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학기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일 중 무심하게 지나쳤던 경험을 돌아볼 수 있었나요?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던 모든 일이 여러분의 공감을 통해 조금은 주목받을 수 있었다면 좋겠습니다. 이번학기 기획부가 와 닿지 않았던 누군가의 일상을 생각하기 위한 작은 공간, ‘생각의자’를 마련했던것처럼 말이죠. 마지막 생각의자에 앉아 우리가 돌아볼 공간은 ‘성중립화장실’입니다. 모두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화장실. 그러나 누군가는 성별 이분법적 화장실 앞에서 망설이고 있습니다. 모두가 평등하게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 바로 성중립화장실인데요. 여러분은 성중립화장실을 얼마나 알고 계셨나요? 이번학기 마지막 의자에 앉아 성중립화장실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대학생은 성중립화장실을
어떻게 바라보나

다큐멘터리 영화 <코이 이야기>(Growing up Coy)의 주인공 코이는 트랜스젠더 여자아이다. 그는 지난 2013년 자신이 다니던 학교의 여자 화장실 사용을 금지당했다. 코이의 가족은 학교가 내린 해당 처분이 그에게 낙인을 찍는다며 콜로라도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고 결국 ‘학교 측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해당 사건은 미디어를 통해 미국 사회에 알려졌고 이후 성소수자의 화장실 사용 논의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성별 이분화된 화장실 앞에서 고민하는 이들이 비단 미국에만 있는 건 아니다. 한국에는 아직 문제 제기조차 하지 못한 많은 ‘코이’가 존재한다. 이들을 위해 국내 ‘성중립화장실’ 도입이 언급되고는 있지만 정작 성중립화장실의 정의도 모호한 실정이다. 우리 사회의 대학생은 과연 성중립화장실의 올바른 의미와 역할을 정확히 알고 있을까. 성중립화장실을 둘러싼 다양한 견해를 듣고자 대학생 총 2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실생활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아
  설문 결과 대부분의 대학생은 ‘성중립화장실’의 용도는커녕 용어조차 들어본 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중 약 63.1%(147명)가 ‘성중립화장실이라는 용어를 모른다’고 답했다. 용어를 몰랐다고 답한 학생들은 중복응답에서 ‘성중립화장실이라는 개념을 실생활에서 접할 기회가 없어서(약 85.7%, 126명)’, ‘관심 부족(나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서)(약 33.3%, 49명)’, ‘관련 교육이나 강의 수강 기회 부족(약 30.6%, 45명)’ 등을 그 이유로 짚었다. A학생(경북대 행정학과)은 평소 ‘성중립’이라는 표현을 접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표현이고 미디어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아 몰랐어요. 처음에는 남녀가 같이 이용하는 화장실이라는 생각만 들었죠.”

  약 36.9%(86명)의 응답자는 용어를 알고 있다고 답했지만 정확한 의미와는 다른 응답이 많았다. 기존에 알고 있었던 의미를 아는 대로 적어달라는 주관식 물음에 ‘같이 쓰는 화장실’, ‘남녀공용 화장실’ 등이 답변으로 제시됐다. 설문에 참여한 대학생 중 상당수가 성중립화장실과 남녀공용 화장실의 의미를 혼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우진 학생(성균관대)은 성중립화장실이 기존의 남녀공용 화장실과 비슷한 방식일 것 같다고 말했다. “언론에서 화장실의 구조와 관련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는 없었어요. 성중립화장실과 남녀공용화장실이 같다는 식의 설명만 접했죠.”

  ‘성중립화장실을 이용할 것으로 생각되는 집단’에 중복응답으로는 ‘기타성별(약 70.4%, 164명)’이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이어 ‘남성(약 61.4%, 143명)’, ‘여성(약 46.8%, 109명)’이 뒤를 이었다. 장민 학생(광고홍보학과 2)은 성중립화장실이 설치되더라도 주로 남성이 이용할 것 같다고 밝혔다. “실제 성중립화장실이 설치된다 하더라도 남성이 가장 많이 이용할 것 같아요. 아무리 성소수자를 배려해서 만들었더라도 모든 성별이 이용한다면 성소수자는 잘 쓰지 않을 것 같고요.” 반면 김태우 학생은 성중립화장실을 이용할 대상으로 남성, 여성, 성소수자를 꼽았다. “‘성중립’은 한쪽 성별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의미잖아요. 모든 성별이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편 ‘노인(성별무관)’과 ‘장애인(성별무관)’은 약 33.9%(79명)로 비교적 적은 비중을 차지했다.응답자들은 ‘성별, 나이, 장애 여부 구분 없이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화장실이라고 생각한다’, ‘이용하는 데 다른 조건이 필요 없을 것 같기 때문’ 등을 답변 이유로 제시했다.

  부족한 이해가 낳은 오해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에 의하면 성중립화장실이란 성별 정체성, 장애, 나이 등 어떤 사회적 정체성을 가졌더라도 안전하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뜻한다. 성별, 장애 여부, 연령과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성소수자, 장애인, 영유아 뿐만 아니라 자녀 혹은 노부모를 동반한 가족들, 장애인과 활동 보조인 등이 모두 이용 가능하다. 특히 성중립화장실은 잠금장치가 있는 독립 공간이기 때문에 남녀공용 화장실처럼 타인과 함께 이용할 수 없는 구조다. 또 기존의 여성화장실과 남성화장실을 완전히 없애는 게 아닌 별도의 화장실을 더 설치하는 방식으로도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정확한 의미 설명 이후 ‘성중립화장실이라는 용어와 의미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에 총 233명의 응답자 중 약 48.5%(113명)가 ‘용어와 의미 모두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 또한 ‘용어는 알고 있었지만 의미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는 답변이 약 36.9%(86명)로 뒤를 이었다.

  총 205명이 답한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 이유로는 ‘의미 자체에 대한 정보나 이해가 부족했다(중복응답, 약 48.3%, 99명)’와 ‘타인과 함께 이용하는 구조라고 생각했다(남녀공용화장실 등)(중복응답, 약 47.8%, 98명)’가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성소수자만 이용한다고 생각했다(중복응답, 약 25.9%, 53명)’는 응답 역시 많았다. B학생(소프트웨어학부 2)은 자세한 설명을 듣기 전에는 성소수자만 이용 가능한 화장실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반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성중립화장실을 쓸 수 있다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설명을 통해 성중립화장실과 남녀공용 화장실의 차이를 알 수 있었어요.”

  ‘평등’하게 화장실을 쓸 권리
  ‘성중립화장실개설이 사회적 평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십니까?’에는 전체 응답자의 약 32.2%(75명)가 ‘긍정적인 영향’이라고 답했다. 박지원 학생(성공회대)은 성중립화장실 설립이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제도적 평등의 첫걸음이라고 언급했다. “우리 사회에는 잘못된 성 정체성 논리에 소외되는 소수자들이 있어요. 성중립화장실 설립으로 그들의 인권과 선택권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민 학생 역시 성중립화장실 설립이 사회적 평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화장실이 성별로 이분화돼 있는 현실이 성소수자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어요. 성중립화장실은 이분법적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소수자를 배려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해요.” 또한 그는 당연한 권리가 성소수자에겐 ‘배려’로 다가와야 한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한편 해당 질문에는 긍정적인 영향 이외의 답변이 더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전체 응답자 중 약 42.1%(98명)가 ‘잘 모르겠음’이라고 답했으며 ‘부정적인 영향’은 약 14.2%(33명), ‘영향을 미치지 않음’은 약 11.6%(27명)를 차지했다. 아직 성중립화장실을 둘러싼 긍정적 인식이 적다는 의미다. 김세민 학생(서울대)은 성중립화장실 설립이 오히려 불안감을 조성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평등한 화장실 사용과 관련된 논의가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진행됐는지를 먼저 고려해야 해요. 의도가 좋아도 성중립화장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범죄를 무시하지는 못하죠.” 김태우 학생은 성중립화장실이라는 명칭이 사회적으로 혼동을 줄 여지가 있다고 언급했다. “누구나 이용가능하게 만든 안전한 화장실이라면 굳이 성중립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이유가 없죠. 차라리 평등화장실이라는 명칭으로 바꿔 더 정확한 의미전달이 됐으면 좋겠어요.” 사회적 평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는 ‘의도를 악용한 성범죄 우려’, ‘공간의 안전 취약성 문제’ 등이 언급됐다.

  아직은 먼 이야기, ‘설치 보편화’
  성중립화장실의 설치 보편화 역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실정이다. ‘성중립화장실 설치 보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라는 선택 질문에 응답한 총 123명 중 약 43.1%(53명)가 ‘잘 모르겠다’, 약 29.3%(36명)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반대 이유를 심층적으로 질문한 결과 ‘범죄(불법촬영 등), 아웃팅에 대한 우려(중복응답 허용, 약 75%, 27명)’가 가장 높았고 ‘따로 성중립화장실을 설치하는 것이 금전적, 공간적 낭비라고 생각함(실제 이용자가 적을 것 같음)(중복응답 허용, 약 61.1%, 22명)’이 두번째로 높았다. B학생은 성중립화장실이 ‘시기상조’라고 언급했다. “성중립화장실은 평등인식을 심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평등인식을 표현하는 결과물이 돼야 해요. 현재 상황에서는 성중립화장실의 본래 의미가 퇴색될 가능성이 커 보여요.”

  성중립화장실 설치 보편화에 찬성한 응답자 역시 비슷한 이유로 우려를 나타냈다. “아무래도 불법촬영 문제가 가장 걱정되죠. 또 성중립화장실을 출입하는 이들에게 낙인이 찍힐까 걱정되기도 하고요.” 장민 학생은 성중립화장실이 사회적으로 통용되기 위해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우진 학생 역시 독립된 공간이더라도 성중립화장실 설립이 사회적 범죄와 연관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설립은 찬성하지만 ‘화장실 내 불법촬영’이 가장 염려돼요.” 성소수자를 비롯한 이들은 성중립화장실의 부재로 평범하게 누릴 권리를 ‘선택’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설립 자체와 필요성을 향한 올바른 인식이 없다면 성중립화장실은 논의조차 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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