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힘은 무시무시하다. 우리가 조선시대, 아니 그 까마득한 옛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을 알 수 있는 건 모두 기록 덕이다. 수많은 사람이 세월에 묻혀 사라지고 뼈조차 남지 않아도 그들이 쓴 글만큼은 남아 우리 옆을 맴돈다. 과거 누군가 했던 위대한 생각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생명을 빛낸다.

  멋진 글을 쓰고 싶었다. 정의감과 사명감까진 아니더라도 중요한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신문사 문을 두드렸다. 두고두고 봐도 흡족한 글을 쓰고 싶었다. 글로 학교에 큰 물결을 일으켜 보겠다고 다짐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흔한 구절을 떠올렸다.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글에서 뭐가 중요한지조차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고, 취재에서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던 적도 있었다. 기자라는 이름을 달고, 학교와 학생들에게 무지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큰 획을 남기긴커녕 매주 반복되는 자잘한 기사들조차 뿌듯하게 써내지 못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세상에 중요한 파장을 만드는 일을 ‘큰 획을 그었다’고 표현한다. 새로운 화풍으로 예술 사조를 바꾼 예술가나 혁신적 발명품으로 사람들 생활을 송두리째 바꾼 이들에게 붙는 말이다. 기자가 신문에 남긴 기록은 그다지 큰 획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세상을 뒤엎을 만큼 대단한 글은 물론이고 학교를 뒤엎을 만한 글도 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모든 이의 시선을 끌거나 아무도 몰랐던 충격적인 일을 수면 위로 올리지는 못했다.

  다만 작은 획들이 남아 있었다. 학교 구석구석을 찔러보면서 얻은 학생들이 알아두면 좋을 소소한 정보부터, 생활하는 공간에서 느낀 여러 가지 불편들, 그리고 많은 이들의 관심 밖에서 어려움을 겪던 이들이 비춰졌다. 한 학기동안 캠퍼스를 거닐며 만났던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분노와 즐거움이 남아있기도 했다. 한 해 반 동안 쓴 기사에는 수많은 활자와 정보,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작은 기록은 학생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을 해결하거나 관심이 필요한 곳에 약간의 관심을 더 모으는 변화를 가져왔다.

  기자에게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좀 더 깊게 생각하고, 넓게 보고, 더 많이 느끼게 됐다. 평소라면 무심하게 지나갔을 우리 사회의 소수자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게 됐다. 몇번 시도해 보다 포기했을 일들을 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태도도 생겼다. 사람 대 사람으로 타인을 대하는 법도 어렴풋이 배웠다. 반성문을 쓰는 마음으로 적어 놨던 취재수첩에는 실수하고 부딪히며 깨달은 것들이 빼곡히 남았다.

  다음에는 더 잘 해봐야지, 하다가 한 손으로 남은 신문 수를 세는 날이 찾아왔다. 늦은 새벽 신문사 불을 끄고 문을 닫을 날도 이제 곧 끝날 것이다. 지면에 이름을 실은 마흔 호 남짓한 신문을 차근히 다시 들여다본다. 기자의 삶에 큰 획이 된 작은 기록들을 살펴보며, 그리고 활자에서 살아있는 수많은 목소리를 떠올리며. 지면 한 모퉁이에 약간의 미련만을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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