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시장 내에 자리한 청계천헌책방거리의 모습이다. 책방 안팎으로 헌책들이 쌓여있다. 번화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17곳만 운영 중이다. 사진 김민지 기자
평화시장 내에 자리한 청계천헌책방거리의 모습이다. 책방 안팎으로 헌책들이 쌓여있다. 번화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17곳만 운영 중이다. 사진 김민지 기자

“혹시 그 책이 아직도 있을까요?” 책방을 찾아온 나이 지긋한 손님이 묻는다. 주인은 말없이 사다리에 올라타 케케묵은 책장 사이에서 오래된 서적 한권을 꺼낸다. 책을 받아든 손님의 입가에는 함박 미소가 번진다. 헌책이 새 주인을 만나 묻혀있던 가치가 깨어나는 순간이다. 이런 소중한 순간을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는 장소가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내에 자리하고 있다. 청계천헌책방거리의 역사, 현황 등을 짚어보기 위해 지난 12일 직접 다녀왔다.


  빛바랜 거리에서
  청계천 양옆으로 자그마한 매장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줄지은 간판 사이로 간간이 책방의 이름이 보이고 매장 안팎으로는 책이 탑처럼 쌓여있다. 올해로 청계천헌책방거리에서 53년째 자리를 지켜온 민중서림 송기호 대표는 책방 운영이 삶의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책방과 함께하는 삶은 제게 큰 즐거움을 줘요. 손님이 원하는 책을 찾아줄 때 가장 뿌듯하죠.” 하지만 송기호 대표는 근래 장사가 잘되지 않아 걱정이라고 덧붙인다. “요즘 장사가 잘 안돼요. 늘 오던 사람들만 오죠.”
  70년대부터 청계천책방거리에서 터를 지켜온 글방 안용기 대표는 헌책방의 위기가 복사기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고 말한다. “책을 복사할 수 있게 되면서 헌책방을 찾는 학생이 줄기 시작했어요. 그 후 인터넷과 대형서점도 거리에 영향을 미쳤죠.” 대형서점과 기업형 중고서점에 밀려 책방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현재 청계천에서 운영되고 있는 헌책방은 단 17곳뿐이다. 얼마 남지 않은 헌책방의 근현대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서울시는 지난 2013년 청계천헌책방거리를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1960년대 청계천 변은 발길이 줄어든 지금의 모습과 달리 헌책을 파는 상인들로 북적였다. 안용기 대표는 헌책방거리의 유래가 노점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옛날에는 나무로 된 사과박스 안에 책을 넣어 다니면서 노점 형태로 헌책방을 운영했어요.” 약 60년 동안 서울에서 살아온 한종규(65)씨는 기억을 되짚으며 당시 청계천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옛날에는 청계천에 다리가 없었고 전부 천막촌이었어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청계천헌책방거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지난 1959년 시작된 청계천 복개 공사로 평화시장이 신축되면서 책방들이 건물로 입주해 본격적으로 헌책방거리가 형성됐다. 안용기 대표는 과거에는 청계천책방거리가 북새통을 이뤘다고 말한다. “70년대에는 헌책방이 100군데가 넘었어요. 우리 책방에도 학생들이 줄을 서서 책을 사가곤 했죠.” 서울 토박이 심현(65)씨는 과거에는 헌책을 사고파는 문화가 당연했다고 설명한다. “그때는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아 책도 하나의 자산이었어요. 다 쓴 책을 팔아 그 돈으로 다른 책을 사곤 했죠.” 


  빛을 발하길 바라다
  헌책방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을 발견하는 기적이 이뤄지는 곳이다. 사람들은 헌 책을 통해 시간을 사고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 안용기 대표는 과거에는 헌책방이 자부심의 원천이었다고 말한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수단이 책방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있었죠.” 거리에서 헌책을 둘러보던 박정규(66)씨는 활기 넘쳤던 책방거리를 향한 그리움을 이야기한다. “이미 지나가버렸지만 옛날 그 시절이 그립죠. 저도 책을 많이 샀었거든요. 헌책방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사양길에 들어선 헌책방거리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수반돼야 할까. 서울미래유산 문화정책과 관계자는 헌책방거리의 보존을 위해 과거 세대 문화에 관심을 갖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울시에서는 매년 해당 거리를 알리기 위해 청계천헌책방거리책축제를 진행하고 홍보용 책갈피, 일러스트엽서 등을 제작하고 있어요. 하지만 헌책방 거리가 시민의 곁에서 건재하기 위해서는 시민들 스스로가 옛 세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추억을 지켜나가야 하죠.” 
  덧붙여 전국책방조합 고영근 이사장은 헌책방의 부흥을 위해 소통의 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단순히 책만 파는 장소가 아니라 시민들이 헌책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필요해요. 제2의 서울책보고가 생겨 책을 판매하고 서점을 홍보하는 등 독자가 쉽게 헌책방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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