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언어, 혈통 등으로 ‘족(族)’을 구분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여기 개성과 취향으로 하나의 ‘족’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학기 문화부는 저마다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문화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족장은 ○○족의 대표자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대변합니다. 이번주는 ‘토덜트족’의 족장과 함께했습니다. 장난감의 ‘TOY’와 성인의 ‘ADULT’를 합친 용어인 토덜트족의 족장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토덜트족의 문화가 궁금하다면 권동현 교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세요! 지금 시작합니다. 

 

오해가 빚은 부정적 시선
“토덜트보단 전문가로 불려야”
‘전문적’ 취미는 삶의 활력소

 

연구실의 수많은 피규어 중 하나를 꺼내어 바라보는 권동현 교수. 눈에서 애정이 꿀처럼 떨어진다. (사진 김아현 기자)
연구실의 수많은 피규어 중 하나를 꺼내어 바라보는 권동현 교수.
눈에서 애정이 꿀처럼 떨어진다. (사진 김아현 기자)



‘1만 시간의 법칙’이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최소 1만 시간을 해당 분야에 투자해야 함을 의미한다. 1만 시간은 한 분야에 하루 1시간씩 정성을 쏟는다고 가정했을 때 약 27년이 소요되는 엄청난 시간이다. 이 많은 시간을 장난감에 투자한 사람이 있다. 바로 ‘토덜트족’ 권동현 교수(경기대 애니메이션영상학과)다. 토덜트족은 어떤 삶을 사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달 어느 무더운 여름날 권동현 교수를 만났다.


  오해는 금물!

  권동현 교수를 만나기 위해 경기대 서울캠으로 향했다. 권동현 교수의 연구실이 있는 본관에는 1층부터 로봇과 피규어들이 진열돼있었다. 그들은 의젓한 차렷 자세로 기자를 맞이했다. 피규어와 인사를 나눈 후 권동현 교수의 안내에 따라 연구실로 향했다. 처음 보는 광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이렇게 피규어가 많이 모여있을 수 있는가. 피규어는 연구실의 책상부터 진열장까지 빼곡히 차 있었고 심지어 천장에도 붙어있었다.

  기자가 연구실 구경을 마치자 권동현 교수는 무겁게 입을 연다. 그의 첫 마디는 장난감 자랑이 아닌 토덜트족을 향한 왜곡된 인식 우려였다. “토덜트족을 둘러싼 부정적인 시선이 많아요. 동심을 가졌다고 하면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생각해요. 실상은 동호회만 나가도 다양한 직업군에 속한 평범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말이죠.” 이어서 그는 토덜트라는 단어를 고쳐야 한다고 언급한다. “굳이 동심이라는 의미를 넣어서 신조어를 만들기보다는 기존에 있었던 마니아, 전문가와 같은 말로 불러줬으면 해요. 단순 피규어 조립을 넘어 이제는 창작까지도 하거든요.”

  권동현 교수는 토덜트족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의 배경에 우리나라의 만화산업이 깔려있다고 설명한다. “미국에서는 미키마우스가 어른용 애니메이션으로 출시되는 등 여러 세대가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애니메이션 문화를 즐길 수 있어요. 반면 국내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은 유아용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모든 세대가 즐기기는 어려운 실정이에요.” 그는 이러한 배경이 독특한 문화를 낳았다고 언급한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는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세대 간 공감이 이뤄지지 않았어요. 애니메이션이 전체관람가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오해가 생겼죠. 환경의 차이가 결국 사회적 시선의 차이로 연결됐어요.”


  장난감 많이 많이 : 마니아의 삶

  권동현 교수는 포스터, 만화책과 같은 다양한 상품이 있음에도 피규어 수집에만 집중한다. “대학생 시절 조소를 전공해서 입체 조형에 관심이 많아요. 화면 속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을 현실에서 피규어로 접하면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요.” 그의 피규어 취향은 확고하다. 연구실에는 건담, 아이언맨 등 로봇이 주를 이룬다. “대체로 메카닉(mechanic) 피규어를 수집해요. 메카닉은 공상과학 로봇이에요. 저는 철인 28호처럼 뚱뚱한 디자인보다는 건담같이 늘씬하고 각진 기사 피규어만 수집하죠.”

  피규어로 가득한 권동현 교수의 연구실에서 설정집이 눈에 띈다. 설정집이란 캐릭터의 탄생 비화와 특징 등이 서술된 책이다. 권동현 교수는 설정집을 통해 피규어의 재미를 한층 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설정집에는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자세하게 적혀있어요. 그 과정을 알고 나면 애니메이션의 몰입도가 올라가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죠.”

  권동현 교수는 특별히 소중하게 여기는 피규어 없이 모두에게 똑같은 애정을 쏟는다. 애착이 더 가는 피규어를 집요하게 묻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온다. 놀랍게도 ‘건담’이 아닌 ‘스톰’ 피규어다. 권동현 교수는 스톰은 비운의 캐릭터라고 본다. “스톰은 한국 캐릭터예요. 애니메이션은 재미가 없었지만 피규어 자체의 완성도는 높아요.” 씁쓸한 표정으로 스톰 피규어를 얻은 소감도 전한다. “스톰 피규어는 중고로 샀어요. 6개의 피규어를 3천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구했지만 기쁘기보다는 국산 피규어가 헐값에 팔린다는 점은 안타깝죠.”

  권동현 교수는 스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피규어를 중고거래로 얻는다. “중고거래 카페나 동호회 장터 게시판에서 주로 직거래를 하죠. 택배 거래도 하고요. 중고거래는 가격이 기존 피규어의 반값 정도라는 점에서 경제적이에요. 또 이미 조립 돼 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딱 맞죠.” 시간과 돈 모두를 절약할 수 있어 피규어 수집에 탁월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물론 출시 후 오랜 시간이 걸려야 구할 수 있다는 치명적 단점도 있다. “신제품은 못 사죠. 보통 피규어 출시 후 2~3년이 지나야 구할 수 있고 심지어 어떤 제품은 10년이 넘어서야 장터에 등장해요. 그렇게라도 구하면 ‘내가 이 실체를 드디어 보는구나’와 같은 기쁨이 느껴져요.”


  헤어나올 수 없는 이유

  권동현 교수는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피규어 수집을 즐겨왔다. 권동현 교수는 새로움을 찾아야 질리지 않고 오랫동안 취미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관심이 하락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그때마다 새로움을 찾아야 해요. 저는 애니메이션 ‘라젠카’도 3D로 만들고 로봇 디자인도 하다 보니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계속 마련됐어요.” 덧붙여서 동호회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방법도 효과적이라고 언급한다. “동호회에서 취미를 같이 공유하다 보면 서로 자극을 받아요. 타인의 전문적 수집 및 지식수준을 보고 본인의 실력을 향상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죠.”

  오랫동안 피규어를 모아온 고수에게 피규어는 무슨 의미일까. 기자는 조심스럽게 “삶의 원동력인가요?”라고 물었지만, 권동현 교수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대신 다른 답변이 나왔다. “저에게 피규어는 활력소예요. 플러스알파 같은 존재죠. 취미가 없다고 제가 죽진 않잖아요.” 이어서 그는 취미는 몰두할 수 있어야 한다는 평소 생각을 밝힌다. “취미 활동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단 자신을 중심으로 행해야 해요. 자기만의 만족을 느껴야 즐겁기도 하고 자아 성장으로도 이어지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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