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좀 드세요!” 기어코 식탁 앞에서 한소리를 들었다. 언제부터 밥을 빨리 먹었더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고등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밥을 꽤 천천히 먹었다. 그러나 군대에 다녀온 이후로 밥을 급하게 먹는 습관이 생겼다. “퍼뜩 안 먹나! 빨랑 쫓아온나!” 유독 밥을 빨리 먹던 선임의 쫓아오라는 사투리가 아직도 들려오는 듯하다.

  “얼른 쫓아가서 찍읍시다.” 누군가를 쫓는 걸 그렇게나 싫어했는데 기자가 되고나서 많이도 쫓아가자고 말했다. 정작 상대방을 쫓아가서 영상을 찍어도 좋은 화면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도대체 쫓는 게 뭐길래 나를 계속 괴롭힐까.

  ‘쫓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대상을 잡거나 만나기 위해 급히 따르다’이다. 무언가를 쫓아갈 때는 큰 노력이 들어간다. 그래서 때때로 무언가를 쫓는 행위는 대상에 따라서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쫓는다는 건 이미 거리가 벌어져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벌어진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급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결국 행동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해 실수하기 쉬우며 그 때문에 고꾸라지기도 한다. 설령 고꾸라지지 않고 끝까지 쫓아 대상을 따라잡는 데 성공하더라도 대상과 동등해질 뿐 넘어서는 것은 아니다.

  신문은 무엇을 쫓고 있는가. 인터넷의 등장 이후 빼앗긴 영향력을 되찾고자 뉴미디어를 쫓고 있다. 인터넷은 기존의 속보성을 넘어 실시간으로 기사를 게재할 수 있는 즉시성을 가져왔다. 멀티미디어 자료를 활용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카드뉴스를 만들어 내용을 간결하게 요약하는 방식이다.

  신문은 뉴미디어를 쫓아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를 획득했지만 그 대가로 오보와 가짜뉴스가 창궐하게 됐다. 요약과 흥미 위주의 기사들은 뉴스의 연성화라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무언가를 쫓는 행위는 대상의 장점을 흡수하기 좋은 수단이지만 그 자체가 정답이 되지는 못한다.

  쫓지 않고 좇아야 한다. ‘좇다’는 ‘목표, 이상, 행복 따위를 추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신문은 뉴미디어 기술의 꽁무니를 쫓지 말고 뉴스의 본질을 좇아야 한다. 뉴미디어는 신문의 종착점이 아니다. 중요한 건 미디어의 외양이 아니라 담고 있는 메시지다. 외양은 그 메시지를 담는 그릇일 뿐이다.

  뉴스의 본질을 떠올릴 때 정의 수호나 사회변혁 같은 거창한 표현이 떠올라 부담스러운가. 그렇다면 주변으로 눈을 돌려보자. 뉴스의 본질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 특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담겨있다. 사회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려 노력할 때,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뛰어다닐 때 비로소 뉴스의 본질을 찾을 수 있다.

  지난 한학기 간 뉴미디어부 기자로 활동하며 뉴스의 본질을 좇기보단 뉴미디어 기술을 쫓기에 급급했다.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의미로 말하고 싶다. 쫓지 말고 좇아라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