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시, 열어줘서 고맙습니다.’ 여러분도 일상 속 사소함에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지 않나요? 느지막이 일어난 주말 아침이 주는 여유. 때마침 정류장에 진입하는 버스를 볼 때 안도감. 우리가 느끼는 일상 속 고마움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주변의 크고 작은 전시회에서도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죠. 이번주 중대신문은 <대안적 언어-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사회운동가로서 예술의 역할을 고민한 아스거 욘의 실험적인 작품세계가 고스란히 드러난 전시회였는데요. 기존 규범을 타파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덴마크 거장, 아스거 욘의 예술 철학을 함께 살펴볼까요?

①「세속의 마리아」, 1960, 캔버스에 유채, 81.5 x 51 cm, 욘 미술관 소장
①「세속의 마리아」, 1960, 캔버스에 유채, 81.5 x 51 cm, 욘 미술관 소장

 

흔히 ‘서양미술’ 하면 미국과 서유럽 국가를 떠올리곤 한다. 여기 서양미술의 중심에 반문을 던진 예술가가 있다. 20세기 덴마크를 대표하는 예술가 아스거 욘(Asger Jorn, 1914-1973)이다. <대안적 언어-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 전시회에서는 서유럽이 중심이 됐던 기존의 흐름으로부터 탈피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예술을 만날 수 있다. 해당 전시회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는 9월 8일까지 진행된다. 이 전시는 아스거 욘 작가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으로 덴마크 실케보르그 욘 미술관과 협력해 회화, 조각, 사진 등 90여 점의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고전 예술에 도전장을 내민 실험적인 작품에 집중하며 욘이 사회구조와 통념에 던진 메시지에 귀 기울여보자.

②「남성적 저항」, 1953, 캔버스에 유채, 99 x 78 cm, 욘 미술관 소장
②「남성적 저항」, 1953, 캔버스에 유채, 99 x 78 cm, 욘 미술관 소장

  예술은 실험도구가 되고

  회화작품 속 강렬한 색상과 불완전한 형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난 1950년에 제작된 「위험한 입맞춤(Dangerous Kissing)」과 「남성적 저항(Resistance Masculine)(그림 ②)」 작품이다. 두 작품에 등장하는 대상은 얼핏 사람으로 보이지만 일그러진 형태에서 기괴함이 전해진다. 황호경 국립현대미술관 에듀케이터는 작품의 특징으로 거친 붓질과 강렬한 색상을 언급한다. “욘의 회화 작품에는 원시적인 이미지와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기법이 두드러지죠. 세계대전 이후 유럽 전반에 일어난 예술사적 변화도 그의 작품세계에 반영됐다고 볼 수 있어요.”

  이외에도 직물, 시멘트, 유리 등 실험적인 재료로 제작된 작품들이 보인다. 「쥬빌라시옹 라르모예나쥬즈(Jubilation la-rmoyennageuse)」 작품에서 붓질이 되지 않은 부분에는 반사된 관람객의 모습이 보인다. 이는 전통적인 예술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플렉시글라스(plexlglass)라는 재료로 표현됐다. 황호경 에듀케이터는 낯설고 실험적인 재료를 활용한 점이 돋보인다고 말한다. “작품에 관람객의 모습이 계속 비치면서 고정되지 않고 흔들리는 특징이 드러나요. 욘의 작업에서는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거스르는 실험적인 방식을 자주 발견할 수 있죠.”

③「무제(미완의 형태 파괴)」, 1962, 캔버스에 유채, 122 x 97 cm, 욘 미술관 소장
③「무제(미완의 형태 파괴)」, 1962, 캔버스에 유채, 122 x 97 cm, 욘 미술관 소장

  과거에서 끌어올린 현재의 예술

  기존 작품 위에 선명한 색상과 거친 붓질로 낙서를 한 듯 눈에 띄는 작품들이 보인다. 욘은 이처럼 다른 사람의 작품을 사들여 그 위에 자신만의 표현을 더하는 작업 방식을 ‘수정’이라고 불렀다. 「세속의 마리아(Secular Virgin)(그림 ①)」 작품에는 아기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 주변에 노랑과 주황빛 붓질이 보인다. 심지어 성모마리아의 얼굴에는 여러 색깔이 섞인 물감이 칠해져 있다. 「무제(미완의 형태 파괴)(그림 ③)」 작품에는 익숙한 방식으로 그려진 여인의 초상화 위에 어울리지 않는 연보라색 붓질이 눈길을 끈다. 여인 주변에 그려진 흰색 선에서 새의 모양이 떠오른다.

  ‘수집가들이여, 미술관들이여, 현대적이 되어라. 낡은 회화가 있다고 해서 낙담하지 마라. 기억은 간직하되 시대에 맞도록 전환하라. 몇 번의 붓질로 현대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어찌 옛것을 버리겠는가?’ 해당 문장은 욘이 자신의 수정작업을 설명한 글의 일부다. 낡은 회화로부터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욘의 철학이 드러난다.

  서쪽에서 북쪽으로 앵글을 돌리다

  흰색 배경의 아늑한 전시공간에 사진 필름들이 전시돼있다. 욘이 스칸디나비아 비교 반달리즘 연구소(the Scandinavian Institute for Comparative Vandalism, SICV)에서 진행한 『북유럽 민속 미술 1만 년』 출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촬영된 사진들이다. 욘은 지난 1961년 SICV를 설립해 자신의 뿌리인 북유럽 문화와 유물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황호경 에듀케이터는 욘이 북유럽 전통 연구가 핵심이었던 SICV 활동을 통해 ‘대안적 예술’을 드러냈다고 전한다. “서유럽의 예술이 서양미술 중심이라고 여겨진 반면 북유럽 예술은 변방 예술 취급을 받았죠. 욘은 북유럽 예술이 지닌 특성을 강조하며 기존 예술 체계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욘은 서유럽과 북유럽 예술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봤을까. 황호경 에듀케이터는 각각 ‘문자’와 ‘이미지’로 그 차이를 설명한다. “욘은 서유럽의 예술을 기독교 성경 구절을 기반으로 한 문자 중심의 엘리트 예술이라고 정의했어요. 반면 자신이 속한 북유럽의 예술은 이교도적이고 이미지 중심적이라고 봤죠.” 또한 이미지 중심의 예술이 보다 다채로운 해석과 상상을 포용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문자는 특정 대상을 간단한 문장으로 표현하며 옳고 그름을 구분할 뿐이에요. 반면 이미지는 이런 단순한 구분을 넘어 다양한 해석과 상상을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④「삼면축구」, 국립현대미술관 설치 전경
④「삼면축구」, 국립현대미술관 설치 전경

  이분화된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

  탁 트인 공간에 계단으로 둘러싸인 「삼면축구(Three Sided Football)(그림 ④)」가 설치돼있다. 하얀색 펜스와 초록색 인공 잔디는 일반 축구장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육각형 형태의 축구장 모양과 골대가 3개라는 점은 색다르게 느껴진다. 세 팀이 축구 경기를 하는 방식은 두 팀이 축구 경기를 하는 기존 방식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황호경 에듀케이터는 삼면 축구에서는 방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일반적인 축구 경기에서는 공격적으로 골을 많이 넣어야 승리하죠. 그러나 삼면 축구는 가장 방어를 잘하는 팀이 승리하는 구조에요. 약한 팀들도 연합작전을 통해 서로 간 대립하는 분위기를 상쇄할 수 있으므로 한 팀만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어렵죠.”

  「삼면축구」는 지난 1960년으로 미국과 소련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던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욘은 냉전 시대 힘의 균형을 표현하고자 축구장 형태의 관객 참여형 설치작업을 고안했다. 황호경 에듀케이터는 충돌하는 정세 속에서 예술이 ‘제3체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욘의 생각을 전한다. “정치 외에도 예술과 학문 등 다양한 세계에 그의 주장을 대입할 수 있어요. 욘은 제3의 존재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분위기를 완화하며 새로운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역설했기 때문이죠.” 또한 그는 욘이 북유럽의 예술을 ‘대안적 언어’로 제시했음을 강조한다. “우리는 흔히 예술을 주류와 비주류로 구분하죠. 욘은 가치체계가 이원화된 상황에서 북유럽 예술이 대안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이에게 아스거 욘은 20세기 추상표현주의의 거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 예술을 통해 사회와 일상의 직접적인 변혁을 추구했다. 다양한 재료와 실험적인 방식으로 전해진 그의 작품에는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그의 목소리가 생생히 담겨있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아방가르드 운동이 진행된 변혁기를 몸소 살아낸 욘은 사회운동가로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립했다. 주어진 상황 속 당신은 어떤 문제를 짚고 대안을 외치고 싶은가?

 

 

한반도에 불어온 냉전의 영향은 아직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분단으로 냉전과 신냉전을 몸소 겪고 있는 남북한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가 있다. 팝아트 작품을 그리는 탈북 작가 ‘선무’다. 그는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안전을 우려해 얼굴을 공개하지 않으며 ‘선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선이 없다(線無)’는 예명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있다. 어떤 경계도 없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과 휴전선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이다.

  선무 작가는 지난 2002년 북한을 이탈해 우리나라로 입국했다. 북한에서의 경험과 새롭게 마주한 남한의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뉴욕타임스, BBC 방송 등 해외 유수 언론에도 소개되며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세우는 중이다. 선무 작가의 작품 세계를 바탕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도 있다. 미국 출신 아담 셰베리(Adam Sjoberg) 감독의 작품 ‘나는 선무다(I Am Sun Mu)’이다. 감독은 북한 사람들에게도 선무의 작품을 알리고자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했다. 해당 작품은 2015년 제7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 개막작에 선정되기도 했다.

  「김정일(그림 ⑤)」 작품에는 유명 스포츠 브랜드 옷을 입고 있는 북한 최고 권력자의 모습이 풍자적으로 제시됐다. 「수학여행(그림 ⑥)」 작품에는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 아래 북한 소녀들이 정답게 걸어가는 모습이 표현됐다. 소녀들은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신발을 신고 있고 손에 콜라병을 쥐고 있다. 그는 북한의 독재를 비판하고 남북 간의 경계를 허물자는 메시지를 화폭에 그려내고 있다. 분단국가의 현실을 반영한 선무 작가의 소통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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