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금하는 ‘목표’에 그친 법과 조례
보호 주체 간 사회적 합의가 먼저

청소년 성소수자 배제하지 않고 
다양성 존중하는 성교육 이뤄져야

지난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성적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의 약 92%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혐오 표현을 들은 청소년 성소수자 또한 약 92%에 달해 심각한 수준의 차별 피해가 드러나기도 했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법」과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등 다양한 보호 체계가 성적 지향성 및 성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하고 있지만 청소년 성소수자는 여전히 차별의 그림자에 갇혀 있다. 청소년 성소수자를 둘러싼 차별 피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 차원에서 마련돼야 할 대책을 전문가와 함께 살펴봤다.  

  시행의 출발점은 공론장에

  국내법은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여러 조항을 명시하고 있다.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며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을 금지한다’는 원칙을 천명한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역시 제2조에서 성적 지향성을 이유로 한 차별 행위를 개인의 평등권 침해로 보며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법이 규정하는 인권 보호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직접적인 사회안전망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성적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다른 학생에게 당한 괴롭힘을 교사에게 알리지 못한 청소년 성소수자는 약 86.5%에 달한다. 법에서 명시하는 권리 보장이 현실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서울특별시의회 권수정 의원은 보호 기능을 하는 조례나 법이 실질적으로 실현되려면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 보호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례는 공동체의 목표를 선언하는 기능을 해요. 하지만 해당 조례가 실제로 이행되는 건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바에 따라 달라지죠.” 차해영 전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역시 법의 시행 주체가 모여 청소년 성소수자를 그 자체로 인정하는 ‘통합적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질적으로 법이나 조례를 시행하는 교육청, 행정 부처 등 여러 주체가 모일 ‘공론장’이 형성돼야 해요. 공론장에서 논의된 내용 중 직접 시행할 부분을 발췌해 사업을 진행해야 하죠.” 

  권수정 의원은 청소년 성소수자가 겪는 피해를 해결하려면 구체적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교 안팎에서 청소년 성소수자가 겪는 피해 환경을 개선해야 하지만 현재 청소년 성소수자의 피해 경험에 관한 실태조사는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시행된 청소년 성소수자 차별 실태조사 횟수와 자료가 매우 적다는 의미다. 

  차해영 전 위원장 역시 청소년 성소수자와 관련한 실태 조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보호적 차원의 연구가 활성화되기 위해 우선 청소년 성소수자가 어떠한 차별 및 피해 경험을 겪었는지가 파악돼야 하죠.” 차해영 전 위원장은 청소년 성소수자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실태조사 시행도 이뤄질 수 있다며 사회적 논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현재로서는 청소년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법이 스스로 성적 지향성 혹은 성 정체성을 고백하는 방법뿐이에요.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구분 짓지 않고 ‘제3의 성’이 존재한다고 인지돼야 실태조사도 깊게 이뤄질 수 있겠죠.”

  띵동만으론 부족한 상담체계  

  지난 2006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구 한국청소년개발원)이 실시한 ‘청소년 성소수자의 생활실태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 전체 응답자 중 약 17.4%만이 ‘성 정체성 관련 상담을 이용해봤다’고 응답했다. 차해영 전 위원장은 상담 원칙을 정해 현재 상담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상담 진행 과정에서 비밀이 보장되지 않아 본인이 원치 않는 상담 내용이 유출되곤 해요. 가족에게 상담 내용이 알려지는 게 하나의 예라고 볼 수 있죠.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기본적인 상담 원칙이 있어야 해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역시 지난 2017년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한 8가지 정책 제안에 인권 보호 지침의 필요성을 명시한 바 있다. ‘띵동’이 제시한 정책 제안에는 ‘교사 및 청소년 복지기관 종사자가 청소년 성소수자를 만났을 때 활용할 수 있는 인권 보호 지침을 제작하고 배포하라’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차해영 전 위원장은 상담 대상이 지나치게 명시적이어선 안된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청소년 성소수자 역시 똑같이 대우받아야 해요. 폭력 피해 상담이라는 큰 범주에 청소년 성소수자가 겪는 피해가 포함돼야 청소년 성소수자가 부담 없이 상담에 임할 수 있겠죠.”
  
  물론 근본적으로 청소년 성소수자의 피해 해결을 지원하기 위해 전문적인 담당시설이 늘어야 한다. 권수정 의원은 국가가 운영하는 위기지원센터를 확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사업을 진행하는 곳은 민간 차원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띵동’이 유일해요. 청소년 성소수자 차별 피해에 있어 국가 차원의 개입이 부족한 현실이죠. 국가적 차원에서 교육청 부설 상담센터와 학생인권옹호관 등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청소년 성소수자의 아픔을 구제할 수 있어야 해요.”

  존중하는 교육을 보장받을 권리 

  상담사를 대상으로 올바른 상담을 진행하기 위한 인식 교육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권수정 의원은 교원에 대한 내실 있는 인권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차해영 전 위원장 역시 피상담자를 충분히 배려하는 상담사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상담사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상담할 때 내담자가 어려서 성적 판단이 미숙하다고 단정 짓지 말아야 해요. 성적 지향성과 성 정체성을 가진 한 명의 개인으로 인식해야 하죠. 청소년 성소수자 스스로가 선택한 삶을 보장해주는 상담이 이뤄져야 해요.”   

  성교육 체계 개선도 청소년 성소수자가 겪는 문제 해결을 위한 또 하나의 방안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성적 소수자 관련 교육경험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 교육의 내용이 존중을 담고 있지 않다는 응답은 절반에 달했다. 권수정 의원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 커리큘럼이 성적 지향성 및 성 정체성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성교육 커리큘럼은 성소수자에 관한 인권 친화적 정보를 포괄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해요.” 

  성교육 체계 개선과 관련해 청소년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국가 수준의 학교성교육표준안」을 폐기하자는 캠페인도 있다. 성소수자 차별 반대 단체 ‘무지개행동’은 인권과 성평등의 관점에서 성교육이 시행돼야 한다는 서명 캠페인을 펼친 바 있다. 해당 캠페인 역시 성교육 커리큘럼의 개선이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청소년 성소수자가 겪는 고충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건 청소년 성소수자 보호에 관한 사회적 합의다. 주체 간 합당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국가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이 보다 존중받는 사회가 머지않아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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