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시, 열어줘서 고맙습니다.’ 여러분도 일상 속 사소함에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지 않나요? 느지막이 일어난 주말 아침이 주는 여유. 때마침 정류장에 진입하는 버스를 볼 때 안도감. 우리가 느끼는 일상 속 고마움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주변의 크고 작은 전시회에서도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죠. 이번주 중대신문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WEB-RETRO>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월드와이드웹(www)’ 출시 30주년을 맞이해 기획된 전시회인데요. 인터넷과 예술기법은 서로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을까요? 네트워크망을 통해 시도됐던 다양한 인터넷 아트를 직접 체험해봅시다. 

 

① 「전자정부」, 양아치, 2002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예술적 시도 또한 보다 넓은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예술가들은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에 발맞춰 다양한 작업과 형식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인터넷 아트’, 즉 인터넷을 기반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감상하는 예술 형식이 조명받았다.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이 일으킨 변화의 양상이 예술 영역에는 어떻게 적용됐을까. <WEB-RETRO> 전시회에서는 역사적인 인터넷 아트와 함께 영상과 설치작품 15점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회는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오는 6월 9일까지 열린다. 예술의 관습이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 흐름과 함께 주요 작품을 직접 체험해보자.

  디지털 사회에서 자성의 목소리를 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대형 모니터에 띄워진 건물과 도로의 모습이 시선을 끈다. 양아치 작가의 「전자정부(eGovernment)①」 작품이다. 해당 작품은 지난 2002년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현재 인터넷 환경에서는 구동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위해 지금의 웹 환경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복원 과정을 거쳤다. 또한 물리적 오브제로 구현돼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요소도 갖추고 있다.

  첫 화면에 ‘전자정부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는 문구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후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세요.’라는 내용과 함께 이름을 입력하는 칸이 나타난다. 이름을 입력하자 성별, 수입과 같은 개인정보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이내 가족들의 직업, 사회보장 번호까지 묻는다. 마지막에는 10달러만 지불하면 정보를 입력한 다른 이들의 개인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주연 코디네이터는 지난 2000년대 초반에 횡행했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뉴스가 작품의 배경이라고 전한다. “당시 전자정부가 개인정보를 모아 외국에 수출할 수도 있다는 뉴스가 있었어요. 양아치 작가는 관련 뉴스를 접한 후 공포를 느껴 작품을 제작했죠.”

  해당 작품은 대형 카드회사와 교육업체 등에서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건도 상기시킨다. 이주연 코디네이터는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작품의 의도라고 설명한다. “인터넷이 더 발전한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개인정보가 무단으로 수집되고 있어요. 해당 작품은 여전히 만연한 개인정보 유출의 심각성을 환기하죠.” 권혜인 학예연구사는 작품이 정보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고 말한다. “양아치 작가는 기술 발전에 따라 미디어가 변화하는 방식을 포착하고 관람객의 비판적 실천을 유도하고 있어요. 정보기술을 악용해 정보 식민지화를 행하는 기업들의 욕망을 짚는 작품이죠.”

 

② 「99개의 방」, 로스트라웁, 2004
③ 「버려진」, 노재운, 2009

 

  주고받을 때 빛나는 작품의 생명

  여러 컴퓨터가 설치돼있어 관람객이 직접 인터넷 아트를 체험해볼 수 있는 전시공간도 있다. 로스트라웁(ROSTLAUB)의 「99개의 방(99 rooms)②」은 관람객이 마우스를 움직이며 게임을 하듯 즐길 수 있다. 화면에는 공장 입구나 외관 등이 담긴 99개의 사진이 등장한다. 관람객이 특정 부분을 클릭하면 작품 속 전등이 켜지기도 하고 다음 방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주연 코디네이터는 해당 작품이 어도비 플래시(Adobe Flash) 소프트웨어로 제작됐다고 말한다. “동베를린 산업 공장의 사진 위에 그림을 그리고 어도비 플래시로 구현할 수 있는 이펙트를 더한 작품이에요. 어도비 플래시를 기반으로 제작된 작품은 제작자와 사용자 간의 소통, 즉 상호작용이 일어난다는 특징이 있죠.”

  대형스크린과 의자가 마련된 공간도 존재한다. 이곳에서 관람객은 영화를 감상하듯 작품을 체험할 수 있다. 노재운 작가의 「버려진(GOD4SAKEN)③」 작품 첫 화면에서는 다양한 색상의 사각형 49개가 보인다. 사각형을 선택하면 영화 제목과 함께 짧은 영화 클립이 상영된다. 주황색 사각형을 선택하면 ‘KISS THE BLOOD’라는 문구와 함께 방 안에서 괴로워하는 한 여성의 움직임이 재생된다. 보라색 사각형을 선택하면 ‘BACKFIRE’라는 문구와 함께 한 여성이 숨겨진 무언가를 긴박하게 찾는 영상이 등장한다. 권혜인 학예연구사는 영상 클립에서 인간의 정신과 심리상태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각각의 영상 클립들은 클래식 누아르 영화에서 발췌된 장면들이에요. 인간의 불안과 분열, 분노, 환상, 꿈, 공포 등 다양한 심리를 반영하고 있죠.” 또한 그는 해당 작품이 기존 영상 작업의 전형적인 수용방식을 지양하는 웹 기반 프로젝트라고 덧붙였다. “과거의 영화는 다수의 관객이 하나의 스크린을 대면한다는 기본 전제를 가지고 있었죠. 그러나 핸드폰과 노트북 같은 개인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지금은 영화가 개인적인 경험으로 변하고 있죠. 작가는 관람객이 영상을 선택하는 구성을 통해 영상을 수용하는 기존의 전형적인 방식을 탈피하고 있어요.”

④ 「아트솔라리스 1980-2019」, 뮌, 2019

 

  마침표 없이 진행되는 예술

  커다란 벽면에 작은 흰 점들이 빛난다. 곧이어 이 점들 사이로 선이 그어지고 점들의 크기도 점점 커진다. 이후 점과 선이 복잡하게 연결되면서 촘촘한 결합체가 나타난다. 독일 유학 경험이 있는 작가들로 구성된 그룹 ‘뮌(Mioon)’의 「아트 솔라리스 1980-2019(Artsolaris 1980-2019)④」라는 영상 작품이다. 뮌은 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군중과 개인에 관심을 가졌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와 역사, 심리적 요소를 탐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주연 코디네이터는 뮌이 데이터마이닝(data mining) 기술을 이용해 국내 예술계 인맥 구조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뮌은 국내 미술계에 보이지 않는 권력과 폐쇄성을 밝히려고 시도했어요. 하얀색 점은 미술 작가나 큐레이터, 감독을 의미하죠. 이들이 2번 이상 같은 전시를 한 경력이 있으면 하나의 선이 만들어지고 경력이 많아질수록 선은 짧아져요.”

  데이터마이닝이란 인공지능을 사용해 데이터를 자동으로 분류하고 도움이 되는 정보를 추출해 의사결정에 활용하는 기술을 말한다. 권혜인 학예연구사는 해당 작품이 알고리즘을 통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개선하며 계속해서 업데이트된다고 덧붙였다. “데이터 패턴을 파악해 정보를 추가하며 지속적인(on-going) 작업이 가능한 인터넷 특성을 활용한 작품이에요.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구조로 현재까지도 업데이트되고 있죠.”

  인터넷은 어느새 삶의 깊숙한 영역까지 스며들었다. 더불어 예술가에게 신선한 자료와 영감을 제공하며 예술의 지평을 무궁무진하게 확장하고 있다. 전시는 지난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장식했던 인터넷 아트를 되돌아봄으로써 현재 포스트인터넷 아트를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전시를 통해 인터넷 기반의 예술 활동이 기존 미술의 영역을 어떻게 확장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독일의 철학자이자 예술비평가 보리스 그로이스는 예술작품이 ‘장소’라는 요소를 통해 비로소 예술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주장을 반박하듯 예술가가 작품을 인터넷 웹사이트에 게시하고 관람객이 예술을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예술이 등장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대표적으로 ‘장영혜중공업(Y0UNG-HAE CHANG HEAVY INDUSTRIES)’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다양한 웹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장영혜중공업은 한국 출신 장영혜 작가와 미국 출신 막 보주(Marc Voge)작가로 이뤄진 그룹이다.

  장영혜중공업의 작품은 웹사이트(www.yhchang.com)를 통해 언제든지 감상할 수 있다. 그 중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정치인들 -- 무엇을 감추나?⑤」 작품은 정치인들이 백발을 검게 물들이는 행위를 언급하며 그들의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면모를 풍자한다. 「불행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 작품에서는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서로를 향한 비난과 싸움이 전개된다. 두 작품 모두 빠른 속도로 등장하는 텍스트와 음악을 결합한 웹아트다. 배경을 가득 채우는 텍스트와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직설적으로 짚는 점이 돋보인다. 장영혜중공업은 지난 2000년 에르메스코리아미술상의 초대수상자로 선정된 당시에 제시했던 웹사이트의 문자예술 즉 웹아트의 형식을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다.

  이원곤 교수(단국대 미술학부)는 인터넷 기반 예술이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예술의 형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혁신적인 시도를 하는 전위 예술가들이 인터넷을 활용한 새로운 작업 방식을 고찰하고 실천한다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예술로 발전할 수 있어요. 이러한 작품들을 기존 예술의 영역에 포함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상황까지 다다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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