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맞춤’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안성맞춤은 경기도 안성시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요구하거나 생각한 대로 잘된 물건을 이르는 말이죠. 안성에는 이 단어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명장 일곱 분이 있는데요. 이번주 ‘안성명장’에서는 안성명장 6호, 이종춘 명장(목공예)의 이야기와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목공예와 사랑에 빠진 지 46년! 나무처럼 뻗어간 이종춘 명장의 삶을 만나 보시죠.

 

목공예품은 칠을 해야 비로소 완성된다. 칠을 하기 전 형태만 갖춘 미완성품을 백골이라고 부른다.

공예는 예술과 공업의 가운데에 존재한다. 그래서 공예품은 아름다우면서도 쓰임새가 있어야 한다. 이종춘 명장의 작품이 그러하다. 그가 만든 목공예품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살아있으면서도 실용적이다. 그는 목재의 형태나 결을 그대로 살려 작품을 만든다. 가구, 목함, 소반 등 종류도 다양하다. 나무를 깎고 다듬어 새 생명을 부여하는 이종춘 목공예 명장을 만났다. 나무 향 가득한 공방에서 46년간 나무와 함께해온 그의 인생과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명장의 나무 그릇. 부드러운 곡선과 나뭇결이 인상적이다.
명장의 나무 그릇. 부드러운 곡선과 나뭇결이 인상적이다.

목헌(木軒), 나무와 곡선

  나무 목에 처마 헌, 목헌은 그의 별호다. 그의 작품 곳곳에서 처마 끝에 올라타는 듯한 아름다운 곡선이 드러난다. 다양한 기법으로 살려낸 곡선이다. 모든 나무는 외형과 결에 각자의 곡선을 지닌다. 그 중 나무의 속에 드러난 나뭇결을 목리(木理)라고 부른다. 목리는 일년에 한줄씩 수십 수백년에 걸쳐 그려지는 생명의 그림이다. “목재의 생명은 목리예요. 나도 이 문양에 반했죠.” 나무에 새겨진 곡선은 명장에게 작업의 영감을 주는 존재다. 곡선에는 나무의 생로병사가 모두 들어있다. 목리에선 나무의 나이와 생지의 기후가 드러난다. 또한 나무의 외형으로 나무 근처의 장애물, 볕이 든 방향까지도 짐작할 수 있다. 그중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뒤틀린 자국인 ‘용트림’은 나무에 독특한 멋을 더한다. 나무에게는 일종의 흉터지만 가장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는 셈이다. 이런 자국이 있는 나무를 용목이라고 부르며 최상급 목재로 취급한다. 명장이 느티나무 용목으로 제작한 탁자에는 나무의 겉과 속에 형성된 독특한 굴곡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상처를 도려내지 않고 제작한 작품은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였다.

 

현재 작업 중인 나무 쟁반이다. 끌과 망치로 형태를 다듬고 있다. 수작은 오래도록 섬세하게 다듬어야 완성된다.

본성을 간직한 채 새로 태어나는

  느티나무 탁자를 시작으로 공방에 진열된 작품을 둘러봤다. 감상 포인트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나무의 생김새에 따라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모양뿐만 아니라 톱질을 했을 때 나무가 벌어지거나 오므라드는 성질까지도 고려했다. 이런 성질은 나무마다 각기 다른데 심지어 같은 수종(樹種)이라도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디자인을 먼저 정한 다음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나무를 보고 나무에 맞추는 거예요. 이 나무는 어떻게 만들면 좋겠다고.” 한때는 디자인을 먼저 정하고 도면에 나무를 끼워 맞춘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갈라지거나 터지는 작품들이 나왔다. 환경에 따라 민감하게 변형되는 나무의 특성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마주한 다음부터는 먼저 나무를 보고 그에 맞는 디자인을 떠올린다고 한다. 나무의 특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무를 이해 하는 게 먼저예요.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지고 기계가 첨단이 되더라도 말이죠.”

 

목함, 나무 접시, 쟁반 등 다양한 작품들에 장인의 손때가 묻어있다.
목함, 나무 접시, 쟁반 등 다양한 작품들에 장인의 손때가 묻어있다.

장인정신으로 쌓아 올린 신뢰와 인연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목공예품이 수십트럭이 넘지만 그는 모든 작품에 애착을 느낀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일품(一品)이다. 같은 작품을 여러 개 만들지 않을뿐더러 수작업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하나하나 다르다. 어느 하나 같은 작품이 없기 때문에 이미 손을 떠난 작품에도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작품의 보수(補修)에도 신경을 기울인다. 목공예품은 시간이 지나면 변형되기도 한다. 이종춘 명장조차도 벌어지고 틀어지는 나무의 특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런 작품에 대해 그는 “한번 다시 손볼 생각을 하고 만들어야 한다”며 책임감을 드러냈다. 그에게 작품 거래는 상대방과 인연을 맺는 일이다. 작품제작 만큼이나 자신의 작품을 찾아주는 사람들과의 신뢰 관계 형성도 중요하다. “하여튼 완벽하게 다 해줘야 해. 그걸 믿고 또 내 것을 찾고. 그런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공산품과 똑같단 말이에요” 그렇게 만든 인연은 명장에게도 소중하다. 한번은 지인의 집에 방문했는데 눈에 익은 목공예 소품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니 ‘자기가 만든 건데 몰라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알고 보니 20년 전 명장이 지인에게 선물한 작품이었다. 그는 오랜 세월에도 조그만 흠 하나 없이 보관된 작품을 보고 깊게 감동했다고 한다.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까. 아, 이것 참 할 맛이 난다.” 인연은 명장에게 작업을 이어나가는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안성에 자리 잡기까지

  46년째 목수의 길을 걷고 있는 그도 목수가 평생의 일이 될 줄은 몰랐다. 당시 정수직업훈련원(현재 한국폴리텍Ⅰ대학)에 군수와 경찰서장의 추천을 받아 지원하게 된 그는 3지망이었던 목공예과로 입교했다. 지역에서 단 두명만이 추천받은 귀한 기회였기 때문에 원치 않던 과였어도 입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목수의 길이지만 점차 흥미를 느꼈다. “내가 의도하고 계획한 대로 작품이 나오니까요. 타의에 의해서 하는 일에는 ‘나’라는 주어가 빠지죠. 그런데 이건 오롯이 다 제겁니다.” 훈련원 수료 후 홍익대 등을 거쳐 공예 활동을 하던 그는 은사인 故 백태원 전 예술대 교수를 따라 중앙대 공예과에 실습 보조로 재직하게 된다. 당시 서울에서 활동하던 그는 은사의 부름에 당연히 중앙대 서울캠을 생각하고 흔쾌히 응했으나 예술대가 안성캠에 있다는 것을 알고 크게 당황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안성으로 내려오게 된 그는 사업까지 시작하며 안성에 자리를 잡았다. 중앙대를 나온 이후에도 안성에서 30년이 넘게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 공로와 능력을 인정받아 안성맞춤 명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위험한 도구와 기계를 다룰 때는 온 신경을 집중해야만 한다.

자연과 나무와 인간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주목(朱木)을 빗대어 부르는 말이다. 수명이 길 뿐 아니라 목재로서도 단단하고 잘 썩지 않아 오래가기 때문이다. 이종춘 명장은 주목뿐만 아니라 모든 나무가 그렇다고 말한다. 그에게 나무는 자연이 준 선물이다. 그런 나무를 깎고 다듬어 인간에게 쓰임새 있게 만드는 것이 그가 지향하는 목표다. “살아있는 생명에 기능성이라는 또 하나의 생명을 불어넣는 거죠.” 그의 손을 거친 나무는 쓰임새와 아름다움을 두루 갖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 기능성과 심미성은 책상, 장롱과 같이 다양한 모습으로 일상에 스며들어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목공예를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온 명장의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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