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의혈창작문학상: 시부문 가작
  • 김민지 기자
  • 승인 2019.12.09 14: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 부문 가작 : 이은지 학생(한국전통문화대 문화재보존과학과 3) 「의자」, 정유나 학생(경희대 국어국문학과 1) 「해적방송」

 

「의자」자평: 건들비쭉 우왕좌왕 어리둥절 살아남기

 

  /그럴싸하게 서 있다, 의자는/
  /갓 태어난 기린 새끼 같았다./

  목공예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의자를 만들었는데 배운 대로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못을 박아 고정시켰습니다. 그리고 뿌듯한 마음으로 작업대에세웠는데 의자가 제대로 서질 못했습니다. 비딱하게 서 있는 게 마음이 좋지 않아서 톱질을 했죠. 그리고 다시 세웠는데 훨씬 균형 있게 서 있었지만그래도 불안정하게 보였습니다. 더 긴 다리 길이를 조금 줄이고 세워보고 그 옆다리를 조금 줄이고 다시 세워보고 있는데 제대로 서려고 발을 구르는 새끼기린 같았습니다.

 

  /수강생들의 새끼 기린들 중에서/
  /다리는 가장 약하고, 상체는 가장 넓었다./
  /사포질을 했다, 할 수 있는 만큼 세게, 눈치껏 많이./
  /매끄러워져라, 매끄러워져라./

  그리고 사포질을 합니다. 그래도 의잔데,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으로 서있을 수 있도록 발바닥을 평평하게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측정을 잘못한 걸까’, ‘ 그래서 네 개의 다리 길이에 조금씩 차이가 생긴 걸까’, ‘ 사포질을 너무 많이 했나’, ‘ 무심결에 발바닥까지 박박 문질렀던 걸까’였습니다. 상판에 다리가 딱 붙어서 이어져야 하는데 조금 벌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못질을 잘못한 걸까.

 

  /딱 떨어지는 건 어려웠다./
  /다리는 점점 짧아지고,/
  /덜 흔들리거나 더 흔들리고,/
  /다시 짧아지고,/

  의자는 이제 잘 서있지만 높이는 다소 낮은 의자가 되었습니다.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정확하겐 모르겠지만 어느 단계에서 다른 의자와 차이가 있던 거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문득 제 얘기와 제가 들은 적 있는 얘기가 중첩됐습니다. 상황이 분명 잘못되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시원하게 말하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다그치고, 고래고래 소리친 후에 평정심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오. 또 어쩌면 지금 당장 그런 상황이 될 수도 있겠다.

 

  /비교적 모자란 의자가, 비교적 의자다운 의자 옆에서/
  /골똘히, 나는 왜 의자일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생각들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누구는 조금 덜 안정적이고, 누구는 조금 더 안정적인 편이라서 차이는 있겠지만요. 그것 말고, 더 중요하고, 더 가치 있는 건 뭐가 있을지, 그런 걸 같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단 의자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짚고 일어서면 앞으로는 더 예리하게 더 좋은 의자를 만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의자 같은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해적방송」자평: 새벽을 지키는 해적들

 

  /아, 아, 들려?/

  화자인 ‘나’는‘ 별자리를 훔치고 도망쳐온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누군가에게 해적방송을 보내고 있다. 해적방송이란, 정식으로 방송 면허를 가지지 않은 채 진행하는 방송을 말한다.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별에 살고 있는 화자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별자리를 몰래 훔쳐야지만 방송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무자비한 글씨체로 보글보글, 외치는 중이야/
  /어느 악몽을 헤매며 나를 찾고 있을 인연들에게/

  화자가 별자리까지 훔쳐서 방송을 보내는 대상은 바로‘인연들’이다. ‘나’는 악몽 속을 헤매며 본인을 찾는 인연들을 향해‘내 진심을 숨겨놨으니, 꼭 찾아보도록’이라고 전하며 마치 보물을 숨겨놓은 지도를 건네주듯,
방송을 이어나간다.

 

  /전방 두 시 방향에서부터 새로운 아침이 오고 있어/
  /망원경으로 관측되는 우리의 종결./

  새로운 아침이 오자‘나’를 포함한 해적들은 종결을 맞는다.‘ 벌여 놓았던 밤의 장막을 어서 걷어야 해’라고 말하며 인연들이 맞을 ‘새로운 아침’을 위해 급하게 밤을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당신들의 잠꼬대 사이에 모두가 잠든 밤마다/
  /우리의 이름을 새겨놓고 온 우리는 해적/

  해적들의 방송은 결국 현실의‘인연들’에게 직접 닿지는 못한다. ‘나’와 해적들은 나를 찾고 있을 인연들의 잠꼬대 사이에 해적들의 이름을 새겨놓는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인연들에게‘내
가 너를 기억하고 있다’는 일종의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다.

 

  /이 방송을 듣고 있다면 북동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줘./

  아침이 다가오자 화자는 별자리를 반납하고 북동쪽에 있는 무명의 별로 돌아간다. 비록 현실의 인연들에게 닿을 확률은 매우 낮아 보이지만 화자는 언제나 지구를 바라보며‘북동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길’기다릴 것이다. 그러니, 그리운 얼굴들이 갑자기 생각날 때는 우리도 북동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자.

 

  나는 죽은 사람들이 하늘로 간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땅에 묻혔지만, 가벼워진 영혼이 그 위로 두둥실 떠올라 끝없는 비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슬펐던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다. 울적한 밤, 새카만 하늘을 바라보면 도시의 불빛에 가려진 별들 어딘가에 내가 그리워하는 얼굴들이 살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꿈속에 그리운 사람들이 나오곤 했다. 나는 이를 내가 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마다 누적된 시그널을 들은 사람들이 다시 나에게 보내는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꿈의 주파수를 훔쳐서 보내는, ‘나 여기 있어, 괜찮아’라고 말하고 싶었던 ‘해적방송’이라고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