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가서 봉변을 당하고 오다
  • 중대신문
  • 승인 2019.09.09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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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본의 마루야마 호다카라는 중의원 국회의원이 한국 의원들의 독도 방문과 관련해 자신의 트위터에 전쟁으로 독도를 되찾을 수밖에 없다고 적었다. 그는 우리 고유의 영토인 죽도에 자위대가 출동해 불법 점거자를 쫓아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을 두고 한국의 언론은 일제히 ‘망언’이라고 했지만, 다수 일본인의 생각이리라.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패배 이후 일본에서는 수시로 ‘정한론’을 펴는 이들이 나타났다. 막부시대 말기의 사상가 요시다 쇼인은 일본의 부국강병을 위한 구체적인 안을 내놓았다. 그는 조선의 남부지방을 먼저 정복하고 북으로 올라가 한강 일대를 지배해야 한다, 나아가 만주와 몽고를 지배하고 남으로 방향을 틀어 대만과 필리핀을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제자가 이토 히로부미다. 메이지유신의 주역인 기도 다카요시와 사이고 다카모리는 조선 침략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내놓았다. 운요호사건을 일으켜놓고 조선의 책임을 물으며 생떼를 쓴 전권대사 구로다의 태도는 지금의 일본 수상 아베와 다를 바 없다. 뺨을 맞은 우리가 무릎을 꿇고 맺은 강화도조약 때의 굴욕은 피지배의 단초가 되었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대승을 거뒀고 러일전쟁에서도 대승을 거둬 그 여세를 몰아 을사늑약을 체결하였고 결국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재작년에 시모노세키에 있는 바이코 학원대학에 가서 문학 심포지엄을 가졌다. 한 일본인 교수는 ‘식민지 조선의 일본어 소설’을, 또 한 사람은 ‘한국의 일본 근ㆍ현대시 수용’를 발표했다. 참석한 한국 교수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일본인 토론자 4명 중 한 명의 토론자가 너무 긴 시간 말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에게 마이크가 넘어가지 못했다. 그는 한국 발표자에 대해서만 비판했는데 첫째는 미술사 전공 교수의 발표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미술에 영향을 준 사조는 초현실주의와 모더니즘이었는데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고 장시간 비판하였다. 그리고 나의 시에 대해서는 일본에는 ‘원폭문학’이라는 것이 장구한 세월 광범위하게 창작되었는데 다 뼈아픈 체험의 문학이었다, 원폭의 아픔을 겪지 않은 한국인이 왜 원폭을 다루냐면서 일대 성토를 했다. 한국에서 학자들이 와 양국의 우호증진을 위해 학술대회를 갖고 있는데 그는 덕담 후의 조심스러운 지적이 아니라 장기기사처럼 장이야! 를 외치고 있었다. 그 당시 200만이나 되는 조선인이 일본에 살고 있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수백 명이 피해를 보았는데 조선인들은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말해야 했거늘, 시간이 다 되었다고 해서 세미나가 끝나고 말았다.

  작년 도쿄대학에서의 심포지엄에는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 이런 봉변을 당하지 않았지만 교정 곳곳에 세워져 있는 동상을 보고 굴욕감을 느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동상이었다. 노벨상 일본국적 수상자는 24명으로 물리학상 9명, 화학상 7명, 생리ㆍ의학상 5명, 문학상 2명, 평화상 1명이다. 일본상품 불매운동도 중요하지만 우리 대학생들이 실력을 키워야 한다.

이승하 교수
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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