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수필: 조재윤 학생(경영학부 1) 「꽃들도」

문학비평: 김주형 학생(사회학과 2) 「우리는 왜 칠 수밖에 없는가」

영상비평: 전명환 학생(국어국문학과 4)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치킨」

가작

사회비평: 형재성 학생(교육학과 2) 「고교학점제, 이상과 현실의 균형점을 향해서」

 

 

 이렇게 진행했습니다

 중대신문이 주최하는 제7회 수필 공모 및 제13회 비평 공모가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달 2일부터 15일까지 이뤄진 이번 공모에는 작품 총 24편이 접수됐습니다. 공모는 수필, 문학, 사회, 영상 부문으로 구분해 받았습니다. 부문별로는 각각 수필 13편, 문학비평 5편, 사회비평 3편, 영상비평 3편이 응모됐습니다. 심사는 예심과 본심으로 나누어 진행했습니다. 

  수필과 문학비평 부문 예선 심사는 오창은 교수(다빈치교양대학)가 맡았습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수필 5편과 문학비평 3편이었습니다. 사회비평과 영상비평 부문 예선 심사는 최윤경 교수(다빈치교양대학)가 담당했습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사회비평 2편과 영상비평 2편이었습니다.

  본선 심사는 부문별로 나누어 진행했습니다. 수필은 류신 교수(독일어문학전공), 문학비평은 이승하 교수(문예창작전공), 사회비평은 이경수 교수(국어국문학과), 영상비평은 김낙현 교수(다빈치교양대학)가 심사했습니다. 최종심사 결과 수필, 문학비평, 영상비평 부문에서 당선작이 뽑혔습니다. 사회비평 부문은 가작으로 선정됐습니다. 

  이번 공모전에 참여한 모든 응모자 학생분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매순간 현상 이면을 치열히 다루는 여러분 앞날을 응원하겠습니다. 더불어 귀한 시간 내어 심사를 맡아주신 교수님께도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합니다.

 

 “따스하고 균형 있는 비평의 눈을 간직해나가시길”

 

 총평 수필 및 문학비평 부문 오창은 교수(다빈치교양대학) / 사회·영상비평 부문 최윤경 교수(다빈치교양대학) 

 

 수필 부문

 수필은 자신이 외부에서 경험한 사건들을, 내면에서 되새기며, 다시 외부 세계를 향해 말을 거는 글쓰기이다. 외부의 세계는 객관화되어 있기에,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파악한 세계를 나만의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심을 통과한 다섯편은 모두 자기 목소리를 지닌 좋은 글들이었다. 무엇보다 글을 이끌어가는 힘이 있고, 자기 세계를 확장하는 울림이 있었다. 지난 2017년에는 응모작이 19편, 지난 2018년 36편, 올해에는 총 13편이 응모했다. 예년 보다 응모 편수가 줄어 안타까웠다. 모든 글쓰기는 무엇보다 글쓴이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 글이 교감과 소통으로 이어질 때, 자신의 세계는 더욱 넓어진다. 좋은 글 읽기 경험을 안겨준 응모자들에게 격려의 인사를 전한다. 

  문학비평 부문

  문학평론은 대상 텍스트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매혹된 자의 애정에 기인한 것이든, 비판적 거리두기에 기반한 것이든 ‘텍스트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다. 문학평론을 쓰는 이는 텍스트를 그 누구보다 먼저 읽어낸 자이며, 텍스트를 깊이 읽어 의미를 확장하는 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학작품에 대한 감상평을 넘어서는 적극적 해석과 평가의 길이 열린다. 문학비평은 지난 2018년에는 5편이, 올해에는 총 6편이 투고되었다. 형식적 측면에서 문학평론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은 반가웠다. 하지만 독자와 소통하는 ‘문학평론의 대화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좋은 비평은 텍스트와 더불어 한 몸이 되는 비평이다. 비평가는 대상 텍스트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지 않다. 비평가는 텍스트에 스며드는 자이면서, 텍스트와 한 몸이 되어 소통하는 자이다. 비평의 즐거움이 가득 담긴 글들이 많이 쓰여지기를 기대한다. 

  사회비평 부문

  우리는 살아 움직이는 사회 안에서 살아있는 구성원으로 산다. 사회는 우리를 담고 있지만 우리 또한 끊임없이 그와 조응하면서 사회를 기획하고 움직이고자 하고 대처하고자 한다. 거기에서 나오는 불안정함이 곧 사회의 성질이고 구조이며 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회를 읽어내고 꿈꾸고 살아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을수록 조금 더 살만한 사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응모작들은 최근의 사회현상과 제도에서 출발하여 그 작업들을 실천하려 하고 있다. 문제의식 안에 윤리적 감수성이 엿보이는 글도 있어 반가웠다. 현상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회의 의식과 마음을 읽는 따스하고 균형 있는 비평의 눈을 간직해나가길 바란다.      

  영상비평 부문

  응모작들은 공통적으로 대규모 제작비를 들인 최근 영화들을 비평 대상으로 삼았다. 응모작들은 작품의 문화적, 사회적 특징을 잘 포착하고 분석하는 감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비평 대상과 분석 방법이 협소하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영상비평은 기본적으로 ‘시각 경험’을 다루는 분야이다. 작품의 시사성이나 내러티브적 의미 뿐 아니라 영상미학을 구현하는 기술적, 문법적 요소들까지 고려될 때 사회비평, 문화비평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닌 영상비평 고유의 의미가 있다. 매체의 특성을 반영한 보다 넓은 관점으로 영상 텍스트 읽기에 도전해 보시길 바란다. 영상 장르의 활용과 영향력이 증폭되는 시대적 흐름을 참고해 게임이나 유튜브, 뮤직비디오, 보도영상 등 다양한 영상 장르에 대한 비평도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예심평

 수필 부문

밀리컨을 통해 본 연구자가 갖춰야 할 능력: 로버트 앤드루스 밀리컨, 18년 동안 ‘전자 전하량 정밀 측정’을 위해 끈기 있게 노력한 과학자다. 필자는 한 과학자의 불굴의 의지를 그려냄으로써, 후대 물리학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촉구했다. 그것은 자신감, 끈기, 과학적 고찰 능력이다. 사실적 정보 전달에 치중하다보니, 글쓴이의 경험이나 관점이 충분히 표현되지 못했다.  

유전자 조작은 과연 옳은가?: 영화 ‘가타카’를 통해 유전자 조작에 대해 논한 글이다. 필자는 유전자 조작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그 근거로 빈부의 문제, 안전성의 문제, 생명 윤리의 문제를 제기했다. 과학계의 중요한 쟁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는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글이다. 다만, 논설문 성격을 띠고 있어서, 수필적 내면세계의 표현이 약했다.  

중립의 입장에서 본 ‘갈등': 누구나 일상에서 ‘갈등 상황’에 직면한다. 필자는 갈등의 원인을 소통부족, 이해 부족으로 제시하고, 그 해결 방안으로 지속적 소통과 이해하려는 관용의 자세, 그리고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구체적 사건이 없는 주장 중심의 글이기에, 경험과 사례를 가미해 이야기성을 풍부화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해 본다.

감정의 페르소나: 문장을 통해 자신의 표현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자신의 내밀한 생각, 나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계, 타자에 대한 나의 관점 등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 글의 매력이다. 이 글은 내면의 목소리를 문장에 담아내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 그 문장의 흐름이 보다 더 연결되어 있고, 읽는 사람에게도 더 열려 있다면, 더 큰 울림을 주리라는 기대를 해 본다. 

꽃들도: 꽃이라는 대상에 삶을 응축시킨 질문과 대답의 형식이 이채롭습니다. 필자는 꽃을 통해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자신의 생각을 확장한다. 글이 맴돌지 않고,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도 흥미롭고, 대화식 구성도 흡입력이 있다. ‘나는 꽃이 되고 싶었다’에서 ‘대신 꽃을 인정하는 삶을 권하고 싶다’로 전환되는 반전이 이 글의 장점이다. 성숙한 인간은 세상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고통의 과정에서 획득한다. 이 글은 그 여정을 평이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담아 전달하고 있다. 

반할일기: 특정한 공간에서 일어난 일들을 그린 예쁜 소품 같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마치 짧은 소설처럼, 스냅사진을 찍듯 묘사하는 솜씨가 깔끔하다. 풍경을 응시하는 자의 시선에 이미 메시지가 배어 있다. 각각의 장면이 사건들과 연결되어 만들어내는 보다 내밀한 자기 표현을 담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 보기를 권유한다.  

아이스크림을 기다리며: 크리스마스 이브,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풍경을 담은 글이다. 마치 잔잔한 단편소설을 읽는 느낌을 자아내는 유려한 흐름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글은 부드러운 문장의 흐름, 자연스러운 상황 묘사 등이 장점이다. 바라보는 자의 세계는 잘 표현되어 있다. 감각 이상의 사유를 촉발하는 세계를 그리는 것에 대해 더 고민해 보기를 권유한다.

Happy Birthday To me: 자신의 어조로 글을 끌어나가는 힘이 있다. 자신의 일상 생활을 그대로 그려내는 용기도 갖추고 있으며, 대화형식의 글을 다루는 솜씨도 뛰어나다. 글을 많이 써 본 사람의 풍모를 느끼게 한다. 다만, 자아가 열려 있지 않고 폐쇄적이다. 자기 바깥의 타자에 대한, 혹은 읽는 사람의 관점에서 자신의 글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 숙고해보기 바란다.

Time To Say Good Bye: 일기와 수필의 경계는 모호하게 보일 수 있다. 둘 다 내면의 기록이고,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계를 그린다. 일기와 수필은 사적인 기록으로 보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글쓰기로 볼 수도 있다. 일기는 사적 세계를 전제로 쓴 글이고, 수필은 나의 바깥 세계에 있는 사람에게 열려 있는 글이다. 나의 글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공감을 불러 일으킬 것인가를 고려해야 하는 글이 수필이다.

거짓말쟁이_누나에 관한 마지막 기억: 17년 전 죽은 누나에 대한 기억을 대화형식으로 담담하게 풀어낸 인상적인 글이다. 슬픈 상실의 기억을 되새기며, 당시의 상황을 세세하게 되돌아보고 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글로 표현될 필요가 있다. 개인의 상처는 표현함으로써 치유되기 때문이다. 

눈을 떠도 비행기는 취소되지 않을 거야: 독일과 한국의 시간을 대비하며, SNS를 통해 소통하는 일상이 그려진다. 현대인은 같은 시간에 살면서도 다른 시간을 감각한다. 그 차이를 실시간 소통의 형식으로 경험한다. 물리적 거리는 존재하나 심리적 거리는 좁아질 수 있는 현대인의 일상이 이 글에 담겨 있다.

찰나의 고찰: 자신의 삶이 고통으로 채워져 있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무엇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삶을 전체로 바라보지 않고, 순간 속에서 자신의 위치에 집중하는 것은 어떨까? 이 글은 강연문 형식으로 두려움, 번민, 불안감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순간의 끌림’에 집중하도록 권유한다. 고민이 담긴 내용에도 불구하고, 글이 일방적 강연형식이라 극적 긴장과 서사적 몰입이 쉽지 않다.  

아버지의 복숭아 그리고 할머니: 복숭아를 매개로, 열한 살 때 여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펼쳐보이고 있다. 풍부한 이야기성이 읽는 이에게 미소를 머금게 하는 글이다. 가정사의 내밀한 이야기를 ‘나쁜 아빠’의 형상을 펼쳐 보이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깊은 그리움이 배어 있다. 내용의 반복과 중복은 글의 구성적 밀도를 떨어뜨린다. 좋은 글감이게 앞으로를 기대하게 하는 글이다.  

 

 문학비평 부문

이 시대의 청춘(靑春)은 청춘(請春)한다: 김애란의 소설 「서른」과 2017년 방영한 드라마  「청춘시대」라는 텍스트에 자신의 생각을 잘 버무려냈다. 필자는 두 텍스트에 기반해 우리 시대 ‘청춘’의 상황을 좌절, 비참함,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규정했다. 이러한 메시지를 두 작품에서 설득력있게 추출해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글의 흐름이 비평의 객관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결점을 제외하고는 잘 씌여진 논평문으로 평가한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이하 ‘삼국지(三國志)’에 나타나는 인간관과 그러한 인간관의 현대적 효용성: 동양의 고전 삼국지는 영화, 게임 등으로 변환되어 지금도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필자는 ‘삼국지 세 번 읽은 사람과는 상대하지 말라’는 어구가 지닌 상징성을 비판한다. ‘계략과 왜곡된 수단’을 통한 목표달성이 현대사회가 지향하는 ‘성숙한 시민성’과 충돌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비판적 논점을 높이 살 만한 글이다. 문학비평은 문학 텍스트 분석을 통해 쟁점을 부각하는 글이다. 이 글은 문학비평이라기 보다 논설문의 성격에 가깝기에 형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는 달님에게 무슨 말을 할까: 현대인의 자발적 ‘과잉 긍정성’은 자기 파괴라는 위험스러운 상황을 만든다. 필자는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제시하고, 자신의 과거 경험을 대비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휴식 없는 성취에서 벗어나, 생활이 있는 ‘행복’에 이르기를 주장하는 필자의 논지는 적절하다. 다만, 문학 비평의 서평이 아니기에 대상 텍스트 선정에 유의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왜 칠 수밖에 없는가: 대상 텍스트인 전석순의 『거의 모든 거짓말』을 파고들어가 그 심층을 분석해냈다. 이 글은 텍스트에서 질문을 도출해내고, 그 질문의 답을 향해 육박해나가는 힘이 있다. 대상 문학작품에 매혹되게 할 뿐만 아니라, 필자의 관점에도 빨려들어가게 하는 흡입력도 갖추고 있다. 글을 하나의 흐름으로 구성해 내는 능력도 돋보였다. 문학비평은 텍스트와 어우러져 있는 비평가의 목소리를 기대한다. 그런 측면에서, 텍스트에 기대지 않는 사회비평적인 주장을 담은 진술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잘 짜여진 연극 속,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김지영 씨: 비평의 형식적 요건을 갖춘 글로, 자신의 분명한 주장을 피력하려는 목적성을 지닌 글이다. 필자는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에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날조되고 편향된 해석의 통계’, ‘조잡한 에피소드’등의 표현에서 필자의 입장이 잘 드러난다. 모든 문학비평이 매혹의 비평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화’로 충만한 글은 독자와 소통하기 쉽지 않다, ‘화’의 정서가 차가운 비평의 언어로 전환 때, 비판의 목소리는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죽은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 알 수 있다는 듯이: 비평가는 매개자이면서 발화자이다. 그렇기에 어느 위치에서 누구를 향해 발언할 것인가가 중요한다. 시인 안희연의 작품 세계를 다룬 이 글은 비평적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는 미덕이 있다. 필자는 시를 읽고 시인에 대해 펼칠 낼 수 있는 이야기가 갖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비평적 재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읽은 안희연을 어떻게 잘 표현해낼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비평가의 글쓰기는 내가 읽은 안희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비평은 안희연을 더불어 읽는 길을 제시해 독자와 함께 직접 걷는 세계를 상상한다. 

 

 사회비평 부문

고교학점제, 이상과 현실의 균형점을 향해서: 현 교육체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고교학점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있다. 이 글은 수능체제나 분과 과목체계 위주의 교육제도를 전반적으로 수용하는 관점을 확고하게 취하고 있다. 이는 고교학점제가 야기할 문제점을 상세히 예측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초연결사회로 나아가는 미래에 대응하는 교육적 비전을 상상하는 데에는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보여 작은 아쉬움이 남는다. 

사적 기업과 장애인 채용: 교내 장애학생회에서 활동한 필자의 경험이 뒷받침되어 장애인고용정책을 진정성 있게 비판하고 있다. 단순히 의무고용률을 상향조정하는 것이 아닌, 장애학생 교육 환경 개선, 장애인 고용이 가능한 사업장 분류 등의 문제 해결 방식을 제안한 점에서 해당 분야에 대한 필자의 애정과 관심이 느껴진다. 글의 구성이 깔끔하고 논리적이어서 가독성과 설득력 또한 높다. 

한국 사회의 갑질 논란, 이대로 괜찮은가: 최근 자주 보도된 재벌 갑질의 원인을 분석했다. 최소한의 평등과 행복이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사회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장점이다. 문제의식을 힘 있게 밀고 나가면서 논리와 사유를 심화하는 글쓰기를 훈련한다면 더 발전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영상비평 부문

강요받은 영웅의 자리에서: 서부극에서 현대에 이르는 히어로들의 계보를 간략히 훑으면서 시대를 풍미하던 영웅이 약하고 퇴락한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는 흐름을 보인다. 뻔해 보이는 히어로물에서 영웅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와 ‘인간다움’에 대한 통찰을 읽어내면서 영웅이 아닌 인간을 부각시키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치킨: 역대 한국 영화 최고 관객을 동원한 <극한직업>의 주요 소재인 치킨을 한국사회의 의미 있는 문화 현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영화의 흥행성과 취약성을 동시에 유발하고 있는 치킨의 함의를 눈여겨 볼만 하다. 다만 논의가 좀 더 밀도 있고 간결하게 전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국은 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 그랬듯이: 최근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미세먼지를 보며 과학기술의 발달로 황폐해진 <인터스텔라>의 세계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이 글은 미세먼지 배출을 줄이는 신기술, 친환경에너지개발 등 미세먼지 해법을 제안하는 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영상비평의 역할과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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