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6번째 날갯짓
  • 사진부=김정훈,김아현,박진용 기자
  • 승인 2019.12.09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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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시위

이번학기 사진부는 안성명장·소방·흑석동 교차로·스포츠 등 다양한 주제로 여러분을 찾아갔습니다. 이번주 사진부는 마지막 주제인 수요시위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매주 수요일 정오 평화로에서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진상규명, 책임 이행,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요구하는 수요시위가 열립니다. 지난 1992년 처음 진행된 수요시위부터 지난주 진행된 1416차 수요시위까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시위가 열렸죠. 시위는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기까지.

우뚝 솟은 회색 가벽이 시선을 가로막는다. 커다란 벽 사이를 걷다 보면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노란 폴리스라인이 보인다. 건널목 건너 그곳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사람들 사이 보랏빛 목도리를 한 소녀상. 이 자리에서 평화의 목소리를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회색 벽이 소녀를 막아섰을까. 소녀상의 시선을 따라가면 그제야 회색 벽 안 건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리모델링 공사 중인 일본 대사관이다. 


  기억하는 사람들 
  “내가 열두살 먹었던가 열세살 먹었던가 그 정도 됐지 싶다. 언니하고 둘이서 나물 캐러 나갔다. 그걸 뜯고 있는데 차가 오디만은, 모자 쓰고 커다란 사람들이 두어명 내리데. 그라더니만 나를 발로 차버리고 우리 언니 머리채를 이래 쥐고는 차에 끄잡아 얹데.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막 울면서 끌려갔어예.” 고(故) 심달연 할머니의 사연을 읽으며 시위가 시작된다. 어린 소녀는 그렇게 잡혀가 처참한 나날을 보냈다. 곧이어 비바람이 몰아쳐도 바위처럼 살아가자는 노래 가사가 들려온다. 어디론가 끌려간 소녀의 하루를 생각하며 「바위처럼」이라는 노래를 듣는다. 어린 소녀는 가혹한 비바람을 홀로 견뎌냈다. 하지만 새로운 수요일이 찾아왔고 소녀상 옆에는 역사 속 비바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


  모두의 수요일이 모여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기엔 바람이 시린 12월. 하지만 사람들은 피켓을 들기 위해 주머니에서 손을 꺼낸다. 추위에 움켜진 핫팩도 피켓을 드는 순간에는 잠시 내려놓는다. 한 초등학교 학생은 자신이 직접 만든 피켓을 들어 보이며 말한다. “할머니들을 위해 만들었어요. 하늘나라에서 이 말을 듣고 기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할머니가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닌 사과라고 꾹꾹 눌러쓴 글씨가 눈에 띈다. 군산 산돌학교 학생들은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고, 자유발언을 신청한 사람들은 위안부 역사를 잊지 말아 달라 호소한다. 어린아이부터 연세가 지긋한 사람까지, 많은 사람의 수요일이 일본 대사관 앞에 모여 소리를 낸다. 회색 벽 넘어 소리가 울려 퍼져 사과의 대답이 돌아올 때까지.

  바라보며, 바라며 
  시위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소녀상은 변함없이 대사관을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은 그런 소녀상을 바라보며 지난 과거에 대한 목소리를 낸다. 몇 번의 외침이 더 울리고 1416번째 수요시위가 끝났다. 20여 분이 지나자 소녀상 주위를 채운 인파는 사라졌다. 하지만 다음주 수요일에도 평화로는 다시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다. 수요시위 담당 활동가는 진정한 의미의 사죄에 대해 말했다. “가해자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공식적으로 사죄하며 후속조치로 배상하는 것이 ‘사죄’입니다. 자신들의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모호하게 책임을 면피하며 대충 돈으로 ‘위로’하는 것은 사과도 사죄도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는 순간 
  1945년 8월 15일 한반도에 “대한 독립 만세”가 울려 퍼질 때 소녀들은 광복을 알지 못했다. 찾아오는 일본 군인들이 사라졌을 뿐이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이들은 또 다른 전쟁터로 내몰렸다. “말이 남편이지 살면서 받은 고통이 참으로 컸습니다. 아들이 있는 데서 더러운 년이니, 군인들한테 갈보짓 했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을 땐 내 더러운 팔자가 원망스럽기만 했습니다.” 책 『25년간의 수요일』에 담긴 고(故) 김학순 할머니 말을 통해 그들이 받은 따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증언했고 그 용기가 모여 오늘의 수요일을 만들었다. 매주 수요일이면 간절한 외침이 일본 대사관에 닿는다. 몇 번의 날갯짓을 더 해야 이 싸움이 끝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수요일의 날갯짓은 계속될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바라는 순간이 올 때까지.

  소녀상을 우리곁에 두는 방법
  ‘작은 소녀상’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작은 소녀상은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김서경·김운성 조각가(조소학과 84학번)의 ‘작은 소녀상 확산 프로젝트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펀딩은 시작 46시간 만에 1억원을 달성할 만큼 많은 관심을 모았습니다. 후원액은 일부를 제외하고 ‘정의기억연대’에 기부됩니다. 여러분도 작은 소녀상을 통해 우리의 아픈 역사를 기억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이 자리에서 아픈역사 기억하리
 지난해 9월 사진기획에서는 서울에 위치한 16곳의 소녀상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서울에는 소녀상이 설치된 장소가 16곳에서 22곳으로 늘어났죠. ▲강동구 강동구청 ▲강서구 마곡유수지생태공원 ▲동대문구 용두공원 ▲송파구 송파책박물관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용산구 남산도서관 등 총 6곳에서 소녀상이 새롭게 제막됐습니다. 소녀상들은 각 장소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기억할 것입니다. 일본의 진정한 사죄가 이뤄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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