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동 달동네는 왜 쓰레기산이 됐나
  • 이정숙 기자
  • 승인 2019.11.18 18: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달이 가깝던 어느 동네

안 봐도 비디오인 캠퍼스 라이프, 이제는 지루하지 않으신가요? 교문 밖을 조금만 벗어나면 흥미로운 지역 라이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처 알지 못했던 동작과 안성의 이야기를 심층적이고 다양한 시각으로 풀어드리겠습니다. 이번학기 지역보도부와 함께라면 지역전문가가 되는 건 시간문제죠. 이번주 지역학개론은 지난주에 이어 개발과 관련해 상도지역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동작구 내 머지않은 곳, 불안정한 주거생활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주민들이 있는데요. 상도4동 산 65번지, 그 현장에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동작과 안성의 생생한 소식을 알 수 있는 이번주 ‘동안’도 놓치지 마세요. 그럼 이제 지역학개론을 펼쳐볼 시간입니다!

 

산65번지 마을 꼭대기에 위치한 집. 이 일대에선 달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산65번지 마을 꼭대기에 위치한 집. 이 일대에선 달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재개발 바람이 휩쓸고 간 곳엔
밀려난 원주민·세입자만 남아

무소불위의 합법적 약탈
주택 철거 소식에도 속수무책

여전히 아픈 기억, “강제 철거”
남은 주민은 또 어디로 가나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4동 산65번지, 달이 가깝던 어느 동네는 10년 사이 ‘쓰레기 산’이 됐다. 지난 12일 방문한 현장엔 강제 철거 이후 남겨진 건축폐기물과 생활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사람 1명이 겨우 지나갈만한 길목 옆으로 폐타이어와 버려진 유모차가 뒤엉켜있기도 했다. 산동네 끝자락에 자리한 집 앞에 다다르자 산65번지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을은 시간이 멈춘 듯 강제 철거의 흔적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집으로써 생을 다한 공간들은 기자의 방문에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상도4동 산65번지 주민들은 여전히 도시 개발 그림자 아래 있다. 중대신문이 만난 한 마을 주민은 산65번지 일대를 ‘사람이 살지만 죽은 동네’라 불렀다.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 사람들의 애환과 재개발의 명암을 조명해봤다.  

  재개발 반대 주민은 철거민이 된다

  상도4동은 지난 2007년 상도제11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산65번지는 양녕대군 후손으로 구성된 재단법인 ‘지덕사’ 소유 땅으로 재개발 정비구역에 포함됐다. 재개발 구역 지정 이전, 주민들은 지덕사 측에 지세를 내고 집을 지어 살았다. 무허가 주택도 여럿 있었으나 일반 주택과 마찬가지로 가옥주와 세입자가 존재했다. 

  지난 1965년도부터 이곳에서 살아온 이상기씨(68)는 처음 산65번지를 찾았던 때를 회상했다. “내가 여기 처음 왔을 적에, 우리 아부지가 땅이 좋은 곳을 찾아서 황토 흙으로 흙벽돌을 만드셨어. 그렇게 집을 지어 살았다고. 그 당시에 여기는 전기도 안 들어오고 마을 이름도 없었지.” 그는 지난 1965년부터 차츰 산비탈에 집을 짓는 사람들이 모이면서 마을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사정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달동네는 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지난 2008년 행정법원판결에 따라 이곳의 300여 가구는 ‘철거민’이 됐다. 행정법원이 재개발 과정에서 구성된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설립추진위원회’의 자격에 무효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당시 행정법원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2조 제9호를 근거로 위원회에 속한 무허가건축물 소유자의 경우 조합원 자격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상기씨는 이후 용역 업체가 강제 철거를 재개했다고 답했다. “여기 살던 사람들 권리라곤 지상권밖에 없잖아, 집 짓고 살던 만큼은 보상을 해줘야 하는데. 그 재판에서 지고 무허가 주택이 다 부서졌지. 사람이고 살림살이고 다 끄집어내고….” 검은 양복의 용역들은 새벽이고 낮이고 할 것 없이 마을에 들이닥쳤다. 

고물상에 모여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들.
고물상에 모여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들.

  그날 이후 사라진 것들

  “새벽녘에 새카만 용역들이 와서 할머니들도 들어다가 내놓고 그랬어.” 장혜순씨(79)의 집도 건설사 측 강제 철거에 속수무책으로 폐허가 됐다. 마을 입구 환희슈퍼 옆길을 따라 올라가면 지붕과 벽이 내려앉은 집이 당시 상황을 보여준다. 어려운 살림에 마련한 전셋집이었다. “누가 전화를 했더라고. 전화 받아보니까 언니네 집 다 때려 부쉈다고 해서 와봉께, 살림 다 때려 뿟고 싹 실어가고. 집이 다 폭삭 내려앉았더라고. 마음이 아프기만 혀?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제.” 재개발 반대 시위에 업고 나간 손녀는 어느덧 중학생이 됐지만 무너진 집은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다.

  장혜순씨는 강제 철거가 진행되던 날 아들 집에 방문해 있던 터라 미처 살림을 챙길 새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아저씨 돌아가실 적에 쓰던 영정사진까지 싹 다 가져가 버렸잖어, 앨범까지 다 실어가 버렸어.” 
강제 철거 이후 그가 돌려받은 건 전세금 1700만원뿐이다. 그마저도 10여 년이 지나서야 겨우 받았다. “처음 산동네 올 적에는 돈이 없응게 싼 데로 왔다가 돈 모아 가꼬 1700만원 주고 전세로 갔지. 산동네 철거한다고 저래가, 나는 거기 살았어도 보상이라고는 십원 짜리 하나 못 받았네.” 재개발은 그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갔지만 장혜순씨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요즘 그는 겨우 마련한 월세방에 홀로 살고 있다. 평소에는 소일거리 삼아 고물을 팔며 지낸다. 방안 가득 모은 우유 팩을 가지런히 정리하던 손끝엔 노련함이 묻어났다. 기자가 장혜순씨 댁을 방문한 날 그는 고물을 판 돈으로 2천원어치 떡을 사 먹었다고 말했다. 

  “구질구질허게 이렇게 살아. 적적해두, 딴 때는 몰라도 혼자서 아플 때, 그때가 제일 힘들어.” 산동네 마을이 사라지기 전에는 이웃과 왕래가 잦았던 그였다. “산동네 살 적에 수제비 같은 것도 하면 앞집에 솥단지 갖다 놓고 같이 먹었지. 다 친하니께. 길 하나 사이에 놓구 왔다 갔다 했지.” 쓰레기산이라 불리는 산65번지도 한때 온기 넘치던 동네였다.

장혜순씨는 어려운 살림에도 쌈짓돈을 모아 이웃을 도우며 산다.
장혜순씨는 어려운 살림에도 쌈짓돈을 모아 이웃을 도우며 산다.

  남은 이들의 하루가 끝나는 곳

  현재 산65번지에 사는 주민은 20여 명 남짓이고 보금자리를 잃은 300여 가구는 뿔뿔이 흩어졌다. 남은 이들은 마을 입구에 자리한 고물상에 모여 여가를 보낸다. 산65번지 입구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조윤자씨(65)는 매일 아침 7시면 가게 문을 연다. “여기는 영업장이라 마을 사람들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해. 동네에 혼자 계셔서 식사 못 챙기시는 분도 있는데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되잖아. 같이 식사들 하다 보니 끈끈한 정이 생겼지.”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고물상은 ‘아지트’로 통한다. “삶이 다들 힘드니까, 식사도 같이 하구 술도 드시고 그러지.”

  조윤자씨는 별다른 수입이 없음에도 고물상 문을 닫기 힘들다고 말했다. “여기 고물상 오는 것도 노인네들이 하지, 젊은 사람들이 하겠어?” 소일거리 삼아 고물을 줍는 주민들의 사정을 모른 체 할 수 없었던 걸까. 가게 안팎으로 가득 찬 고물이 지난날을 설명하는 듯 했다. “낮에 가게 앞에 영감님들 모여 앉아 계시고 그래. 혼자 사는 사람들도 많고, 연세들이 많으셔서 일도 못 나가고.” 오래된 고물상엔 20여 년 묵은 마을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윤자씨는 오늘도 고물상 문을 연다. 

  하지만 겨울이 가면 그마저도 불가능해질지 모른다. 오는 봄에 중단된 강제 철거가 다시 시작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내년 3월에 다시 철거한다던데. 우리도 난감하지, 돈은 없고 여기서 쫓겨나면 할 것도 없고. 봄이 오면 여기도 시끄럽겠지. 오늘도 개발사에서 다녀갔는데 뭘.” 

  일과를 마친 뒤 고물상을 찾은 이상기씨 역시 연신 담배만 피웠다. “우리네 사정은 열악하고, 분위기는 험악하고…. 남은 사람들은 오고 갈 데 없이 살고 있는데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하나.” 구청 차원의 지원은 없냐는 질문에 주민들은 고개를 저었다. “구청 공무원도 형식적으로만 지원하지 마을엔 코빼기도 안 보여.” 다가올 봄이 그들에겐 예정된 불행이었다. 계절의 순환을 막을 수 없듯이 그들의 힘만으로 강제 철거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낙후된 도시를 개발한다며 시작된 재개발사업지에는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투기꾼과 철거 용역이 몰려든 곳에 원주민과 세입자는 설 자리가 없다. 그리고 도시 개발의 필연적인 부작용으로 치부될 뿐이다. 산65번지 주민에게 재개발은 덮어두기에도, 꺼내놓기에도 힘든 기억으로 남았다. 안고 살기에 벅차고 잊고 살기에 아픈 ‘그날’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강제 철거 소식에 조윤자씨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강제 철거 소식에 조윤자씨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