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은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다. 영화 속의 배트맨은 범죄로 가득한 도시에 희망처럼 홀연히 나타나서 사람들을 구하고 사라지는 정의의 사도로 기억된다. 그런데 어른이 돼서 본 배트맨은 새로운 느낌이다.

  흔히 선한 사람은 가식이 없고 잘 웃고 밝고 탐욕적이지 않게 그려지고, 악한 사람은 가면으로 자신의 모습을 가리고 가식적이고 어둡고, 웃음기 없고 탐욕적으로 그려진다. 아이러니하게 영화 속의 배트맨의 이미지는 악당의 비쥬얼이고 오히려 조커가 선한 모습의 비쥬얼을 가진다.

  영화 속의 배트맨은 가면을 쓰고 있다. 분위기도 음산한 편이다. 게다가 그의 상징인 박쥐는 이중성과 모순의 상징이다. 박쥐는 쥐이면서 잘 걷지 못할뿐더러 날아다니는 새이면서 잘 날지도 못한다. 그리고 밤과 낮이 바뀌어 주로 밤에 활동하고, 낮에는 컴컴한 동굴 속에 거꾸로 매달려 잠을 자는 생활을 한다. 그런 박쥐가 바로 배트맨의 상징인 것이다.

  반면 너무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고 아버지로부터 입까지 찢어져서 억지로 웃는 표정을 가지게 된 하얀 분칠을 한 조커는 하얗고 웃는 선한 사람의 이미지로 투영된다. 

  배트맨은 낮에는 억만장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가 사건이 터지면 박쥐라는 가면 속에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첨단 무기로 무장한 스포츠카로 도로를 달리며 사람들을 구출하러 다닌다.

  부가티처럼 생긴 배트맨의 차가 조커를 잡기 위해서 도시를 시속 200키로 이상의 속도로 빠르게 달리면 길가에 세워놓은 일반인의 차의 사이드 미러들은 도미노처럼 하나씩 박살이 난다. 배트맨은 당연히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부서지는 다른 이들의 사이드 미러 정도는 안중에도 없다.

  흉악한 범죄자를 쫓는다는 큰 명분에 비하면 길가에 세워둔 차들의 사이드 미러가 부서지는 정도는 그에게 정말 하찮은 일일 것이다. 설사 그 차들을 모두 변상한다 하더라도 억만장자인 배트맨의 입장에서는 정말 작은 돈일 것이다.

  배트맨은 법과 정의를 수호한다고 하지만 막상 스스로 본인은 법을 지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법 위에 있다. 배트맨은 사람만 죽이지 않을 뿐 그가 정의를 실현하는 방식은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다.

  배트맨은 범죄와 부패로 물든 고담시티의 유일한 희망이자 구세주 같은 존재이기에 이 정도는 충분히 용인되는 행동이라고 스스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데없이 한밤중에 자신의 하나뿐인 소중한 차가 망가진 사람들은 매일 밤마다 벌어지는 배트맨의 난리법석과 한바탕 소동을 이상한 마스크를 쓴 미치광이의 영웅놀이로 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배트맨이 무슨 자격으로 남의 차를 부수고 다니냐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만일 고담시티의 주민이 되어 매일 배트맨의 그런 모습을 보게 된다면 배트맨은 선일까? 악일까? 요즈음 우리 주위에 배트맨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전병준 교수

경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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