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집 없으니 새집도 없다
  • 심가은 기자
  • 승인 2019.11.18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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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도 빛을 비추려면

극한으로 내몰리는 취약계층

명목뿐인 주거권에 위협받고

보호 법률도 실효성 부족해

상도4동 산65번지의 시간이 멈춘 듯한 모습. 패널로 둘린 쓰레기산 안쪽이다.  사진 이정숙 기자

중앙대 후문에서 상도역 방향으로 나와 상도지하차도를 지나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상도4동 산65번지가 있다. 고층 아파트와 유명 프랜차이즈가 즐비한 상권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패널로 가려진 거대한 산이 나타난다. 패널 뒤 주민들은 철거 위협에 따른 주거 불안 속에 매일을 살아간다. 이렇듯 우리 가까이에도 재개발사업에서 변두리로 밀려버린 취약계층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삶을 알지 못한다. 누가 패널 뒤 그들을 외면하는가. 주거취약계층의 현실을 전문가들과 함께 살펴봤다.

  헌 집에서 더 헌 집으로

  재개발 예상 지역에는 상승하는 집값을 노리고 입주권을 얻으려는 투자가 발생한다. 그러나 일반적 투자와 달리 주택·토지 등을 무차별적으로 매입하는 등의 행위는 투기라고 할 수 있다. 투기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불러와 취약계층의 주거를 불안하게 만든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도심의 특정 지역·장소의 용도 변화에 따라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면서 기존 거주자 또는 임차인들이 내몰리는 현상이다. 주거 불안에 직면한 주거취약계층은 대체로 저소득층이며,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한다.

  흑석동부동산협의회 나승성 회장은 주거 비용 폭등으로 원주민의 정착률이 낮아진다고 말한다. “저소득층 주민들은 거주지에 계속 살고 싶어도 불가피하게 떠나야 할 수 있어요. 주거취약계층의 주거 선택권은 피동적으로 결정되는 셈이죠.” 서원석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과)는 재개발 지역과 주변 지역의 임대료 상승이 하향적 주거 순환을 야기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한다. “주거취약계층은 기존 거주지에서 매우 먼 곳까지 비자발적으로 이주하거나 기존보다 더욱 열악한 주거환경을 가진 곳으로 이사를 해야만 합니다.” 지금의 재개발사업 방식에 따르면 대부분의 주거취약계층은 영원히 기존 거주지로 돌아올 수 없다.

  주거권은 허울뿐이라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제78조에는 재개발사업으로 생활 근거를 상실하는 이주대책대상자에 대한 이주정착금 지급을 명문화하고 있다. 이용교 교수(광주대 사회복지학부)는 해당 법률이 지원 대상자의 필요를 반영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한다. “세입자는 지원비가 아닌 주거권을 원해요. 이들은 기존 거주지에 머무르기를 원하지만 이러한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죠.” 또한 해당 법률 시행규칙에서 지급을 의무화하고 있는 주거 이전비 대상에는 무허가건축물 주거자가 제외돼있다.

  재개발사업은 대개 사유재산을 바탕으로 진행한다. 때문에 공공이 아니라 재산권자인 민간이 조합을 이뤄 주도한다. 조합은 정비구역에 위치한 토지 또는 건축물의 소유자 또는 그 지상권자로만 구성된다. 이로 인해 세입자는 실질적 거주자임에도 재개발사업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공공은 공공지원제도에 따라 행정·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관리자 역할을 주로 수행한다. 동작구청 도시개발과 노호근 주무관은 재개발사업 진행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에도 일반적으로 소유권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한다고 밝혔다.

  허술한 울타리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동작구지회 정유식 회장은 재개발 과정에서 주거취약계층을 보호할 장치가 미흡하다고 이야기한다. 정부는 주로 공공임대주택 보급을 통해 자금 여력이 부족한 주거취약계층의 주거 안정을 꾀한다. 주거취약계층 임대주택에는 영구임대, 매입임대, 전세임대 등이 있다. 이는 생계·의료급여 수급자 등 일정 기준에 부합될 경우 다양한 유형의 임대주택에 거주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다. 그러나 서원석 교수는 해당 방안만으로는 주거취약계층의 수요를 충분히 충족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공공임대정책으로 기존 세입자 모두의 주거권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은 명확합니다. 일부 재개발 지역은 개발 이익을 극대화하려 민간에 임대주택을 통매각하기도 해요. 주거취약계층을 향한 배려가 부족한 모습이죠.”

  지난 4월 국토교통부는 재개발사업 시에 의무적으로 지어야 하는 임대주택 상한 비율을 최대 30%까지 증가시킨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용교 교수는 여전히 공공임대주택의 총량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임대주택을 끊임없이 짓고 있지만 그만큼 분양주택으로 바뀌어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분양주택으로 전환되는 임대주택은 전체 임대주택의 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죠.” 실제로 무주택 서민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의 네가지 유형 중 두가지는 각 5년, 10년 이후 분양 전환하는 방식이다.

  공공임대주택 사업을 진행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운영 개선도 필요하다. 정부가 지난 4월 29일부터 5월 31일까지 진행한 운영실태 점검에서 약 600건의 부적정 사례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해당 적발사례는 ‘예비입주자 미선정’, ‘정정공고 적정기간 미확보’ 등이다. 이에 정부는 ‘입주자 선정 공정성 강화’ 등의 제도 개선을 추진해 취약계층의 주거 안정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후속 조치 과정에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세대에게는 추가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부질없는 새집 타령

  서원석 교수는 재개발사업으로 기존 지역사회가 와해되는 문제를 언급한다. “재개발지의 고유한 지역성까지 사라지는 현실이에요. 그러나 뚜렷한 대안은 없는 실정이죠.” 나승성 회장은 이주민의 정서적 문제를 우려한다. “장기 거주자들은 지역 내에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요. 그런데 재개발사업으로 이주해야 하니 인적 네트워크가 무너지는 문제가 있죠.”

  재개발사업은 낙후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환경을 정비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그렇기에 사업 지역이 노후화돼 있다는 특징이 있다. 노후화된 지역은 임대가가 낮아 주거취약계층이 거주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재개발사업으로 인한 혜택을 기존 거주자들도 누릴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대부분은 누리지 못한다’고 답했다. 우리 사회의 주거취약계층에게 ‘정비된 주거지역과 안정된 거주’는 너무도 먼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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