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에 비춰본 3권의 이야기
  • 이웅기 기자
  • 승인 2019.09.29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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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밥 한번 먹어요.”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 자주 하는 말이죠. 정말 밥이 먹고 싶을 수도 있지만 당신과 가까워지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번학기 여론부에서는 한학기 동안 매주 다른 중앙대 유명인사와 ‘밥 약속(밥약)’을 잡고 함께 식사할 예정입니다. 이번주 밥약의 주인공은 310관(100주년기념관 및 경영경제관) 지하 4층 ‘중앙대 교내 안경원’을 운영하는 안경사 김삼권씨(54)입니다. 32년째 중앙인으로 일하는 그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보시죠.

사진 정준희 기자
사진 정준희 기자

 

학생운동 시절부터 흑석동에서
학교 안팎으로 이름 널리 날려


당신의 인생을 책으로 남긴다면 어떤 내용을 써 내려가고 싶은가. 이번주는 310관 지하 4층에서 안경원을 운영하는 안경사 김삼권씨와 밥약을 잡았다. ‘삼권’이라는 이름에 맞게 ‘3권’으로 지금까지 그의 삶을 정리했다.

  제1권. 옷감에서 안경으로

  310관 지하 4층 참슬기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는 아담한 크기의 안경원이 있다. 유명한 브랜드 간판을 걸어놓은, 크고 화려한 가게는 아니지만 언제나 손님으로 바글바글하다. 점심시간에는 학생 손님이 몰려 더더욱 바쁜 김삼권씨와 지난 25일 수요일 점심 식사 한끼를 함께했다.

  약속 당일 지하 4층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게로 들어가 학생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삼권씨와 가볍게 눈인사를 나눴다. 손님은 안경 수리를 위해 방문한 듯했다. 수리를 마치고 학생이 “얼마예요?”라고 물어보자 그는 “돈 안 받아요. 고칠 거 생기면 또 내려와요” 하며 학생을 보냈다. “학생들도 어려우니까 간단하게 고칠 수 있는 건 모두 무료로 해줘요. 중앙대에서 오래 일해서 학교에 정이 많이 들기도 했고요.”

 

  손님이 모두 떠난 후 본격적인 인터뷰를 진행했다. 안경사가 된 계기부터 들어봤다. “고등학생 시절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올라왔어요. 서울역에서 어머니가 옷감 재단과 안경 일 중 무엇을 배울지 고르라고 말씀하셨죠.” 재단을 선택한 그는 재단 공장 근무 일주일 만에 포기를 선언했다. “사실 재단 일을 선택한 이유는 여자 때문이예요.(웃음) 당시 재단 공장에는 여자가 매우 많았거든요. 제가 일하던 공장도 저 빼고 모두 여자였죠. 그런데 막상 여자 사이에서 일해 보니 생각보다 불편하더라고요. 일주일을 버티다 안 되겠다 싶어 어머니에게 안경 일을 배워보겠다고 말씀드렸죠.”

  김삼권씨는 흑석동에서 안경원을 운영하던 친삼촌네로 일자리를 옮겼다. “삼촌 가게에서 4년 정도 근무했어요. 거기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을 배웠죠. 결국 국가 공인 안경사 자격증을 땄답니다.”

  그는 국가 공인 안경사 ‘1기’가 될 뻔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부에서 안경 일에 오래 종사한 사람을 대상으로 시험을 보지 않아도 자격증을 주기로 했어요. 그래서 암묵적으로 다들 시험을 치지 않기로 약속했죠. 그런데 그중 일부가 약속을 어기고 몰래 시험을 치렀어요. 그 후 2기부터는 정식 시험이 도입됐죠. 저는 아쉽게도 2기 안경사가 됐어요.”

  제2권. 중앙대 인맥왕

  가게에서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위해 참슬기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는 종종 참슬기 식당에서 가게로 식판을 가져와 끼니를 해결한다고 한다. “가게를 비우면 학생들에게 지금 어디 있는지 묻는 전화가 와요. 그래서 가게에서 먹는 게 편하죠. 인터뷰 중에 전화 오면 돌아가야 할지도 몰라요.(웃음)” 다행히도 인터뷰 중 그를 찾는 손님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지난 1980년대부터 흑석동에서 일을 시작한 김삼권씨. 그에게 살벌했던 중앙대 학생운동 진압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학생들이 꽹과리를 두드리며 어깨동무한 채 205관(구 학생회관)에서 지금 정문 위치인 ‘Y로’까지 내려왔어요. Y로 밖으로 나가는 순간 전투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학생들을 잡아갔죠.” 학교 근처 상가 사람들도 모두 대피해야만 했다고 한다. “곧 시위가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언덕으로 올라가 몸을 피했어요. 가게에 머물 수 없었죠. 셔터를 내려도 최루탄 가스가 그대로 들어오거든요.”

  시위가 끝날 때쯤인 지난 1988년 그는 캠퍼스 안에 안경원을 차렸다. 205관과 206관(학생문화관)을 거쳐 지금 310관까지 32년째 교내에서 안경원을 운영하고 있다.

  식사 중 옆자리에 앉은 건강센터 직원이 김삼권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학교에 워낙 오래 있다 보니 아는 사람이 많아요. 참슬기 식당 직원들과도 친하죠. 205관 식당이 여기로 옮긴 거잖아요. 제가 밥을 받을 때마다 더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물어봐요.(웃음)”

  과거 205관과 206관에 상가가 모여 있을 때 중앙대 전체 상가 총무도 맡았다고 한다. “사람은 자주 모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 같이 잘 지내면 좋잖아요. 먼저 다가가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지금도 310관 상가 모임을 추진하자는 말이 나오면 사람들이 저부터 찾아요.(웃음)”

  제3권. 동네에서도 유명인사

  중앙대 ‘인싸’ 그 자체인 그는 흑석동에서도 꽤 유명한 듯하다. 중앙대학교 부속중학교(중대부중) 조기축구회, 흑석동성당 등 동네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축구를 워낙 좋아해 중대부중에서 조기축구회장을 맡아 활동했어요. 성당에서는 문화체육 분과장과 축구단 회장을 겸임하고 있죠. 두군데 일정이 겹쳐 한곳을 못 가면 오늘은 왜 나오지 않냐고 연락이 와 참 난감할 때가 많아요.(웃음)”

  그는 지난 1983년부터 흑석동의 변화를 쭉 지켜봤다. “이곳도 많이 바뀌었어요. 단독주택을 거의 다 부수고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섰죠. 옛날 정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또 몇 년 전 고향보다 오래 머물렀던 흑석동을 부득이하게 떠나야만 했다고 말한다. “흑석동에서 30년 넘게 살았죠. 그런데 어느 날 재개발 통보를 하더니 갑자기 집을 비우라고 하더라고요. 이곳에서 더 살고 싶었는데 나가야만 하는 현실이 매우 아쉬웠죠. 인근 주민들도 흑석동에서 오래 거주했는데 상도동, 사당동, 봉천동 등 근처로 뿔뿔이 흩어졌어요. 저는 지금 상도동에서 살고 있는데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흑석동 시절 주민들을 많이 마주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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