 한식은 무작정 다 가져다 둔 듯했다. 상의 한 가운데에는 어디서 꺼내왔는지도 모를 양초까지 놓여 있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때 그 공간의 모든 것들이 어색했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도, 삼촌도 내게 그 흔한 안부 인사조차 묻지 않았다. 아빠는 배고프다는 말만 반복했고 목소리가 한 톤 정도 높아진 고모는 갑자기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하질 않나, 엄마까지도 별것도 아닌 것에 하하 웃었다. 나는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이해해야 할 것만 같아서 조용히 거실 구석에 앉아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상 위의 촛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일본에서 친척이 올 거다.

할머니의 오빠의 부인과, 그의 아들들이 곧 이곳에 온다고, 나는 그저 인사만 잘 하면 된다고 당부한 것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내게 하지메마시떼, 라는 일본어 인사말도 알려주었는데, 나는 그것을 몇 번 발음해보다가 곧 그만두었다. 할머니의 오빠의 부인의 아들, 그러니까 아빠의 사촌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나와는 어떤 관계가 되는지도, 머릿속에서 가족관계도를 열심히 그려보며 생각했지만 실패했다. 현관의 벨이 울렸기 때문일까. 그냥 그대로 그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상상했던 것과 조금은 다른 사람들이 눈앞에 서 있었다. 검은 원피스에 진주 목걸이를 한 여자, 집 안에 들어오자마자 허리 숙여 인사하던 남자, 그리고 그 남자의 뒤에 서 있던 또 한 명의 여자. 분명 할머니의 오빠의 부인과 그의 아들 두 명이 올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남자 한 명은 어디가고 저 여자는 누굴까. 아마 저 목걸이를 한 여자가 부인일 것이고, 남자는 틀림없이 아들이겠지. 그렇다면 저 여자는 아들의 부인인가. 그러기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 같은데. 나는 제멋대로 그들의 관계를 유추해보았지만 그럴수록 의문만 더 커졌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고모도 삼촌도 당황했는지 쉽게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할머니만 빼고. 할머니는 현관 앞에서 선뜻 들어오지 못하던 세 사람에게 다가가서, 일본어로 짧게 뭐라 말했다. 오는데 고생 많았다, 정말 고맙다 뭐 이런 뜻일 거라고 나는 혼자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할머니를 제외하고 우리 가족 중에는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밝은 미소로 꾸벅꾸벅 인사하는 것뿐이었다. 모두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지질 않았다. 잠깐이라도 찾아오는 침묵이 두려운 사람들처럼 웃기만 했다. 보디랭귀지로도 소통이 된다고 하질 않던가.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웃기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몸짓만으로도 내가 그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고 탈주하고 싶다는 것을 알릴 수 있다니. 소통이 그렇게 쉽게 가능할 리 없지 않나. 상대방이 정말로, 그 마음을 알아줄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고. 애초에 상대방이 진정으로 알아챘는지 알아주는 척 하는 건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아는 세계에서는 불가능하다. 그저 나는, 그 공간에 있던 우리 모두는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자체에 안심할 뿐이었다. 모두를 둘러싸고 있던 웃음이 멎어가고, 할머니가 우리에게 세 사람을 소개했다. 정성찬씨의 아내인 유리코씨, 아들인 히데토시씨, 그리고 또 한명의 여자는 오늘 오지 않은 아들의 딸이라고 했다.

그녀의 이름은 해미. 바다 해자에 아름다울 미자를 썼다. 일본어로 읽으면 해미는 해미가 아니게 되지만 어쨌든 자기의 이름은 해미라며 해미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스스럼없이 나를 대하는 그녀와 달리 나는 무척이나 쭈뼛거렸다.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망설이게 되었다. 신기한 듯 집안 곳곳을 둘러보는 그녀는, 잡채의 맛에 감탄하며 몇 번씩이나 집어먹던 그녀는, 영락없는 외국인이었다. 한국으로 문화체험을 하러 온 고등학생 같다고 해야 할까. 나와 같은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수해 보였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모르는 아이처럼 해사하게 웃었다.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면 괜히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녀와 나는 휴대폰의 번역기로 대화했다. 처음에는 딱딱한 번역기의 어투가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점차 익숙해져갔다. 아마 그녀가 반응을 잘 해줘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내가 번역된 일본어를 보여줄 때마다 감탄했고, 기뻐했으며 한국어로는 어떤 뜻인지도 물어봤다. 나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듯 했다. 그러나 나는 사실 그녀에게 어떠한 관심도 없었고 관심사도 달랐기 때문에 우리의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몇 마디라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녀의 노력이었다. 그녀는 케이팝을 좋아했지만 나는 제이팝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그녀가 거실 장식장의 도자기를 보고 저거 대단하다고 소리칠 때도, 나에게 그것은 진열품 이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녀가 출처도 모르는 한국어를 내게 선보이며 이거 맞아? 이거 알아? 하고 물을 때도, 나는 그녀의 말에 맞장구쳐주지 못하고 고개를 젓고만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그런 식이었다.

- 너는 항상 모른다고만 하네.

- 정말 모르는걸.

- 왜 모르는 거야?

화면의 일본어가 한국어로 변하는 것과 동시에 그녀는 말했다. 난데 시라나이노, 하고. 조금은 큰 소리로 말했고 낯선 언어가 그렇게 가까이 들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왜 모르는 걸까. 어쩌면 알려고 하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친척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완전한 타인인 그녀의 일 따위. 타인의 죽음으로 인해 알게 된 타인 따위. 나는 열심히 무언가를 입력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서 고개를 돌렸는데, 그녀가 다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알고 있었던 것도 모르는 일로 남아버리게 된 것이 아니냐고, 말하면서. 그녀의 얼굴이 차가워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그녀는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눈을 하고서 자신이 마주하지 않으면 자신을 삼켜 버릴 것 같은 사실을 겪었다고 말했다. 번역된 언어가 화면을 뚫고 나와 그대로 나를 찔러버릴 것 같았다.

- 이를테면?

- 할아버지의 죽음

그녀는 정성찬씨를 떠올리면 늘 머릿속에서 하나의 장면이 재생된다고 했다.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혼자 멀뚱히 서서, 건물의 저 끝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60대 남자의 모습이. 정성찬씨의 그런 모습을 직접 본 기억이 없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떠오른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정성찬씨의 마지막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말했다.

정성찬씨는 철거 직전의 건물에서 발견되었고,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후에 그녀는 가족들과 함께 그 건물에 가 보았는데, 나무로 지어진데다가 오래되어서 계단을 오를 때마다 소리가 심하게 났다고 한다. 삐걱삐걱, 그 소리가 어찌나 심했는지 몇 걸음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괜히 기분이 나빠서 다시 내려왔다고. 알고 보니 그 일대 건물들은 대부분 방치되어 있던 것이었다. 건너편의 파칭코 건물에서만 요란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는데, 그녀는 그 노랫소리가 밝고 경쾌해서 오히려 공포스러웠다고 한다. 몸의 떨림을 멈출 수가 없어서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정성찬씨의 죽음이 자신에게 한 발짝 더 다가온 것 같았기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정성찬씨가 했던 것처럼 건물의 위를 올려다보았는데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정성찬씨가 죽어버린 곳이 아닌, 폐건물 뒤편에 솟아있던 고층빌딩이었다. 다 낡아 쓰러져가는 눈앞의 건물과는 달리 웅장하고 멋져서, 그녀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쳐다봤다고. 한없이 위로 뻗어있던 빌딩은 그녀를 압도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희열도 잠시, 그녀는 아름다움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던 것이 곧 자신을 덮쳐 없앨 것 같다는 불안에 휩싸였다고 한다. 갑자기 눈앞의 풍경이 생경하게 다가왔다고. 몸의 떨림은 다시 시작되었고, 그녀는 등 뒤가 축축이 젖은 채로 건물의 반대편을 향해 걸었다. 종교의식을 행하는 사람처럼, 걷는 행위에만 집중하면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도 죽어버릴 것 같아서? 그녀는 그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음산한 분위기가 불쾌했을 뿐이라고, 모든 것은 날씨 때문이라고 말했다. 습도가 구십 퍼센트를 넘어섰고 잿빛 구름은 머리 위를 무겁게 누르는데 어떻게 기분이 좋을 수가 있겠냐며, 변명을 길게 늘어놓았는데 내 눈에는 정성찬씨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외면한 채로, 아예 모르는 척 살아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때 그녀에게 닥친 모든 것들을 날씨의 탓으로 돌리고 싶은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무대에 홀로 서 있는 연극배우의 독백을 듣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꼭 그런 대사를 하는 배우는 세상에서 제일 슬프고 외로운 얼굴을 하고 있지. 어떤 법칙처럼. 막이 내려갈 때까지 흐느끼세요. 고개를 들지 마세요. 배우는 역할을 수행하겠지. 구석에서 처박혀 울겠지. 그렇다면 관객은 어떤 얼굴을 해야 할까. 어떤 얼굴로 배우를 바라보아야 할까. 역시 무표정이 좋으려나. 당신의 마음을 잘 알겠다는 듯이 웃는 편이 좋으려나. 나는 관객이 되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어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정성찬씨가 왜 죽었는지, 도심 한복판에서 왜 그렇게 높은 건물을 올려다보았는지, 그녀는 나에게 이 이야기를 꺼낸 순간 정성찬씨를 이해해버렸을 것이다. 그녀가 원하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녀는 알 것 같다고 했다. 정성찬씨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정성찬씨가 광활한 도시의 건물들에 압도당하며, 그 아름다움의 끝은 어디인지 확인해보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지금 말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녀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가족들은 어땠을까.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던 그녀의 가족들은 정성찬씨의 삶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떠들어놓고선, 정작 정성찬씨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알고 있으면서.

매정하다.

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들이라고 생각했다. 쇼파에 앉아 모나카를 까먹고 있는 그들의 모습까지도 괘씸하게 느껴졌다. 나야 오늘 처음 정성찬씨의 이야기를 들었고, 어떠한 관련도 없으니 그의 죽음에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지만 그들은 나와 다르지 않나. 여전히 정성찬씨에 대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으면서 그의 죽음은 이토록 쉽게 외면하다니. 그들은 똑바로 마주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알고 있는 것은 결코 모르는 것이 될 수 없다.

*

유리코입니다. 부인은 한국어로 열심히 이야기했다. 서툴렀지만 귀 기울여 들으면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말이 막히는지 중간 중간 일본어가 튀어나왔고 그럴 때면 유리코씨는 노트북을 꺼내서 키보드 자판을 두드렸다. 이야기의 8할은 할머니의 오빠인 정성찬씨의 이야기였다. 히데토시씨와도 번갈아가며 정성찬씨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정성찬씨가 어떻게 살아왔고 얼마나 좋은 남편, 아버지였는지 일일이 다 말하고 있었다. 정성찬씨의 미래 계획이나 바람 같은 것까지도. 정성찬씨는 겨울에 요요기공원에서 하는 일루미네이션을 볼 수 없고 고베에도 갈 수 없는데 말이다. 사실 정성찬씨는 죽지 않은 게 아닐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정성찬씨가 현관문을 열고 걸어 들어올 것만 같아진다. 나는 그들이 정성찬씨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하, 하고 한숨을 쉬기 전까지는.

정성찬씨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녀의 아빠. 그러고 보니 그녀의 아빠는 오지 않았다. 방문이 약속되어 있던 사람이 오지 않았는데, 아무도 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으며 유리코씨와 히데토시씨도 사정을 설명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안 온 거니. 나는 처음으로 그 사실이 궁금했다. 그녀는 소매 끝자락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아빠도 죽었다고. 세상에 없기 때문에 오지 못한 거라고. 인신사고란 걸 알아? 내가 그런 걸 알 리가 없잖아.

그녀가 사는 도시에서는 사람이 자주 죽는다고 했다. 철도 노선 밖으로 몸을 내던지고. 달리는 전철에 뛰어들고. 세이부신주쿠선은 40분간 지연되고 사람들은 짜증을 낸다. 역 밖에까지 길게 줄을 선다. 오늘도 또 사람이 죽었대. 자살이래. 선로에 뛰어드는 남성을 보고 견딜 수가 없게 된 목격자도 자살한다. 얼떨결에 사람을 치게 되어버린 기관사도 죄책감에 시달려서 자살한다. 한숨과도 같은 비명이 울려 퍼진다. 정말 그렇게도 죽어버린단 말이야?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사고라고 불리는 도시에서는 그럴 수도 있구나. 일단 나는 스크린도어가 없는 전철부터 상상할 수 없는데. 스크린도어가 없으면 말이지, 선로가 얼마만큼 바닥으로 꺼져 있는지 그곳은 얼마나 컴컴한지 다 알 수 있어. 그녀는 종착역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내려서 걸어간다.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열차가 고객과 접촉하여 혼란이 있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열차가 고객과 접촉하여 혼란이 있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단 한줌의 감정도 섞여있지 않는 역무원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로봇이 고장 난 것처럼 몇 번이고 반복된다. 몇 번이고.

그날도 똑같았다. 그녀는 다음 열차를 기다리지 않고 드넓은 신주쿠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더랬다. 평소와 다른 점을 굳이 꼽으라면, 그날따라 들려오는 안내방송이 다른 차원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는 점. 그러나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다시 그녀는 요요기, 센다가야, 시나노마치역까지 힘차게 걸어갔다. 시나노마치 역 앞 육교에서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 순간 그녀는 숨이 턱 멎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강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던 물고기가 갑자기 수조 안에 갇힌 것처럼. 그녀는 전화를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발목을 접질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결국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로 전화를 받았는데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들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트리고, 핸드백을 떨어트리고, 편의점 비닐봉지를 떨어트리고, 그녀는 울었다.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까의 안내방송과 다를 바 없는 서늘한 목소리가 눈앞의 풍경과 너무도 동떨어져 있어서. 지금 자신이 실재하지 않는 건 아닐까, 이건 다 다른 세계의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녀는 지금까지도 그 풍경을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밤이 되어도 캄캄하지 않은 하늘, 형형색색으로 반짝거리는 도코모타워, 그리고 멀리, 저 멀리 보이는 신주쿠의 전광판 같은 것들을.

유리코씨는 정성찬씨의 장례를 치르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아들의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조금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장례를 연달아 하는 것은 조문객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이라면서. 조문객들을 신경 써야지 우리가 슬퍼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그렇게 슬픔에 푹 절여진 얼굴을 하고 있으면 안 된다고 유리코씨는 그녀에게 당부했다. 그녀는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도록 며칠간의 수행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유리코씨의 의견이었다. 그녀는 6첩의 다다미방에서 차를 다려 마시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때때로 꽃꽂이도 했다. 유리병에 꽃을 하나씩 꽂을 때마다 생각을 버리는 연습을 했다. 그들의 죽음에 신경을 쏟지 말 것, 더 이상 몰입하지 말 것, 너무 빠져있지 말 것. 유리코씨가 그녀에게 누누이 충고했던 세 가지. 더 이상 그들의 죽음에 연연해하지 말라던 유리코씨의 말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철도회사에 인신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액을 지불한 뒤라 유리코씨의 심기가 언짢았던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유리코씨의 말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유리코씨는 아들의 죽음보다 남들이 무어라 떠드는 것이 더 중요했나. 수백만 엔에 달하는 배상금을 내야 하는 사실이 더 큰 타격이었나. 그래서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꺼려했나. 그녀는 유리코씨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유리코씨가 말한 대로 하려고 노력했다. 장례식장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인사를 잘 했고, 안내를 잘 했으며, 배웅까지 완벽하게 해냈다. 옅은 미소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괜찮았다. 놀랍게도 유리코씨가 했던 세 가지 말들을 떠올리며 살다보니 아무렇지 않아졌다고 한다. 정성찬씨의 죽음이든 아빠의 죽음이든, 아무래도 좋았다고. 하지만 가끔, 빌딩 건설현장에 높이 설치되어 있는 타워크레인을 볼 때, 신주쿠 한복판에서 오래된 빌딩의 철거를 시작한다는 뉴스가 크게 흘러나올 때, 문득 위를 올려다보았는데 하늘이 어둡지 않을 때, 그녀를 스치는 바람이 여전히 끈적할 때, 그녀는 그들의 죽음을 떠올린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죽어버리는 거야. 잠깐의 충동을 막아줄 그 어떤 것도 없어서, 그대로, 노란 선 밖으로 이끌려서, 필사적으로 달려오는 전철의 유리창에 부딪히고 마는 거야.

그녀의 아빠는 그 중 한 사람이었고 정성찬씨도 그런 류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삶과 죽음은 그렇게 찰나의 순간으로 나뉘어 버린다. 그건 제 삼자 따위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철저히 제 삼자였기에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럴 수가 있었다.

*

- 남편은 죽어버렸지만, 이렇게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노트북 화면에 뜬 글자들은 비참할 정도로 차가웠다. 모두 애써 웃어 보였지만 나는 그 모습들이 더욱 서늘하게 느껴졌다. 이상했다. 정성찬씨가 죽고 여기서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지만 사실은 이어져 있던 것입니다, 정성찬씨에 의해 말이죠, 슬프게도 정성찬씨는 죽고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기 이렇게 살아있지 않습니까, 하고 확인하기 위해서? 지금 와서 인사치레를 하고 정성찬씨를 추억하는 일은 대체 누구를 위한 일일까. 그냥 다 자기만족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이름도 모르던 우리는 우리를 이어주던 정성찬씨의 죽음에 동요한다. 우리의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 동요한다. 확실히 나도 동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말해준 이야기들에 마음이 기울었다가 무너졌다가 했으니까. 하지만 내일이 오면 나는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살아갈 것이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정성찬씨를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면서 살아갈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의 나는 내 옆에 있는 그녀를 최대한 위로하고, 거실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유리코씨와 히데토시씨를 바라보면서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정성찬씨를 애도했다. 한꺼번에 몰려오는 감정들을 추스르고 정리하여 하루빨리 본래 나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그러나 나만 그랬을까? 할머니도 그렇지 않았을까? 저기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고모도, 아빠도. 그다지 정성찬씨의 죽음에 타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이 여름이 끝나면 우리는 모두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 집중하는 동안 계절은 또 한 번 바뀌고 여름은 다시 오겠지. 그리고 그때 오지 않았던 그녀의 아빠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묻지 않을 것이다. 평생 나만 아는 채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씩 그녀를 생각한다. 그녀의 이름은 해미였지. 저 도시에서 그녀는 해미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 테지만, 나에게 그녀는 여전히 그 이름 그대로 남아 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해미라는 이름의 한자뿐이다. 그녀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아직까지도 알지 못한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금방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검색하지 않는다. 해미는 해미인 편으로 남는 것이 좋다. 해미가 아니라고 하면 그 날 그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모두 허상에 불과한 것만 같아지니까. 해가 길어진 보통의 여름날에 내려진 상가 셔터들을 보면, 나는 문득 그때의 일들이 떠오른다. 그 어떤 때보다 이상했고, 기묘했던 우리의 여름이.

 

<당선자 인터뷰>

소설 부문 당선자 조수아 학생 interview : 타국에서 목격한 죽음의 보편성

죽음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누구나 인생의 끝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조수아 학생(동덕여대 국어국문학과 4)은 멀게만 느껴지는 죽음을 일상으로 끌어들여 작품에 담아냈다. 삶과 죽음을 둘러싼 가치관을 풀어낸 소설 「보편의 여름」에 관해 함께 이야기해봤다. 

  -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마디 부탁드려요.

  “수업 시간에 당선 소식을 들었어요. 함께 수업을 듣는 친구들이 축하해줘서 더 행복했죠. 이번 당선이 앞으로의 글쓰기에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보편의 여름」을 소개해주세요. 

  “일반적으로 여름휴가라는 말을 들으면 행복한 모습이 떠오르기 마련이잖아요. 「보편의 여름」에서는 그와 다른 시간을 보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봤어요. 소설 속 인물들은 여름휴가철에 누군가의 죽음을 겪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죠.”

  - 소설을 작성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작년에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어요. 일본 도쿄의 건물과 분위기에 영감을 받았죠. 높은 건물을 올려다보면 압도당하는 느낌을 자주 받았어요. 그 느낌이 죽음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했죠.”

  - 건물에 초점을 맞추셨군요. 

  “건물뿐 아니라 일본에서 마주하는 사람도 유심히 지켜봤어요.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듯한 유리코씨의 모습을 통해 제가 바라본 일본 사람의 성격을 표현했죠. 작년 교환학생을 다녀왔을 때 미묘한 차별을 느끼기도 했어요. 지난 1950년대 유학을 떠난 정성찬씨는 더 심한 차별을 겪지 않았을까 생각해 소설에 담아냈죠.”    

  - 소설이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인상 깊어요. 구체적인 배경 설명을 듣고 싶어요.

  “신주쿠의 혼란스러운 느낌을 살리고 싶었어요. 신주쿠역 안내방송에서 흘러나오던 인신사고 내용이 무척 기억에 남았거든요. 실제로 신주쿠역에서는 인신사고가 나면 ‘열차가 고객과 접촉해 혼란이 있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라는 멘트가 들리곤 해요.”   

  - 죽음이 큰 맥을 차지하고 있네요. 소설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죽음은 일상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에요. 저는 일상에서 죽음을 자주 생각해요. 공원을 산책하다가도, 해가 지는 강에서도 생각하곤 하죠. 제 소설의 주제도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선이에요. 소설에서 정성찬씨나 ‘해미 아빠’같이 삶과 죽음의 중간에 매달려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 ‘해미’라는 등장인물의 역할이 궁금해요.

  “소설 속의 ‘나’가 죽음을 생각할 때 해미를 떠올리지 않을까 예상했어요. 번역기를 사용해가면서 해미와 직접 소통한 경험은 주인공에게 색달랐으리라 생각해요. 정성찬씨와 아빠의 죽음을 깊이 받아들이는 해미의 모습과 자신과는 상관없는 죽음인 양 무관심하게 대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비교해 보여주고 싶기도 했죠.”

  - 독자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정성찬씨는 분명 어딘가 존재할 거예요.”

 

 

<소설 부문 심사평>

우리 시대의 딜레마를 다룬 개성적인 작품들

올해 의혈창작문학상에 응모한 소설들은 우리 시대의 딜레마를 다룬 개성적인 작품들이 큰 흐름을 이루었다. 속도의 시대가 놓치기 쉬운 문제를 깊이 성찰하고 조명하려는 노력이 반가웠다. 최근 들어 사회적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이슈를 포착하려는 야심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압도적인 주제를 뒷받침하는 개연성과 디테일이 취약한 작품이 여럿이었다. 

  <보편의 여름>은 할머니 세대와 손자 세대를 아우르는 작가의 시야와 생생한 디테일이 돋보였다. 주제 의식이 분명하고 가독성도 갖춘 작품이다. 큰 액자(할머니의 기억)속에 작은 액자(할머니 기억 속의 지인들의 기억)를 도입하여 큰 테두리에서 작은 테두리로 압축해가는 동시에 한 인물의 전기적 사실과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서사전략도 효과를 발휘했다. 형상화보다는 화자의 설명에 의존하는 일부 장면들이 지닌 아쉬움이 있었지만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이 지닌 가능성에 더 주목하였다. 

  <보호자>는 한 인간이 지닌 이중의 감정적 상태를 잘 드러낸 작품이다. 동성애와 성폭력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의 화자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서의 강박에 시달린다. 전복적 상상력과 파격적인 장면 구축 능력이 소설적 에너지를 발휘하고 있지만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서사적 정밀성과 문장의 완성도가 아직 부족했다.

심사위원= 방현석·오정희(본심), 박혜영·서성란(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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