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애로운 군주? 또는 민주주의
  • 윤예령
  • 승인 2019.11.04 02: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갈등은 어느 면으로 보나 소모적인 갈등이다. 박근혜 정권 말기에 일어난 촛불시위는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민주주의의 실천이었지만 지금의 둘로 갈라진 촛불은 대통령의 한사람에 대한 불필요한 집착에서 비롯됐다. 오천만 인구 중에 검찰개혁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숱한 윤리적·법적 의혹을 지닌 단 한사람밖에 없다는 대통령과 여당의 주장이 국민을 분열시켰다.

  조국 교수가 36일 만에 장관직에서 사퇴한 지금도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두 색깔의 촛불이 주말의 밤을 새우고 있다. 잘못된 인사를 덮으려고 검찰개혁을 방패로 내세운 것이 다시 갈등의 장벽이 됐다. 그러다 보니 정작 검찰개혁의 중요한 이슈는 관심 밖으로 내몰린다.

  이번 검찰개혁의 중요한 관점 포인트는 검찰의 정치적 독립 및 중립이다. 단순히 겉으로 보기에는 공수처의 설치와 반대로 보이지만 국회에 제출된 두 법안을 살펴보면 여당의 법안은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공수처를 권력에 종속시키는 것이고 야당의 법안은 정치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이다. 두 법안의 차이가 별로 없다고 국민을 기만하는, 진영으로 편향된 지식인이나 언론들이 있지만 검찰의 독립을 둘러싼 두 법안은 큰 바다의 양쪽 육지만큼 차이가 크다.

  서구철학의 아버지라는 플라톤이 칼 포퍼에 의해 비판받은 이유는 플라톤의 자애롭고 공정한 군주를 전제로 한 이상적이고 권위적인 통치체제가 군주의 성품과 지혜에 따라 정의로운 사회도, 독재국가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공수처를 아무런 통제장치 없이 대통령에게 종속시키면 우리나라 정치 수준으로 볼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후퇴시킨 이상으로 민주주의는 후퇴할 것이다.

  제도적 선진국들이 근대화과정에서 앞다퉈 공무원과 정부의 정치적 독립과 중립을 보호하는 제도를 갖춘 것은 민주주의와 더불어 사회·경제적인 안정과 균형된 발전을 위해서였다. 그 나라들은 특히 사법체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우선적으로 이루었다. 그렇게 해서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삼권분립이 성립됐다.

  지난 20년 동안 강단에서 가장 많이 강조한 내용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 정부 혁신의 핵심은 ‘정치적 독립 및 중립’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권부인 법원, 검찰, 국세청 등의 정치적 중립이 지켜져야 정부와 정치를 개선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쳐 왔다. 권부들은 그동안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지 그 권력의 총·칼 노릇을 하면서 힘과 더불어 많은 이득을 챙겨왔다. 정치는 다시 이들을 통해 자신들의 과한 욕심을 챙기다 무너지길 반복해 왔다.

  공수처에 대한 법안이 의회에서 어떤 형태로 합의가 이루어지는지에 따라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선진화의 길목에 들어설지, 정지나 후퇴하게 될지가 정해질 것이다. 그 결정에 따라 앞으로 3년 남은 강의를 더욱 신명나게 진행할지 또는 공허한 마음으로 막연하게 진행할지가 정해질 것 같다.

 

조성한 교수

공공인재학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