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기자야 학생이야? 둘 중 하나만 해” 취재 활동을 하다가 누군가에게 들은 한 마디다. ‘기자’로서 자유로운 취재활동을 보장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배움의 단계에 있는 ‘학생’이기도 한 학생기자의 속성을 지적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대부분 사안에서 학생의 편에 서는 학보사의 편집 방향을 향한 비난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곤 해도 불쾌했다. 꾸지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나를 기자보다 학생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으리라 생각했다. 그 위계적인 태도를 속으로 비난했다. 당연히 학생인 동시에 기자라고 속으로 대답했다.

  그 질문 한마디가 참으로 오랫동안 남았다.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해봤다. 명백히 학생과 기자 양쪽 모두에 발을 걸치긴 했지만 양쪽 모두로부터 거리감이 느껴졌다. 학생기자는 학생이지만 그냥 학생은 아니었다. 교육 서비스를 소비하면서도 시스템을 꾸준히 감시하고 비판해야만 한다. 다양한 학내 집단의 목소리를 담으려다 그 사이에서 치이기도, 대립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 대상이 학생사회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보사의 편집 방향은 일관적이다. 최대한 학생의 입장에 서서 목소리를 내는 것. 하지만 정작 학생들은 학내 언론에 무관심하다. 온전한 학생으로 남을 수도 없는데 학생 사회와 은근한 거리감마저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직 제 역할을 다하는 언론인이라기에도 어설프다. 학내 사안을 중심으로 보도하는 학보사의 특성상 취재원인 여러 학내 집단과 완전히 등을 질 수는 없다. 기사가 보도된 이후 취재원의 반응을 염려해본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또한 학업을 병행하느라 시간적, 물리적 한계로 쓰지 못한 기사도 많다. 취재가 미숙해 기사가 여러 번 엎어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시간에 쫓겨 미흡한 기사를 작성하거나, 지면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답습 기사를 작성한 적도 있다. 기자로서도 부족함을 느끼는 이유다. 바쁜 일정을 핑계로 기자의 부족함을 돌아보지 않았다. 반성과 극복을 위한 고민을 계속해서 외면했다. 시간이 지나 질문의 불쾌감이 사그라들 무렵에 학생인지 기자인지, 정체성을 묻는 질문은 스스로의 떳떳함에 대한 뼈아픈 일침으로 다가왔다.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도 변함없다. 나는 학생이면서 동시에 기자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학생이 편집권을 가지고 보도활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방법이 가장 민주적이고 공정하다고 대학 공동체가 합의한 결과일 것이다. 학내 언론이 확보한 독립적인 위치는 이를 바탕으로 한다. 위치 다음의 위상은 스스로 높여야 한다. 기자가 스스로 당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괜히 움츠러들었고, 찔린 듯 불쾌감을 느꼈다. 질문이 꾸지람처럼 느껴졌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덕분에 오랫동안 마음 한쪽에 미뤄뒀던 반성을 지금 하고 있다. 학생기자로서 맞는 세 번째 학기다. 위치에 걸맞은 위상을 만들어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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