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언어, 혈통 등으로 ‘족(族)’을 구분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여기 개성과 취향으로 하나의 ‘족’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학기 문화부는 저마다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문화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번주는 ‘캠핑족’의 족장과 함께했습니다.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백패킹, 미니멀캠핑 등 다양한 캠핑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데요. 숲 내음 가득한 캠핑족의 일상이 궁금하다면 약 30년 동안 전국 곳곳 캠핑을 다닌 임복래씨 이야기에 집중해주세요. 지금 시작합니다!

불과 자연에 둘러싸여 즐기는
‘힐링’의 순간
서로를 이어주는 공간
겨울 캠핑의 묘미

 

캠프파이어란 산에서 모닥불을 피우는 행위를 의미하는 용어로 체온 유지는 물론 은은한 분위기 형성을 목적으로 이용된다. 깊은 숲속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캠핑 분위기가 돋아진다. 캠핑아웃도어진흥원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 기준 캠핑족의 수는 3년간 약 2배수의 증가율을 보여줄 정도로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캠핑의 매력이 날로 커지고 있는 요즘, 그 매력을 살펴보기 위해 캠핑족의 족장을 만나봤다.   

  일상 깊숙이 자리한 텐트

  텐트와 갖가지 캠핑 준비물을 돌돌 말아 차에 싣는 순간부터 불 피운 흔적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순간까지 캠핑은 수없이 많은 손길을 거친다. 하지만 임복래씨(53)에게 캠핑은 단순히 손이 많이 가는 야외 활동이 아니다. 24살 때부터 약 30년간 캠핑을 꾸준히 즐겨온 그는 최소 이주일에 한번씩 캠핑을 다녀온다. 이러한 캠핑 습관은 그가 국내 모든 국립공원의 캠핑장을 섭렵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국립공원 캠핑장 중 다녀오지 않은 곳이 없죠. 강릉, 정선 등 다양한 곳을 다녀왔어요.”

  그의 직업 역시 캠핑에 정기적으로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줬다. 학교 급식을 납품하는 자영업자인 그는 일이 끝난 후 모든 시간을 캠핑에 쏟는다. “일이 금요일 오전에 끝나기 때문에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온전히 캠핑을 즐길 수 있어요.” 비교적 일찍 퇴근할 수 있는 특성 덕분에 캠핑족으로서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임복래씨의 일생이 캠핑으로 가득 차있는 건 두말할 필요 없는 사실이다. 그에게 캠핑은 가족과의 추억 그 자체다. 임복래씨는 설악산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말을 전한다. “설악산을 오르며 아내에게 청혼했죠.” 밤 산행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던 시절 임복래씨는 개구멍을 통해 아내를 설악산으로 이끌었다. “저녁 8시부터 같이 산을 올랐어요.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산속에서 아내에게 이 길을 계속 함께 가고 싶다고 고백했죠.” 

  캠핑으로 꾸린 가족은 그대로 캠핑을 사랑하는 이들이 됐다. 매년 12월 31일 임복래씨 가족은 연례행사처럼 강릉 솔향기 캠핑장을 찾는다. 강릉 솔향기 캠핑장은 강릉 연곡해변과 솔숲 사이에 위치한 사계절 캠핑장이다. 임복래씨는 솔향기 캠핑장에서 온 가족이 함께 추억을 쌓는다고 말한다. “저희 부부가 먼저 도착해 텐트를 쳐놓으면 서울에 사는 두 딸은 KTX를 타고 강릉으로 모여요. 만나면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일출도 보죠.” 

  캠핑을 향한 임복래씨의 열정은 딸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임복래씨의 딸은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등을 2박 3일 동안 혼자 등반할 정도로 열렬한 캠핑족이다. 임복래씨는 딸이 갓난아기일 시절부터 함께 캠핑장을 찾았다. 딸이 성인이 된 지금도 주기적으로 함께 가족 캠핑을 떠난다. “딸은 캠핑을 생각의 장으로 여겨요. 생각할 거리가 있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캠핑을 하러 가더군요.”

 

 

  마르고 닳도록 캠핑 예찬

  캠핑의 매력은 무엇보다 자연을 가장 가까이서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임복래씨는 캠핑 이튿날 아침 마주하는 나무 내음이 영감을 준다고 말한다. “나무에 둘러싸여 있으면 머릿속이 맑아져요. 콘크리트에 갇혀 있던 삶에 환기를 주는 느낌이죠.” 임복래씨는 강릉 소금강 주변에서 처음 나무가 주는 안락함을 실감했다. “소금강이라 말하면 자칫 물로 착각할 수 있는데 소금강이라는 이름은 작은 금강산을 의미해요. 오대산 부근에 위치해 있죠.”   

  임복래씨는 사람들이 캠핑에 이끌리는 이유가 자연을 향한 ‘인간의 본성’이라 설명한다. “캠핑은 자연에 한 걸음 다가가는 거예요. 한 번이라도 캠핑에 가본 사람은 다시 캠핑을 찾기 마련이에요. 인간의 본성이 불과 자연을 찾아가죠.” 실제로 캠핑족이 자주 쓰는 언어 중 ‘불멍’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캠핑 과정에서 불은 중요한 존재다. ‘불멍’은 ‘장작불을 보며 멍을 때린다’는 뜻으로 캠핑족이 얼마나 불을 사랑하는지 보여준다. 임복래씨는 텐트 앞에 피어난 불꽃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는다. “화로에 장작을 피우고 가만히 바라보면 그 불빛이 정말 예뻐요. 군고구마를 구워 먹는 묘미도 있죠.”

  캠핑의 매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임복래씨는 캠핑이 만남의 장을 형성해준다는 말도 덧붙인다. “캠핑을 하러 가면 옆 사람과 자연스럽게 인사하게 돼요. 마음이 맞으면 밥도 먹고 술도 마시죠. 캠핑에서 만난 사람끼리는 위아래가 없고 득과 실을 계산할 필요도 없어요.”    

  매년 오는 겨울이지만

  “손가락을 까딱할 수 있을 때까지는 캠핑을 계속하려고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임복래씨가 단숨에 내뱉은 대답이다. 임복래씨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한 주를 캠핑으로 마무리하고 싶다는 확고한 의지를 전한다. “집에만 있으면 TV나 유튜브 등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버리잖아요. 캠핑을 가면 텐트 밖 화장실을 가는 행위부터가 움직임의 시작이에요. 평소보다 몸을 더 쓰는 셈이죠.” 

  열정 충만한 임복래씨는 앞으로도 다양한 캠핑 장소를 모색할 예정이다. 그가 꼽은 다음 캠핑 장소는 겨울 제주도다. “여름에는 10일씩도 다녀오는 제주도인데 겨울에는 엄두가 안 나더군요. 이번 겨울에는 꼭 도전해볼 생각이에요.” 그는 겨울의 거센 풍랑 때문에 차를 실은 배의 운항이 순조롭지 않은 점이 겨울 캠핑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이유라고 덧붙인다.  

  임복래씨는 겨울 캠핑에 관한 강한 애정을 표현한다. 그는 주위 인물 중에서도 특히 가족 단위의 사람들에게 겨울 캠핑을 자주 권한다는 말을 전한다. “텐트 공간이 상대적으로 좁잖아요. 추위를 피해 텐트로 들어온 사람들끼리 친해질 공간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가족끼리 얼굴을 마주하고 소통할 기회를 마련해주죠.” 그는 눈 오는 날 텐트 안에 누우면 눈이 내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며 웃음 지었다.

  인터뷰 막바지에 그가 힘주어 말한 가치관에서 캠핑에 관한 깊은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캠핑에는 성패가 없다고 생각해요. 캠핑에서 느끼고 보는 모든 존재가 우리에게 기억으로 남죠.” 캠핑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면 일단 떠나보자. 임복래씨의 말처럼 캠핑은 성패 없는 모습으로 그 답을 보여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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