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의 파라다이스
  • 김서현 기자
  • 승인 2019.11.24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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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악기상가

‘쎄시봉 트리오’는 1960년대 후반 송창식, 윤형주 등으로 구성된 국내 전설적인 통기타 그룹이다. 쎄시봉 트리오가 들려준 음악은 한국 포크송의 시초라 불리며 대중을 감미로운 통기타에 매료시켰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통기타를 비롯한 온갖 악기 부품을 한번에 쟁취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악기의 낙원, 낙원동악기상가는 어떤 문화를 담고 있는지 살펴봤다. 

 

  길가에 맴도는 여흥

  종로 일대가 위치한 창덕궁 앞길은 과거 조선시대 고위직 행차를 피하는 ‘피맛길’이었다. 이로 인해 많은 인파가 모일 수 있었고 종로 주변에 위치한 낙원동 거리는 자연스레 기방과 주막으로 채워졌다.

  1970년대 낙원악기상가는 이러한 여흥이 남아있는 낙원동에 문을 열었다. 낙원악기상가 번영회 유강호 회장은 1960년대 말 사회 분위기가 상가 부흥에 영향을 줬다고 말한다. “쎄시봉에서 시작된 통기타 열풍이 1980년대까지 이어지면서 악기 시장이 활성화됐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낙원상가에 모였죠.”  

  설립 초창기였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낙원악기상가는 양품점과 가구점으로도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1979년 탑골공원 담장정비사업으로 낙원상가에는 피아노 상점들이 대거 입주하게 됐다. 전자악기상점 ‘미래소리’의 상인 김기현씨는 피아노 입주가 상가의 정체성 형성에 크게 일조했다고 말한다. “1980년대부터 중고 피아노가 본격적으로 상가에 입주하게 되면서 악기 용품이 주를 이루게 됐죠.”

  낙원악기상가는 대중에게 단순히 물건만 판매하는 상점이 아니었다. 상가는 통신수단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을 당시 악사들이 모이는 ‘만남의 장소’ 역할을 톡톡히 했다. 유강호 회장은 상가에서 다양한 인연이 맺어졌다고 말한다. “당시 낙원악기상가는 악사들이 모여 정보를 교류하고 인연을 맺는 사랑방 같은 곳이었어요.”

 

  이곳이 낙원일지어다

  다소 투박한 모습의 상가 건물은 종로3가역 4번 출구를 찾아 나오면 마주할 수 있다. 커다란 고딕체 ‘낙원악기상가’ 문구가 박힌 채 고풍스러운 풍채로 손님을 맞이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모든 매장이 각종 악기로 꽉 채워진 모습이 보인다. 

  유강호 회장은 낙원악기상가가 세계적으로도 거대한 규모라고 설명한다. “낙원악기상가 정도 규모 악기상가는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워요.” 실제로 낙원악기상가에는 300여개에 가까운 악기 관련 점포들이 입주해있다. 약 1200명 정도 규모 종사자들이 총 3만여종의 악기 관련 물품을 국내외 구매자와 활발히 거래 중이다. 김기현씨는 낙원악기상가가 가진 가장 큰 장점으로 폭넓은 악기 종류를 꼽는다. “다른 상가는 특정 악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아요. 낙원악기상가는 악기부터 시작해 연주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을 한번에 구매할 수 있죠.” 

  낙원악기상가가 가진 장점은 다양한 악기뿐만이 아니다. 유강호 회장은 낙원악기상가가 다양한 복합문화공간도 갖추고 있다고 설명한다. “2, 3층 악기 매장에 더해 4층에는 중장년층을 위한 실버 영화관과 낭만 극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넓은 고객층이 자리하고 있다. 낙원악기상가를 방문하는 고객층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20대와 5, 60대 중장년층 수요가 상대적으로 두텁다. 20대 학생은 주로 전공 혹은 취미 목적으로 상가를 찾는다. 반면 중장년층은 일명 ‘뽕짝’ 음악에 대한 향수로 상가를 찾는 경우가 많다. 김기현씨는 익숙하다는 듯 악기 버튼을 눌러 트로트 리듬을 들려준다. “중장년층은 주로 흘러간 과거의 노래를 연주하기 위해 악기를 사 가곤 해요. 과거의 향수를 찾는 거죠.”   

  현대에 리듬을 맞춰

  낙원악기상가 상인들은 입을 모아 악기가 명실상부 스테디셀러라고 말한다. 낙원악기상가에서 37년째 기타를 판매하는 ‘세종수제악기’의 상인 손창기씨는 앞으로도 상가가 꾸준한 수요를 유지하리라 자신한다. “음악은 일종의 레저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경기가 좋지 않아도 음악을 찾는 사람은 많죠.” 그 말을 증명하듯이 손창기 씨는 곧 있으면 10년간의 연수를 마친 아들에게 장사를 물려줄 예정이다. 김기현씨 역시 악기 판매 앞에 놓인 긍정적 미래를 확신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돼가면서 악기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요. 음악은 필수 교육과정에 포함될 정도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죠.”

  하지만 꾸준한 악기 수요에 비해 상가 건물이 다소 노후화돼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실제로 낙원악기상가는 1세대 주상복합건물에 해당한다. 건물 생김새에 지난 50년간 세월이 모두 담겨있다. 김기현씨는 옛날식 건물이 판매하는 악기 분위기를 좌우하는 점에 걱정을 표한다. “피아노와 같은 클래식 악기는 상가가 가진 예스러운 분위기와 잘 어울려요. 반면 전자악기는 옛날식 건물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죠. 상가 분위기가 조금 더 현대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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