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의 중앙에 서있는 저를 꿈꿨습니다. 이제 저는 중대신문의 중앙에 서고 싶습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편집국에 첫 발을 내딛는 수습기자 면접일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물음에 호기롭게 답했다. 환호와 뒤섞인 박수소리로 귓불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학생기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정기자 생활을 마무리해갈 때 즈음 중앙에 서겠다는 욕심을 내려놨다. 날카롭게 간 펜촉을 사회로 향하고 지구대에서 응급실에 이르는 흑석의 밤을 보내며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범접할 수 없는 중앙에 홀로 선 기자가 좋은 취재를 할리 만무했다. 그래서 기획부와 지역보도부라는 경험 끝에 기자는 중앙이 아닌 주변을 택했다. 대신 그 과정 속 어설픈 사랑을 배웠다.

  기사를 쓴다는 건 곧 해당 분야의 취재원과 대담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전문가일수도 일반 시민일수도 있는 취재원을 대할 때는 각기 다른 노력이 필요했다. 취재 요청서 하나를 쓰더라도 대상에게 와 닿을 단어를 엄선했다. 어떤 표현을 써야 더 깊은 답변을 이끌어 낼지 고민도 허다했다. 통화 인터뷰를 위해 연락할 시간대를 끊임없이 조율하기도 했다. 취재원이 전문가일 경우에는 지식을 동원해 대화를 이끌어냈다. 타인의 사정을 더 고려하려면 자연스레 그 주변을 맴돌 수밖에 없었다. 매주 모든 취재가 가냘픈 짝사랑처럼 이뤄졌다.

  이후 한 부서를 책임지는 부장이 됐고 나름의 성장을 거쳤다. 일방적인 것만 같던 사랑에도 꽤 능숙해졌다. 취재가 더 용이하게 이뤄졌거나 기사의 주제가 쉬워진 게 아니다. 다만 ‘주변’을 둘러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겼다. 이전까지는 취재 과정에 주안점을 뒀지만 부장직을 맡은 후부터 기자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 기사가 완성되자마자 손을 놨던 정기자 시절과 달리 조판이 끝날 때 까지 잔류하며 신문이 만들어지는 모든 순간을 사랑하게 됐다.

  고된 작문으로 지쳐있던 새벽에 기자들과 나눈 대화. 더 괄목할만한 제목을 위해 인쇄 직전까지 고민한 시간. 신문 면마다 켜켜이 쌓인 기억은 추억이 되고 사랑이 됐다. 그러고 나면 완성된 기사 하단에는 한 줄로 기재된 바이라인이 남는다. 지면 위 바이라인을 손끝으로 쓸어볼 때면 이번 주도 무사히 견뎠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누군가에게 울림으로 닿을 기사를 떠올리면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안도의 한숨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매주 기자를 지탱해준 건 결국 기자 생활에서 체감한 깊은 사랑이었다.

  담백하면서도 진솔하게 고백하건데 기자 생활은 짝사랑이 아니다. 소통으로 이뤄진 취재와 기사를 쓰는 모든 과정, 마지막으로 지면 위 기사가 독자에게 읽힐 때까지 기자는 과분한 사랑을 받는다. 사실 맞사랑이었던 셈이다. 닫은 취재 수첩에는 작은 쉼표가 찍혀있지만 잉크가 마르기도 전 이 수첩을 다시 펼치리라는 걸 안다. 기자는 앞으로도 수첩에 적는 모든 사안에 진중할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중대신문의 지면을, 독자인 당신을 위해 그 모든 순간을 사랑하겠다.
 

노유림 기획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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