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난항에 부딪혔다. 온갖 험한 말을 다 들은 탓에 장수하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갖은 표현으로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던 말들은 대략 꼽아봐도 양손이 부족할 지경이다. 쉽지만은 않은 나날이었다.

  처음엔 다들 하나같이 기자를 어르고 달랬다. 별일 아니라며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 속삭였다. 설득이 통하지 않을 땐 협박을 하기도 했다. 누구는 변호사를 선임하겠다며 기자를 몰아붙였고, 누구는 기사로 인해 많은 이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며 겁을 줬다. 그 어지러운 말들에 가끔은 정말로 피해의 원인이 사건인지 기사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나는 결코 온 힘을 다해 싸우는 데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알려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작성했던 어느 기사가 결국 오보라는 이름으로 신문사를 흔들어놓자 덜컥 겁이 났다. 세상을 바꾸려는 목소리를 곳곳에 실어주겠다던 굳은 다짐은 실수 앞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그 실수는 이후 기사를 쓸 때 스스로 타협점을 찾는 못된 버릇을 만들었다. 기사를 미뤄달라는 취재원의 말 한마디에도 지레 겁부터 먹는 나약한 마음까지 생겼다. 수면 아래 묻혀있던 목소리를 끌어올리는 데는 훨씬 많은 용기가 필요했고 수면 위는 높게만 느껴졌다.

  정신이 번쩍 든 건 한 선배 기자의 말을 듣고서다. “지난 실수에 얽매여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말길 바란다”는 말에 그제야 아무 탈 없이 적당한 기사를 쓰려는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그 마음이 얼마나 스스로를 작아지게 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진실을 가려버렸는지 깨달았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큰 폭풍우에 흔들렸던 기자는 그렇게 대학보도부장이 됐다. 가시밭길이더라도 비바람이 몰아치더라도 꿋꿋이 걸었다. 많은 학생이 거주 중인 학교 주변 위반건축물을 돌아다닐 때도, 지난해 안성캠 총여학생회 폐지 이후 성평등위원회가 공백상태일 때도, 서울캠 총학생회가 FOC 사업을 독단적으로 중단시켰을 때도, 그리고 중앙대병원의 급성폐손상 우려 혈액 공급 사건을 보도할 때도 나약한 마음에 무너지지 않으려 애썼다.

  실수는 잊고 대신 그 안에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의미만을 남겼다. 한문장을, 심지어 한단어를 쓸 때도 수십번을 곱씹는 습관이 생겼다. 걱정거리가 많아진 점은 완벽한 기사를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날이 밝고 해가 떴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원고를 붙잡고 머리를 싸매었다. 그 덕에 매주 월요일 아침 발행된 신문 지면 한 바닥에서 자그마한 햇살들을 만들어냈으리라.

  숨기고 감추기 바빴던 지난날의 부끄러운 마음을 이제와 조심스레 꺼내어본다. 아마도 4개 남짓 남은 신문 발행을 앞둔 지금에서야 비로소 자신에게 떳떳해졌기 때문일 테다. 지난 여섯 번의 계절을 보내며 써낸 수십개의 기사에는 작지만 큰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온 힘을 다할 수 있어 살아있음을 느꼈던 기자는 부끄러운 고백을 이 한 줄에 줄인다.

신혜리 대학보도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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