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아비온 뒤의 공기가 유난히 차갑게 느껴지는
이른 아침. 누구보다도 먼저 새벽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TV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촬영장소로 더욱 유명해진 곳, 노량진 수산시장.바람에 실려오
는 비릿한 냄새와 질퍽거리는 바닥이 새삼 시장에 있음을 실감케 한다. 널려
있는 생선들에 행여 몸이 닿지나 않을까 조심스레 돌아 다니는 잘 차려입은
행인들과 시끄럽게 틀어진 뽕짝 음악이 시장의 북색통을 더하고 있다.하루에
도 수십건의 거래가 오가는 시장 한 모통이 가게에서 주인 할머니와 생선을
사려는 아주머니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다."젊은 양반, 이 정도면 싼 거야
. 산지에서 직수송 한 것이라 얼마나 싱싱한데.""그래도 할머니, 너무 비싸
요. 5천원만 깎죠."근처에서 장사하던 횟집가게 아저씨가 한마디 거든다.

"그러려면 아예 사질 말아. 우리는 정해진 양대로 정직한 가격에 파는 사람들
이야. 더 적게도, 더 많게도 팔지 않아." 언제나 정직하게 장사하겠다는 자신
의 신념을 몰라주고 값을 깎기에만 열중하는 손님들을 볼 때면 속이 상한다
는 주인아저씨. 담배 한 개비를 피워물고 다시 손님을 맞는 그의 얼굴에 피
곤함이 베어 나온다.망설이다 발길을 돌리는 손님을 보내는 박순희 할머니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요즘은 불황이라서 그런지 생선 사는 사람이 부
쩍 줄었어. 생선은 안먹고도 살 수 있으니까. 다들 어려운 시기에 어쩌겠어
. 적게 벌어야지. 우린 그래도 쓸데없는 호객행위나 속여파는 일 따위는 하
지 않아. 그게 여기 사람들의 자부심이야." 할머니는 하던 말을 채 맺기도
전에 또 다시 지나가는 손님을 붙잡기에 바쁘다. 가끔씩 생선을 사가는 손님
들에게 정성껏 포장도 해준다. 그리고 맛있게 먹으라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전철역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사람의 왕래가 잦은 노량진 수산시장은 70년
의 전통을 자랑한다. 일제시대인 1927년 서울근교의 의주로에 설립되었다가
1971년 현 위치에 개설, 국내 상설시장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녔다.노량진
수산주식회사 기획홍보담당 이연우씨는 "전통 뿐아니라 외부인의 인지도가
우리 시장만큼 높은 곳이 없어. 게다가 종종 중국인들이 우리의 물류 시스템
을 배우러 오기도 해. 생선요리가 주식인 일본인들이 관광을 오기도 하구"라
고 설명한다.TV 드라마에서 최불암이 그렇듯이 마도로스들의 꿈이 담긴 이
곳에는 언제나 새벽을 열어가는 이들이 있다.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 치열함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길,
바람에 실려오는 비린 냄새가 웬지 싫지 않다.

<최윤영 기자>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