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불어닥친 IMF한파는 이미 한국사회전반을 잠식하고 있다. 곳곳에
서 감원, 감축 열풍이 불고 있으며 노동진영의 생존권 위협이 그 어느때보다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경제위기는 일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적 흐름이라는 인식하에
초국적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와 이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 방향을 모색해
본다

'생존적요구 기초한 광범위한 연대필요, 국제적 저항기구 조직등 활발한활동'

세계 도처에서 다양한 부류의 인간들이 신자유주의에 저항하고 있다. 그러나
지배세력은 세계적 차원에서 고도로 집중되어 있는 반면에 민중은 극히 분산
되어 있다. 이런 대결 구도로는 효과적인 대응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신자유
주의에 대한 저항은 복잡한 이론의 뒷받침 없이도 세계적인 민중연대를 추구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이러한 연대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는 어느 지역의 민중의 저항에 대하여 전 세계적으로 지지.지원하
는 것이다. 멕시코 사파티스타의 저항에 대한 범세계적인 연대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저항을 계기로 하여 `인간성을 옹호하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륙간 모임'이 이미 두 차례 열린 바 있다. 그리고 이 연대의 힘으로 멕시
코 정부로 하여금 저항세력에 대해 무자비하게 압살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자 총파업에 대한 범 세계적인 지지도 이런 경우의 하나이다
. 이것이 탄압을 억제하는 힘을 발휘했다.다른 하나는 상설적인 국제 연대기
구를 구성하는 것이다. 지난 2월 23일부터 25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
자유무역과 세계무역기구(WTO)에 반대하는 지구적 민중행동:PGA"이라는 전
세계적인 민중운동단체 네트워크 제1차 국제회의가 열린 바 있다. 그리고 우
리나라에서도 오는 4월 2일에 "PGA 국제회의 보고와 신자유주의 대응을 위한
토론회"가 있을 예정이다. 오늘날에는 초국적-자본이 전 세계적 지배를 위해
정보.통신을 발달시키고 있는데 이처럼 이것을 능동적으로 이용하면서(정보
네트워크 방식으로) 세계적 범위의 연대가 활성화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세
계적인 연대는 아직 대륙적인 연대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인간성을 옹
호하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륙간 모임'은 아직 아시아 대륙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대륙적 연대는 오늘날 교통의 발달에 비추어 보면
"투쟁 현장으로 달려가서 함께하는 연대"를 가능케 할 것이다. 그리고 대륙
안에서는 민족은 다르더라도 종교적, 문화적 친근성이 높고 인적인 교류도
많으므로 보다 대중적인 연대를 만들어 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도에서
우리나라에 이르는 아시아 대륙 연대의 강화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것은 이 지역에 많은 자본을 내보내고 있는 우리나라의 노동운동, 민중
운동에게 특별히 부여되어 있는 책무라고 할 것이다.신자유주의 공세가 전
지구적 범위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국제연대가 부쩍 강조되고 있
다. 이것은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지극히 올바른 방향이다. 하
지만 이러한 국제적, 세계적 연대는 민족국가 내부의 노동자.민중의 저항과
연대가 없이는 매우 공허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지구촌이 아무리 세계화되
고 있다고 해도 민중의 `공동체적인 삶'은 여전히 한 민족국가의 테두리 안
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튼튼히 그 기초로 하
지 않는 국제연대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별반 위협이 되지 못한다. 멕시코의
경우에도 사파티스타 원주민들의 과감한 저항과 이에 대한 멕시코 민중의 전
폭적인 지지와 연대투쟁이 가장 확실한 원군이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지금 국제통화기금(IMF) 신탁통치를 계기로 하여 신자유주의
공세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그들은 이것을 근본개혁이라고 기만하면서 온
갖 파괴를 자행하고 있다. 그들이 `변혁'을 외치고 있다. 그들이 `해방'을
입에 올리고 있다. 그들이 `천국'을 약속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기자회견을 보면 "기업하는 천국을 만들겠다" "기업을 규제로부터 해방시키
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민중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그래야만 희망이 있다"고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민중은
이미 고통 정도가 아니라 통곡으로, 죽음으로, 생명의 파괴로 내몰리고 있다.

절망의 수렁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광기마저 번덕이며
더욱 거세게 공격해 오고 있다.이미 파괴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실업자
(일주일에 한 시간만 일해도 실업자가 아닌 통계기준으로)가 이미 1백만 명
을 넘어섰다. 앞으로 실물부문으로 공황이 확대되면 그 수는 2, 3백만 명이
된다고 한다. 이미 서울역 대합실에 `집 없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다. 더
이상 무슨 긴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민주노총에서는 위원장 후보자가
5월 1일 노동자 총파업, 총궐기 투쟁을 제안하고 있다.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 등의 노동악법을 전면 무효화할 것, 재벌개혁 등의 민주개혁 과제를
즉각적으로 시행할 것, 실업자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 굴욕적인
IMF 구제금융 이행조건을 백지화하고 전면적으로 재협상할 것, 경제 청문회
를 실시하고 경제파탄 책임자를 처벌할 것, 부당노동행위 금지와 해고자 원
직복직, 양심수 전원석방 등을 실시할 것 등을 요구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
고 `경제주권 및 민중생존권 사수 범국민 대책위원회'라는 민중연대 기구의
구성을 제안하고 있다.이러한 제시나 제안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동양엘리베이터 노조를 비롯하여 도처의 단위 사업장에서 생존권
사수를 위하여 사활을 건 파업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
는 민중연대는 이러한 투쟁들의 연대에 일차적인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 투
쟁들은 거의 모두가 생존권적이고 기본권적인 것이다. 임금삭감 및 체불, 정
리해고, 파견근로 도입, 단협불이행과 노조 탄압, 단협개악 강요를 비롯하여
노동법 개악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 없이. 그리고 법도 없고 안면도 몰수하고
. 그래서 투쟁은 지금 주로 노동자들에게 터져나오고 있다. 그리고 조만간
실업 노동자로 확대될 것이다. 이를 위해 실업자 동맹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앞으로 도시빈민으로, 농민으로 확대될 테지만, 지금은 이처럼 주로 노동
자들이 저항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그렇다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은 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전투적 연대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
다. 노동자 투쟁이 끝난 다음에 농민이 투쟁하고 그 다음에 도시빈민이 투쟁
하는 식이 되어서는 이 절대절명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이번 결전에
서 노동자가 패배한다면 당분간은 저항다운 저항은 어려워진다.한편 그 동안
의 민중연대는 이러한 `투쟁과 저항의 연대'가 아니라 `회의와 성명서의 연
대'가 중심이 되어 왔다. 전국연합이 그러했고 민주연대가 그러했다. 그런
것도 필요하지만 투쟁하는 민중의 연대를 중심축으로 하지 않을 때 그것이
만들어내는 대중행동은 기껏 언론보도에나 초점을 맞춘 캠페인성 행동으로
떨어지고 만다. IMF협약 체결 당시 그랬다. 특히 선거에 나가서 표얻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부분들이 이끌고 가는 민중연대는 대중에게 허무감만 보태줄
뿐이다. 국민승리 21이 그러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현실이다. 정리해
고제의 법제화이고 세계가 경악한 IMF신탁통치이다. 대중의 무력감이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이 사람들이 또다시 이 중대한 투쟁을 지도해서는 안 된다
.저항의 연대는 생존권적, 기본권적인 생활상의 요구에 기초해야 한다. 신자
유주의는 그것의 파괴를 추구하고 있고, 바로 그곳에서 민중과 신자유주의
세력은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이러한 공격은 민족국
가와 민족경제의 무력화와 개조를 통하여 관철되고 있다. 그러므로 신자유주
의 정세 하에서는 이것들을 지켜내는 것이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해진다. 국
제통화기금(IMF) 신탁통치 철회를 요구하고, 경제주권 수호를 주장하는 것을
민족주의라고 폄하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 그것을 요구하며 초국적-자본의
공격을 격퇴하는 과정 속에서 민중의 생존권을 방어하면서 천민재벌과 북풍
공작이나 일삼는 파쇼 폭압기구를 해체하고, 반민주악법을 철폐시키고, 정치
.경제의 민주화를 쟁취해야만 한다. 그러한 대응을 통해서만 초국적-자본의
신자유주의 총공격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다.

그러므로 저항의 연대는 "국제통화기금(IMF) 신탁통치 철회--민주대개혁 운
동"으로 모아져야 한다. 이것을 큰 방향으로 하는 속에서 민중의 생활상의 요
구투쟁들을 수행해야 하고,이 속에서 민주대개혁을 넘어서는 진보의 동력을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전세계 민중과의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이러한 저항의
연대는 지금 긴급을 요하고 있다. 아니 이미 귀중한 시간을 상당히 허비했다
고 말해야 옳다. 그러나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하듯이 우리 운동은 봄에 활짝
꽃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봄이 오고 있다. 98년의 봄은 어떠한 봄이 될
것인가? 과연 희망의 봄이 될 것인가? 희망과 미래는 이 땅의 청년들에게 달
려 있다.

임선희 <민주노조운동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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