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순간’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투우사가 소의 심장에 창을 꽂는 결정적인 순간을 의미하죠. 열성을 다해 싸우던 소와 투우사의 눈빛이 강렬히 교차하는 진실의 순간, 삶과 죽음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한 사람이 텍스트를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문제 상황이 드러난 기사를 읽는 독자는 텍스트로 대변되는 새로운 문제와 대면하게 되죠. 투우에서 생과 사가 만나듯 독자와 문제 사이 ‘진실의 순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독자와 기사 사이에서 실현되는 진실의 순간은 한 사람의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인지하는 삶의 영역을 넓히고, 그동안 몰랐던 세계와 연관될 수 있게 합니다. 진실의 순간이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작용되면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고하고 활동하게 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렇게 효과적인 전달이 이뤄지려면 문제 상황을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합니다. 상황을 표현할 명확한 언어를 갖지 못하면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죠. 언어는 바로 체험과 고민에서 나옵니다. 하나의 추상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 상황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설명해낼 때 비로소 독자에게 진정한 문제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문제를 인식할 수 있다는 말은 곧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과 상통합니다.

  얼마 전 기자는 서울캠 내 장애학생 이동현황에 대한 기사를 썼습니다. 장애학생들이 캠퍼스를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는지 점검해보는 기사였죠. 기자는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불편하겠지?” 그러나 불편하다는 말로는 당사자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조금이나마 당사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보기 위해 휠체어로 직접 캠퍼스를 이동해보기도 하고, 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

  그제야 불편하다는 단순한 형용사보다는 코너의 보도블록이 가라앉아 있다든가, 계단에 시각장애인용 안내 표시가 마련돼 있지 않다든가 하는 문장을 쓸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표현이야 말로 현실을 드러낼 수 있는 설명이었죠. 따라서 보도블록 점검이 필요하다, 시각장애인용 표시가 설치되면 좋겠다 등 학생들이 실제로 겪는 문제를 개선할 방안도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1년이 넘는 기자 생활 동안 학내의 다양한 사안을 어떻게 보도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매주 기사를 쓰면서 두루뭉술한 형용사나 부사로는 정확한 상황을 전달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읽는 독자에 따라 문제 상황의 경중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명확한 언어 구사가 필요한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이제야 각자의 사정이 엮인 복잡한 상황을 기사로 풀어내는 방법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학내에는 언어화되지 못한 상황들이 많습니다. 때문에 기자는 오늘도 생각합니다. 상황의 정확한 언어화야말로 좀 더 나은 진실의 순간을 만들 수 있는 기사가 아닐까요?

박수정 대학보도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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