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세계가 무성영화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지하철 안이 고요해지고 이어폰에서 터져 나오는 음악 선율은 사라진다. 몽롱한 정신으로 한 곳을 응시하다 고개를 들면 어느새 상도역에 도착해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후문 언덕을 오르고 수업을 듣다 집으로 돌아간다. 하루가 마치 각본 같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이런 상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 모든 상황은 잘 짜인 연극이 아닐까.’ 공허함이 몰려왔다.

  그래서 신문사 활동에 더욱 집착하게 됐다. 항상 새로운 이슈가 쏟아지고 다양한 취재원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 만족했다. 정신없이 취재하고 녹초가 돼 퇴근할 때는 진짜 기자가 됐다는 생각도 일었다. 무엇보다 기뻤던 건 공허함을 벗어나 하나의 주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상할 노릇이다. 시간이 흐르며 예전의 공허함이 다시 몰려왔다. 학생에서 기자로, 귀가는 퇴근으로 바뀌었지만 스크린도어에 비친 얼굴은 여전히 잿빛이었다.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는 건 착각일 뿐이었다. 조금 억울했다. ‘저 얼빠진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아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그러다 문득 정기자로서 처음 썼던 기사가 떠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 열정이 넘치는 상태로 작성한 기사였기 때문이다. 해당 기사는 장애인권위원회(장인위) 설립의 무산을 다룬 기사로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분명 시의성 높은 주제였다. 자치기구 설립이 무산된 장애학생의 마음에 공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양측의 입장을 모두 잘 담았는지는 의문이었다. 기사를 쓰는 데 미숙하다 보니 글의 전반적인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기사에는 기자의 의식이 담겨있었다. 공간이 부족해 특별자치기구를 설립할 수 없다는 관념을 깨고 싶었다. 더불어 장인위 설립이 당위적 측면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한 소통 구조가 확립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후 학내에서 다양한 움직임이 일었다. 장애학생자치기구 TFT는 서울캠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장인위 설립 안건을 상정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진행했고 결국 전학대회에서 해당 안건은 가결됐다. ‘공간부족’의 한계를 초월한 순간이다. 

  얼마 전까지 기자는 각본의 굴레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익숙해진 업무환경, 배부대에 가득 남아 있는 신문, 어수선한 학내 상황까지 원인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장인위 설립’이라는 변화에 일조했던 경험이 현재를 재고할 수 있는 계기로 이어졌다. 

  결국 해답은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의식의 각성이었다. 학보사 기자로서 분명한 의식을 지닌 채 사람들이 묵인했던 진실을 좇아야 한다. 밀려오는 시간의 공허함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노를 저어야 한다. 이를 통해 영화 <트루먼 쇼> 속 ‘트루먼’과 같던 기자는 세트장에서 벗어나 주체를 되찾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기사에 분명한 의식을 녹여내겠다. 어느새 이번학기 마지막 발행을 앞두고 있다. 끝과 함께 새로운 시작도 기대된다. 오늘도 익숙한 관성을 떨치고 신문사 문을 연다.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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