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 14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 창조됐고 사물은 사용하려고 만들어졌다. 세상이 혼돈에 빠진 이유는 물건이 사랑받고 사람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물은 수단이고 사람은 궁극적 가치다. 그러나 사실 오늘날 우리는 사람보다 사물을 더 추구한다. 우리 주변에서도 사물이 사람을 이겨버린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서울캠 생활관 운영실은 지난 8일 오전 방송장비를 점검하기 위해 음악을 큰 볼륨으로 1시간 30분 동안 송출했다. 달콤한 아침잠을 즐기던 생활관생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큰 소리에 시달린 생활관생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생활관 홈페이지와 학내 커뮤니티에는 생활관 운영실을 향한 분노로 시끌벅적했다.

 불만은 이뿐만이 아니다. 생활관은 주민등록등본과 흉부 엑스레이가 없으면 입관할 수 없다. 서류를 하나라도 빼먹은 학생은 먼 지방에서 올라와 당장 거주할 곳이 없더라도 입관이 불가하다. 입관을 거부당한 학생은 부랴부랴 손에 짐을 가득 든 채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생활관은 규정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규정이 생활관생의 생활을 도리어 불편하게 만들었다.

 “생활관이나 학교나 학생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찾아볼 수 없다.” 생활관 홈페이지 관생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일부다. 게시글이 겨눈 불만의 대상에는 생활관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가 포함됐다. 게시글은 생활관과 학교는 학생이 이용하는 곳임에도 학생을 우선순위로 삼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여기에 기자는 조심스럽게 동의를 표해본다.

 지난 4일 경영학부 ‘이음’ 학생회는 사물함에 있던 물건을 폐기했다. 경영학부 학생회는 방학 중 이전학기 이용자에게 자체 수거를 요청하는 공지를 올렸다. 그리고 이전학기 이용자가 수거하지 않아 남은 물건은 폐기하겠다고 알렸다. 하지만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만 공지됐고 일부 학생은 공지를 전달받지 못했다. 공지사항을 몰라 개강 전 사물함에 미리 물건을 가져다 놓은 학생도 봉변을 당했다. 경영학부 학생회는 학생 의견 수렴 후 내려진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학생회의 결정은 오히려 학생의 편의를 해치는 일이 됐다.

 처음에는 다 학생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학생은 그 배려가 전혀 고맙지 않다. 다시 ‘일말의 배려’로 돌아가서 학내를 살펴보자. 매일같이 쏟아지는 이메일과 문자는 홍보가 목적인지 정보제공이 목적인지 알 수 없어졌다. D학점의무부과제는 학생 불만이 터져 나오는 제도임에도 성적의 공신력을 높인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사람과 사물의 가치가 뒤바뀌고 수단이 목적을 잊게 만드는 현상을 사회과학에선 목적전치라 한다.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만들어진 규칙이 나중에는 규칙에만 얽매이게 만들고 본래 목적을 잊게 만든다. 목적에 소홀해지면 규칙이 있을 이유도 없어진다. 규칙은 학생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데 어째서 학생 위에 존재할까. 학생이 잊히면 규칙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결국 수단만 남고 배려는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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