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언어, 혈통 등으로 ‘족(族)’을 구분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여기 개성과 취향으로 하나의 ‘족’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학기 문화부는 저마다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문화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번주는 ‘비건족’의 족장과 함께했습니다. 비건은 채식주의에서 발전된 개념으로 동물권, 환경 보호 등을 목표로 하는 하나의 생활 방식입니다. 비건족의 일상이 궁금하다면 서울시립대 비건 동아리 ‘베지쑥쑥’ 유다님 회장과 비건 베이커리 ‘앞으로의 빵집’ 박윤아 대표 이야기에 집중해주세요. 지금 시작합니다!

지난 2016년 한강 작가는 소설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한국소설 최초로 수상했다. 채식을 고집하는 소설 주인공 영혜가 채식주의자를 향한 폭력적인 차별에 부딪히는 내용이다. 소설 속에 나타난 편견은 현실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건강한 생활과 환경 보호를 위해 굳건히 채식을 하는 ‘비건족’의 실제 삶은 어떨까. 서울시립대 비건 동아리 ‘베지쑥쑥’의 유다님 회장(중국어문화학과)과 비건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앞으로의 빵집’ 박윤아 대표를 직접 만나 비건족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신선한 충격에서 비롯된 비거니즘

  고등학교 시절 접한 동물 희생 관련 다큐멘터리는 유다님 회장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파장은 곧 가치관의 변화로 이어졌고 그렇게 비건의 길에 들어섰다. “고등학교 3학년때 ‘Earthlings’라는 다큐멘터리를 접했어요. 고기와 가죽의 생산과정, 동물실험과정 등과 관련한 영상이었죠. 영상 시청 이후 동물권의 실정에 충격을 받았고 채식을 결심했어요.” 유다님 회장은 처음에는 생선 등 일부 동물성 식품을 허용하는 페스코였지만 비거니즘에 대해 공부하며 이내 어떠한 동물성 식품도 금하는 비건으로 점차 거듭났다.

  비건은 동물권 보호에 앞장서서 행동하는 사람이다. 유다님 회장은 동물권 보호를 포함해 건강, 인권, 환경 등의 복합적인 사항까지 고려한다고 설명한다. “동물권 때문만이 아니라 상품의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파괴 같은 문제를 줄이기 위해 소비 생활에 신중해지려 노력해요.” 유다님 회장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파급력을 지녔다고 설명을 덧붙인다. “어려운 길이지만 이를 택함으로써 주변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비건생활 A to Z

  비건족의 식생활 문화는 어떨까. 유다님 회장은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상황에서 어렵지 않게 채식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집에서 만들어 먹기도 하고 계란을 뺀 비빔밥, 멸치가 없는 찌개 등을 먹어요. 라테 같은 경우 두유 옵션이 있는 카페에서 마시죠. 술자리에서는 미리 빠져나와 배를 채운 후 합류하거나 저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제가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는 곳으로 장소를 정하기도 해요.”

  유다님 회장은 영양소 부족 문제는 느낀 적이 없다고 말한다. 채식으로도 모든 영양소가 골고루 보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다님 회장은 동물성 식품의 영양소가 대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영양학 전공자와 함께 비건 동아리에서 영양학 스터디를 해요. 단백질도 감자 같은 자연식물식으로 충분히 섭취할 수 있기에 특별히 부족한 영양소는 없다고 생각해요.” 또 많이 언급되는 비타민 B12 결핍 문제 해결도 해조류나 알약 섭취로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유다님 회장은 채식이 체질 개선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힌다. “채식주의자가 된 후 아토피가 나았어요. 또 운동 중 생긴 근육통 회복 속도도 빨라졌죠.”

  유다님 회장은 비건이 채소 외의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말하는 일부 주장은 선입견이라며 일축한다. “채식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풀을 연상키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설탕, 식물성 스콘, 콩고기도 모두 채식에 포함돼요. 또 비건을 위한 치킨, 치즈 등도 있어요. 작은 규모의 협동조합에서 관련 상품을 접할 수 있죠.”

  비건은 동물권 보호뿐만 아니라 환경보호를 위한 움직임에도 앞장선다. 유다님 회장은 환경보호 활동 차원에서 새 옷을 사기보단 중고패션을 즐긴다고 말한다. “동물성 가죽이나 모피, 울, 실크 같은 소재는 피하는 편이에요. 또 구제패션을 즐기는데 새 옷을 위한 새로운 목화 재배는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면 옷이라 해도 목화 재배 시 사용하는 제초제는 환경파괴는 물론 인근 지역 신생아의 선천적 장애 비율도 높이는 부작용이 있죠.” 이에 덧붙여 윤리적인 이유로 비건 화장품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동물 실험을 거치지 않는 비건 화장품이 있어요. 토끼는 동물 실험의 주된 대상인데 비건 제품에는 토끼 모양인 ‘리핑 버니(Leaping Bunny)’ 마크가 부착돼요.”

  유다님 회장은 채식주의자로의 삶에서 개인적인 어려움보단 사회적인 어려움이 더 크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동물이 사육되고 도축되는 폭력적인 과정을 외면할 때와 폭력에 가담하고 싶지 않아 선택한 비건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힘들어요.” 이런 상황 때문에 비건 지향자에게는 명확한 목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비건이 되려면 우선 왜 자신이 비건이 되려는지 확고한 이유를 세우고 차근차근 실천에 옮겨야 해요. 이때 ‘Dominion’ 같은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면 마음을 굳게 다지는 데 도움 받을 수 있죠.” 해당 영상은 동물이 고통 받는 과정을 생생히 담아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또 사회생활 중 외부 시선에 의해 마음이 휘둘릴 때 비건 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도움이 된다. 비건 동아리에서는 일상 속 겪는 어려움에 대해 서로 공감하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는 데 큰 힘이 된다. 또한 동아리는 비거니즘 공개 세미나, 축제 부스 준비, 캠페인 등의 활동을 하며 비거니즘 문화가 확산되는 데에도 기여한다. 유다님 회장은 최근 동아리의 새로운 지향점을 설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비거니즘 인식 확산에 힘을 썼어요. 이제는 채식 학식을 학교 측에 요구하거나 학교 주변 카페에 두유 옵션 추가를 제안하는 등 비건의 생활 기반 마련 활동에 초점을 맞추려 해요.”

 

 

  비건 빵도 맛있다!

  박윤아 대표는 비건을 지향하는 페스코로서 비건을 위한 빵집을 운영하고 있다. 우유나 달걀 없이 어떻게 빵을 만들까. 박윤아 대표는 최고급 재료로 동물성 재료의 풍미를 대신한다고 말한다. “저희 가게는 ‘9무9유’가 원칙이에요. 버터나 우유와 같은 동물성 식품은 물론 흰 설탕, 방부제 등 몸에 좋지 않은 재료를 배제해요. 대신 일반 흰설탕의 값보다 약 10배 이상 비싼 유기농 코코넛 슈가나 제철 과일 등 몸에 이로운 9가지 재료를 사용하죠.” 박윤아 대표는 비건 빵을 둘러싼 편견을 깨고 싶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비건 빵 하면 퍽퍽하고 맛없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실상은 맛있는데 말이에요.” 건강한 재료가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셈이다.

  박윤아 대표는 비거니즘 정보 공유를 위해 파티를 개최하기도 한다. 해당 파티는 빵집에서 함께 비건 음식을 먹고 관련 도서를 같이 읽으며 비건에 대한 관심을 나누는 자리다. 비건이 아니어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박윤아 대표는 파티가 비건 문화 확산에도 궁극적으로 기여한다고 본다. “제가 좋아하는 『요리를 멈추다』라는 책에 ‘한 명의 완벽한 채식인보다 열 명의 채식 지향인이 더 이상적이다’는 구절이 있어요. 후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크다는 의미에요. 저도 제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비건 문화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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