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대화’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흔히들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대화를 이렇게 표현한다. 영혼 없는 대화 속 가치 있는 상호 작용은 대개 이뤄지지 못한다. 영혼이 없다는 뜻은 집중하지 않는다는 의미고, 집중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감이란 타인의 감정이나 의견에 본인도 이입하는 행위로 대화의 질을 결정하는 필수 요소다.

  지난 7주의 신문 발행 기간 동안 기자는 문화부에 몸을 담았다. 자신만의 생활을 영위하는 족장부터 거리의 상인을 비롯한 다양한 관계자까지 다채로운 만남을 경험했다. 하지만 풍성한 내용으로 채워진 지면과 달리 취재 때마다 기자의 마음은 근심으로 가득 찼다. 하루 공부한 얕은 지식으로 전문가를 상대하기란 꽤나 두려운 일이었다.

  토덜트족의 족장을 만났을 때였다. 나름의 준비를 해갔지만 막상 족장과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그의 전문성과 아우라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심지어 인터뷰 중 족장이 질문지에 없는 내용을 언급할 때 기계적 대답을 뱉는 게 최선의 대응이었다. 사전에 준비하지 못한 내용이라 공감할 수 없었다. 그저 지면에 쓸 답변을 받았다는 데 그쳤을 뿐이다. 취재는 순탄하게 끝났지만 좀 전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했더라면 더 좋은 이야기를 이끌 수 있었으리라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스스로 문제점을 개선해 보고자 ‘내가 족장이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30년 경력자에게 너무도 당연하고 따분한 질문을 퍼붓는데 정작 해주는 답변은 이해하지 못하는 기자가 찾아온다면. 그로 인해 그 기자가 답변을 받아적다 오해가 발생하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취재 과정을 곰곰이 복기했다. 딱딱한 질문과 매끄럽지 못한 인터뷰 진행이 떠올랐다. 지식의 부재도 문제겠지만 공감 능력 결여가 제일 큰 문제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상호 간 친근감과 신뢰를 느끼게 하는 ‘래포(rapport)’가 형성되지 않으니 취재원과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취재원도 형식적인 선에서만 답변을 해줬다.

  약 2달이 지나 비건족을 취재하러 갔을 때 기자는 다행히도 한 단계 발전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건을 주제로 한 수많은 기사를 검색하고 족장의 SNS 계정을 미리 확인하는 등 철저한 사전 조사를 거쳤다. 취재원에 대한 탄탄한 이해가 바탕이 되자 하나라도 더 알아보려는 의욕적인 태도가 생겼고 공감은 자연스레 따라왔다. 족장의 답변은 녹음기뿐만 아니라 머릿속에도 즉시 입력되며 즉각적으로 되묻는 진정한 대화가 이뤄졌다. 사전에 준비하지 않았던 질문도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자 취재원은 더욱 큰 호응으로 화답했다. 기자는 드디어 만족할만한 취재를 할 수 있었다.

  기자는 질 높은 정보를 독자에게 전할 의무가 있다. 취재원이 그 정보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그들에게 공감하려는 태도는 필수적이다. 이는 대학보도부에 속한 지금도 잊지 말고 갖춰야 할 태도다. 기자는 앞으로도 공감으로 대화하며 가치 있는 정보를 전달하려 한다. 이를 통해 취재원을 넘어 학내 구성원과의 공감까지 나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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