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 말로 천냥 빚을 지는 당신에게
  • 노유림 기자
  • 승인 2019.12.02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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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겨울입니다. 날이 아주 싸늘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은 그마저도 잊고 살고 있습니다. 높바람보다 더 차가운 말이 오가는 사회가 시렸던 까닭일까요. 상처 주는 말을 던지는 일이 예사롭게 발생하는 요즘입니다.

  일언천금(一言千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가 천금 같은 값어치를 지닌다’는 뜻입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마냥 긍정적인 뜻은 아닙니다. 그저 말에도 값이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언행으로써 빚을 갚기는커녕 빚을 지는 이들이 되레 있으니 이게 더 맞는 해석이겠죠.

  얼굴을 마주하고도 손쉽게 상처 줄 수 있는 게 ‘말’입니다. 하물며 익명의 공간은 오죽하겠습니까. 이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속 불특정 다수의 비난과 조롱은 돌덩이가 돼 특정인이라는 개구리에 퍼부어졌습니다. 쓰러진 개구리를 보고도 죄책감을 갖지 않고 다른 개구리를 찾는 모습은 천금같은 ‘말’의 무게를 인지하지 못한 모습이었죠. 연예인이라는 이름을 걸고 대중매체로 뛰어든 이들이 다음 봄을 맞지 못한 채 고운 눈송이로 흩어질 때 돌을 던지던 그 많은 손은 다 자취를 감췄습니다.

  언론이라고 다를 바가 있었을까요. 지금껏 어깨너머로 배운 언론은 진의를 파헤치는 투쟁의 주체였으나 앞다퉈 속보를 낼 줄만 알았을 뿐 눈을 씻고 봐도 존중은 없었습니다. 약 한달 전 모 언론은 유명인의 숨진 ‘방식’을 헤드라인으로 게재했습니다. 또 다른 언론은 추모를 빙자한 기사에 적나라한 노출 사진을 함께 실었습니다.

  그로부터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았으나 자정의 기미는 여전히 찾기 어렵습니다. 보도준칙은 허상이었고 악플을 지적한 언론 역시 돌을 쥔 이에 불과했습니다. ‘애도를 표한다’는 형식적인 말에 뒤따른 가식에 기자는 목이 멨습니다. 개인부터 언론까지 누구 하나 말의 가치를 제대로 지킨 이들이 없었습니다. 언행을 되돌려 반성하지는 못할망정 과거를 망각하고 다시 말을 뱉으니 얼마나 우매한 태도입니까.

  꼭 연예인에게만 벌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누군가는 말로 인해 날붙이에 살을 베이는 고통만큼 마음이 허물어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공인을 향하지 않더라도 상대를, 사회를 병들게 하는 말은 가해라는 책임을 탈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말을 뱉고 돌아서는 사람은 듣는 이의 아픔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언행이 폭력의 온상이라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거나, 합리화하거나, 부정하거나, 망각하거나, 되려 뭐가 문제냐며 채근합니다. 후회와 사과가 필요한 이유를 피해자에게 되묻는 꼴은 억하심정이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하기도 어렵습니다. 더러, 핑계를 방어기제 삼아 같은 상처를 입지 않으려는 간교로만 여겨질 뿐입니다.

  당신의 말은 얼마입니까. 말로써 빚을 갚지 못할망정 상대에 천금 빚을 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생각지 않고 던진 말이 누군가를 해한다는 건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몇번을 더 반복해야 비로소 깨닫겠습니까.

노유림 대학보도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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