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강요 당했던 광기

복원하려는 푸코의 시도

“광기란 역사의 문제이며

이성은 우리를

조용히 혹사시켰다”

 

“시대의 진리를 의심하라!” 미셸 푸코는 유럽 철학이 당연하게 여겨 왔던 이성과 계몽의 의미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의 사상은 철학뿐만 아니라 역사, 문학, 사회과학, 의학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난 22일 302관(대학원) 301호에서 제209회 중앙게르마니아가 열렸다. 이번 강연은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주제로 주은우 교수(사회학과)가 진행했다. 푸코의 많은 저작 중에서도 『광기의 역사』는 그의 평생의 사유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주은우 교수는 푸코와 광기의 전반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강의를 펼쳤다.

  광기로 이어지는 푸코의 궤적

  주은우 교수는 푸코가 자신의 실존적 문제로부터 타자화 문제를 가시화한 사상가라고 설명한다. 주은우 교수는 “성소수자였던 푸코가 스스로를 사회에서 타자화된 존재라고 여겼을 수도 있어요. 따라서 이전에 인문·사회 영역에서 중요 주제가 되지 못했던 성, 신체, 광기 등의 주제를 빈번하게 다뤘죠.” 그러나 푸코의 철학을 단순히 개인사에 한정시킬 수는 없다. 그는 개인적 문제에서 나아가 서양문명 속에서 현대적 세계의 삶이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를 탐구한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푸코가 지식인들의 세계를 넘어 일반 대중에게까지도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된 계기는 『말과 사물』 덕분이다. 책이 출판될 당시 프랑스에서는 초판이 순식간에 절판됐다.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푸코의 사상에 따라 책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구조주의적 사유가 본질적으로 프랑스인들의 본능을 해소시켜줬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전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웠던 타자, 환자, 비이성, 범죄자 등의 개념을 고고학적 관점을 통해 등장시켰다. 고고학적 관점이란 고고학이 지층의 특징을 연구해 연대를 결정하는 것처럼, 언어문화의 특징을 파헤쳐 연대의 특이성을 연구하는 방식이다.

  푸코는 고고학적 관점을 보완하기 위해 『감시와 처벌』을 기점으로 계통을 중심으로 하는 계보학적 방법을 전개한다. 『감시와 처벌』에서 그는 권력을 주체로부터 파생되는 억압기제가 아닌 모든 사회와 제도에 스며들어있는 것으로 새롭게 설정한다. 『감시와 처벌』은 평범한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에 대항하는 푸코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저작이다.

  주은우 교수는 푸코의 사상은 모든 저작을 통해 구성돼 있기에 대표 저작을 하나로 꼽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푸코가 평생에 걸쳐 ‘광기’를 연구했다는 점에서 『광기의 역사』를 그의 사유가 잘 드러나는 저작으로 꼽을 수 있다고 한다. 연대기적으로도 최초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연구는 광기와 밀접한 연관을 맺기 때문이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를 통해 이성에 의해 외부로 배척됐던 비이성, 즉 광기에게 언어를 돌려주고자 시도했다. 근대성에 의해 광기는 침묵당하고 스스로의 언어를 잃었기 때문이다.

  푸코가 복원하고자 한 광기

  『광기의 역사』는 본래 좥광기와 비이성: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좦로 소르본대학에 제출한 박사논문이며 1961년에 처음 출간됐다. 푸코는 학자로 성장하면서 심리학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이는 『광기의 역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정신병원에서 견습하던 시절 재소자들의 심리분석, 감시자 처벌 등에 관여한 점이 『광기의 역사』 집필에 도움을 줬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를 통해 침묵을 강요당했던 광기에서 벗어나 존재론적 광기를 복원해내고자 했다.

  푸코는 사회가 시대에 따라 각각 다른 태도로 광인을 대한다고 주장한다. 중세시대와 르네상스에서는 광기를 다른 세계의 존재를 개시하는 방식이자 이성적 존재들이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는 경험의 근본적 방식으로 여겼다. 또한 푸코는 ‘바보들의 배’가 중세시대와 르네상스 때 광기에 대한 의식, 경험방식, 사회적 실천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바보들의 배’는 광인들을 배에 태워 도시 밖으로 내보내되 멀리 나가지 않고 특정 장소에 정박시키지도 않는다. 광인을 추방함으로써 비광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지는 않지만 분리를 시키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과거 도시 밖으로 추방됐던 나병환자의 역할을 광인이 대체하게 된 것이다. 즉 광인들은 접촉의 표면이 돼 비광인들이 사는 세계와 다른 세계의 접촉면을 제공한다.

  고전주의 시대에 정신의학적 관점이 도입되면서 광인에는 범죄자, 환자, 방탕자 등의 존재가 포함되기 시작했다. 비판적 의식과 실천적 의식이 합쳐지며 광인들은 감금된다. ‘실천적 의식’을 통해 이성과 대립되는 광인을 완전한 타자로 규정해 구빈원에 감금한 뒤 억압, 배제한 것이다. 그에 따라 비이성으로만 분류됐던 광기가 그로부터 분리되면서 이성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범주에 들어가게 됐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광인을 체계적인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객관화하는 ‘분석적 의식’이 등장했다. 전과는 달리 체계적인 지식의 대상으로 광기가 다뤄지게 됐다. 따라서 구빈원의 감금에서 나아가 광인들을 위한 새로운 전용시설이 생겼고 이는 현재 정신병원의 근원이 됐다.

  『광기의 역사』가 쏘아 올린 공

  출간 당시 푸코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사실과 오류가 다수 존재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정신의학의 역사를 광기의 억압으로 여긴 점이다.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해 푸코는 “광기를 말하기 위해서는 시인의 자질을 가져야한다”며 “정신의학과 같은 객관적 기준으로 광기를 정의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푸코에 따르면 정신의학화된 광기는 온전한 스스로의 언어가 아닌 추락 및 축소된 언어기 때문이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를 통해 데카르트가 광기를 배제하고 광인을 사고할 수 없는 존재라 구현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데리다는 데카르트가 절대로 광기를 배제한 적이 없고 그의 철학의 이성은 오히려 광기를 품고 있다고 반박하며 푸코와 논쟁했다.

  또한 푸코는 광기 그 자체로부터 새로운 가능성과 근원적 경험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정신의학적으로 광기는 치료대상이자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푸코의 주장은 과도하게 낭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주은우 교수는 『광기의 역사』가 매력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이성에 의해 언어를 부정당한 광기에게 언어를 돌려주고자 하는 시도는 불가능해 보였어요. 그러나 푸코는 도구적 이성의 협소한 한계를 넘어선 실질적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푸코의 『광기의 역사』는 이후 68혁명과 반정신의학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68혁명은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회변혁운동으로 권위주의와 보수체제 등 기존의 사회질서에 강력하게 항거했던 운동이다. 이는 점차 사회전반의 문제로 확산되며 정신의학적 성격에도 반기를 들었다. 68혁명이 반정신의학운동과 시기가 맞물리며 기폭제의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또한 푸코는 복지국가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 이전의 복지제도 하에서 억압됐던 타자들이 언어를 되찾을 수 있게 기존의 제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하기 때문이다.

  철학이 이성의 개념을 갖추며 광인을 침묵하게 만드는 시대에 ‘광인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시대의 진리를 의심한 철학자 푸코.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통해 이성과 권력의 폭력성에 대한 문제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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