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골 전경을 그려낸 벽화다. 에너지 절약 관련시설이 보인다.
성대골 전경을 그려낸 벽화다. 에너지 절약 관련시설이 보인다.
성대골 에너지 자립마을의 상징, 에너지 슈퍼마켙이다. 사진 정준희 기자
성대골 에너지 자립마을의 상징, 에너지 슈퍼마켙이다. 사진 정준희 기자

 

평범한 일상에서 찾은

특별한 에너지

“‘오래된 미래’를 사는(buy) 방법이 있다고?” 성대골 시장 입구에서 언덕길을 따라 걷다 보면, 도로 한편에 자리한 ‘에너지슈퍼마켙’을 만날 수 있다. 슈퍼마켓 받침의 ‘ㅌ’ 표기가 눈길을 끈다. 상점 앞에는 가로등 모양으로 우뚝 선 태양광 충전기도 보인다. 반신반의하며 휴대폰을 연결해보니 전기가 들어온다!
  ‘에너지슈퍼마켙’은 지난 2014년 1월 국내 최초 에너지 효율화 상점으로 문을 열었다. 슈퍼마켓을 ‘슈퍼마켙’으로 표기한 것은 영어 단어 ‘Energy’의 앞 글자 ‘E’와 한글 ‘ㅌ’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슈퍼마켙’은 일상에서 에너지 소비량을 줄일 수 있는 상품을 판매함으로써 ‘오래된 미래’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이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에세이 「오래된 미래」에 등장하는 마을, 라다크의 이야기가 전하는 교훈과 상통한다.
  범상치 않은 상점이 위치한 이곳은 ‘성대골 에너지 자립마을’이다. 성대골은 지난 2011년부터 주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현재까지 에너지 전환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2019년 현재 성대골 주민들은 어떻게 에너지 전환 운동을 이어가고 있을까. 동작구 상도3ㆍ4동에 자리를 잡은 성대골 에너지자립마을에 기자가 직접 다녀왔다.

  작은 마을이 품은 꿈
  국사봉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성대골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택 옥상에는 태양광 패널이 자리하고 있다. 평범한 마을이었던 성대골이 에너지 전환을 꿈꾸게 된 계기는 지난 2011년 3월에 일어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다.
  성대골어린이도서관 정설경 관장은 에너지 전환 운동이 성대골어린이도서관에서 시작됐다고 이야기한다. “자녀를 둔 주민들이 직접 세운 도서관이니 어머니들의 왕래가 잦았어요. 이곳에 삼삼오오 모여 사회이슈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죠.”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자 성대골의 어머니들은 자녀가 살아갈 미래의 환경을 고민하게 됐다. 성대골어린이도서관이 에너지 자립운동의 근거지인 셈이다.
  성대골 주민들은 환경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1년 12월 성대골어린이도서관에 절전소 게시판을 만들었다. 전년도와 올해 전기 소비량을 비교하는 막대그래프를 만들어 게시판에 부착했다. 절전 운동에 참여하는 가구는 서로의 막대를 비교하며 선의의 절약 경쟁을 펼쳤다. 마을공동체 내부는 ‘에너지 전환’이라는 주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정설경 관장은 성대골 에너지 자립마을이 약 10년 가까이 자발적인 운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 공동체에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 도서관은 공동체 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어요. 마을에는 주민의 바람과 시대적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해야 한답니다.”
  마을공동체 내 에너지 절약 인식이 전파되고 일부 주민들을 중심으로 에너지 전환 운동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던 지난 2013년에는 실제로 성대골(상도3ㆍ4동)의 전력사용량이 감소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름철(5~8월) 절전 운동에 참여한 총 800가구를 대상으로 진행된 표본조사를 보면 2013년에는 전년 대비 10.3%, 2014년에는 전년 대비 8.5% 줄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주민들은 ‘리빙랩’ 프로젝트와 함께 성대골에서 에너지 전환 운동을 지속했다. 리빙랩은 지역주민들이 전문가들과 함께 주체로 참여해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지난 2016년에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마이크로발전소 등의 기관이 참여했다. 성대골 주민들은 마을연구원으로서 리빙랩에서 활동하며 현장 중심의 연구를 펼쳤다. 태양광 패널 설치를 돕는 금융상품인 ‘우리집솔라론’과 DIY 미니 태양광 제품 개발 과정에도 직접 참여했다.

  관성을 벗어던지고
  관성을 벗어나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유진 박사(녹색전환연구소)는 우리나라의 전기 발전 방식이 ‘관성’과 같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석탄과 원전, 대형발전소라는 전기 생산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죠.” 그러나 성대골 주민들은 변화의 길로 향했다. 그리고 상도동 전체로 변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그 결실은 성대시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대시장은 LED 및 태양광 패널 설치 등을 통해 에너지 자립형 시장으로 발돋움한 곳이다. 성대시장 상인회 사무실에는 LED 전등과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가게가 표시된 전광판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성대시장 상인회 윤혁 회장은 상인들이 운동에 참여한 계기가 미래를 위한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한다. “눈앞의 경제적 이익 때문만은 아닙니다. 에너지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시작될 수 있었죠. 이제는 다음 세대를 생각해야 하니까요.”
  성대골 주민들은 미래 세대를 양성하는 학교에도 손을 내밀었다. 국사봉중학교는 지난 2012년부터 성대골과 함께 에너지 교육을 활발하게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지난 2014년에는 공교육 현장 최초로 에너지 관련 정규 교과 수업을 진행했다. 교내를 둘러보니 학생들의 개성이 빛나는 마을 생태 에너지 작품들이 전시돼있다.
  국사봉중학교 학생들은 중학교에 재학하는 3년간 마을 생태에너지 교육을 받는다. 학생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송수빈 학생(15)과 안형준 학생(14)은 학교에서의 경험이 실제 행동을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교내 에너지수호천사단 활동에서 에코마일리지를 쌓던 경험이 기억에 남습니다. 에너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과거의 행동을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오래된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
  성대골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덕에 대한민국 최초 에너지 자립마을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전국적인 에너지 전환 운동은 아직 미미한 실정이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한재각 소장은 에너지 전환 운동 확산을 위해 중앙정부 및 지자체의 노력을 강조한다. “처음부터 모든 지역에서 혁신을 시도하기는 힘들죠. 성대골 사례를 전국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 태도가 필요해요.”
  이유진 박사는 국내 전기 요금 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전기는 가격이 너무 낮아 에너지를 가치 있게 쓰는 노력이 적은 편입니다. 에너지 적게 쓰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서비스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전기요금의 합리적인 개편이 필요해요.”
  성대골 주민들의 힘이 모여 전력소비량이 감소했고 에너지 자립마을로 변모했다. 이제는 더 큰 변화를 일으킬 차례다. 현 세대가 직면한 환경문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접점을 가진 이들과 연대하는 일은 미래 세대를 위한 우리의 숙명이다.
  당신은 ‘오래된 미래’를 사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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