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하루에 한 번은 화장실을 이용합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 일상적인 공간을 찾을 때 망설일지도 모릅니다. 최근 화장실과 관련한 흥미로운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일부 시민이 ‘성중립화장실’이 필요하다고 요구했기 때문이죠. 성중립화장실이란 어떤 사회적 정체성을 가졌더라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성중립화장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 백희정 상임이사, 건축사사무소 에녹 이상우 소장,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서울퀴어문화조직위원회 강명진 조직위원장, 인권재단 ‘사람’ 정민석 사무처장과 함께 ‘성중립화장실’을 이야기해봤습니다.

일러스트 노유림 기자

 

 성중립화장실, 너의 이름은

 기자: 성중립화장실이란 명칭이 조금 생소한데요, 정확히 어떤 화장실인가요?

 이상우 소장: 성중립화장실은 생물학적 성으로 구분되지 않은 화장실을 말해요. 사회문화적 성인 젠더를 존중하고 조금 더 나아가 보편성의 가치를 지닌 화장실이죠. 쉽게 말해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라고 볼 수 있어요.

 김지학 소장: 일반적으로 성별 구분이 없는 화장실을 말하지만 성소수자만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이분법적 성별 구분이 불편한 사람이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죠. 인권재단 사람, 김포공항, 더베이101 등의 건물 화장실이 이처럼 구성돼있어요.

 정민석 사무처장: 일부 성소수자는 공중화장실 이용과 같은 일상적인 요소에서 고통 받고 있어요. 공중화장실 내에서 당할 수 있는 폭력 상황이 두려워 집 화장실만 이용하기도 하죠. 그러다보니 만성적인 방광염에 시달리기도 하고요. 성중립화장실은 기능적으로 일반 화장실과 큰 차이가 없지만 소수자 인권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요.

 기자: 정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네요. 성중립화장실이 필요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백희정 상임이사: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논의는 기존의 공중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던 성소수자의 편의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됐어요. 성중립화장실은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 양성체계를 깨는 시작이 될 수 있고 장애인의 불편도 해소할 수 있죠.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의 성별이 다른 경우 함께 화장실을 이용하기 힘들거든요.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불편을 줄이고자 성중립화장실의 필요성이 제기됐어요. 성별이 아닌 ‘화장실’이라는 이용목적을 우선 고려한 화장실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외면하거나 지지하거나

 기자: 이번에는 성중립화장실을 둘러싼 오해를 바로잡아볼까 합니다. 성중립화장실을 남녀공용 화장실과 혼동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성중립화장실은 정확히 어떤 구조로 돼 있나요?

 김지학 소장: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더베이 101 화장실은 1인 화장실이 나열돼 있어요. 눈에 띄게 다른 점은 화장실 문이에요. 천장과 바닥이 빈틈없이 막혀 있어 다른 칸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돼 있죠. 독립된 공간이라고 보면 돼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논의할 때 이런 부분까지 고려할 수 있어야 하죠. 또 최근 백화점이나 아울렛,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 생기고 있는 가족화장실도 성중립화장실의 일환으로 볼 수 있어요.

 기자: 성중립화장실을 설치하려면 새로 지어야 하나요? 금전적·공간적 낭비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상우 소장: 굳이 신설하지 않아도 일부 공중화장실을 성중립화장실로 전환할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 남녀 화장실은 입구를 기준으로 분리되잖아요? 그 성별 구분을 없애고 화장실 입구에는 이용가능한 칸을 확인할 수 있는 센서를 설치하는 거죠. 이렇게 되면 성별로 인한 구분에서 벗어나 화장실을 사용한다는 목적에 집중할 수 있어요. 오는 2020년에 열리는 제32회 도쿄 올림픽에 성중립화장실이 운영된다고 해요. 현재 경기장에 있는 총 11개 화장실 중 7개를 성중립화장실로 개조한다고 밝혔죠. 이미 설치돼있는 화장실을 개조해도 충분히 성중립화장실의 역할을 할 수 있어요.

 백희정 상임이사: 또한 일반 공중화장실을 두고 성중립화장실을 추가로 설치하면 자칫 성소수자 ‘전용’ 화장실로 인식돼 오히려 편견이 생길 수 있죠.

 기자: 중대신문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웃팅이나 불법촬영 등 성범죄 우려도 적지 않았는데요. 성중립화장실을 설치하면 성범죄가 증가한다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명진 조직위원장: 실제로 정부는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여성과 남성을 분리하는 공중화장실을 만들고 있죠. 그런데 이런 방식의 분리가 범죄 발생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단기적으론 가능할지 몰라도 장기적 대안은 아니라고 봐요. 불법촬영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방안을 논의하고 관련 규제를 정비하는 게 바람직하죠.

 백희정 상임이사: 성범죄와 성중립화장실을 연관지어 생각하면 안돼요. 성중립화장실 자체가 성범죄를 증가시킨다고 보기는 힘들죠. 다만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과 같은 성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았어요.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곧바로 성중립화장실을 설립을 주장하는 건 시기상조에요. 성중립화장실을 둘러싼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하죠.

 공간의 재구성, 모두를 위한 곳

 기자: 그렇다면 성중립화장실 설치와 관련해 우리 사회가 고려해야할 측면은 무엇일까요?

 백희정 상임이사: 성중립화장실은 성 평등의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어요. 성 평등은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죠.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과정도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안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그러면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질 수 있죠.

 김지학 소장: 성별 이분법적인 화장실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해요. 누군가는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 중 어디로 들어갈지 고민 없이 결정하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않을 수 있죠.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만 모두에게 편리하고 안전한 사회는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어요.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면 말이죠. 성중립화장실처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하나씩 바꿔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어요. ‘내’가 속한 공간에서부터 ‘우리’의 일상에 질문해야 합니다. “이 공간은 모두에게 편리하고 안전한가?”라고 말이죠.

 기자: 모두를 위한 화장실,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여요. 일상적인 공간에서조차 불편함을 겪어야 했던 소수자의 삶을 보호할 첫걸음이 될 수 있겠죠. 이상으로 좌담회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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