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선과 악의 대립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선’을 의미하는 지킬 박사가 완전한 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킬 박사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 하이드라는 ‘악’을 탄생시키고 이 악을 숨겨주기 위해서 노력한다.

  나 그리고 우리는 위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우리라는 존재는 ‘불안정한 선’을 의미한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사람들은 특정한 상황에서 ‘악의적인 행동’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누군가와 다투면서 상대방을 ‘죽여 버리고 싶다’라든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보고 ‘훔치고 싶다’라는 도벽 증세를 보이는 것들이 그 예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행동을 참고 넘기는 것은 위와 같은 ‘악’이 나오지 못하도록 ‘선’이 막아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언뜻 보기에 평범한 사람들처럼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숨겨진 악’들이 표출되는 순간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 정도 또한 존재한다. 위와 같은 사례들을 바탕으로 ‘선’과 ‘악’의 관계를 풍선이라고 표현해보자. 즉, 풍선 안의 공기는 ‘악’, 그 공기를 둘러싼 풍선은 ‘선’인 것이다. 풍선에 압력이 가해진다면 풍선 안의 공기가 새거나 풍선이 터져버리는 두 가지 결과가 존재하게 된다. 외부의 압력이 어떤 사람이 마주칠 특정한 상황이라면, 풍선의 공기가 새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낮은 단계의 ‘악’의 표출이며, 풍선이 터지는 것은 바로 높은 단계의 ‘악’의 표출이 된다.

  책을 읽고 정의한 이 풍선을 현실에 적용해보자. 항상 약속 시간을 늦는 사람, 상대방이 싫어할 것을 알면서도 상대방을 놀리는 사람 등 낮은 단계의 ‘악’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풍선이 조금 두꺼울 뿐이며 높은 단계의 ‘악’은 그 반대일 뿐이다.

  이러한 모습들을 통해 현실을 재조명해본다면 우리의 주위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수많은 시한폭탄들이 존재하게 된다. 우리는 늘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야하며 그것을 인터넷이나 TV 등의 여러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본인 또한 다른 사람에게는 두려워해야할 시한폭탄이 되어야하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두꺼운 풍선을 지니고 있다. 또는 그 안의 공기가 생각보다 작을지도 모른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끝 부분에서 지킬 박사는 하이드라는 ‘악’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을 보았을 때, 사람들의 본성이 성선설인지 성악설인지는 중요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악’을 가지고 있고 ‘선’으로 막고 있으며 자라면서 이성적으로 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본능에 휩싸여 ‘악’을 중시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하지만 세상을 보라. 많은 사람들이 ‘선’을 강조하는가, ‘악’을 강조하는가?

오준석
소프트웨어학부 회장
소프트웨어학부 3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