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의자가 하나 있다.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곳에 홀로 놓여있던 의자다. 어쩌다 보게 된 이들이라도 선뜻 의자에 손을 뻗지 못했다. 그저 갸웃하고는 각자의 하루를 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기 바빴다.

  이번학기 기획부의 ‘생각의자’는 그렇게 탄생했다. 평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스쳐 지나쳤을지 모르는 의자의 주인을 떠올리기 위해. 휘황한 언행을 쓰지 않더라도 사회에서 ‘소외당한’ 구성원을 잠시 생각할 수 있게 의자에 손을 뻗었다. 대단한 일이라기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볼 수 있도록 그늘에 있던 의자를 빛이 있는 곳으로 옮길 뿐이었다.

  주목받지 못했던 의자를 옮기는 일에는 경중을 매기지 못할 무게가 뒤따랐다. 생각의자를 옮기는 첫 발자국을 떼기 위해 소비 시장에서 소외된 어르신들과 종일 함께했다. 그 후 걸음을 옮기며 2차 가해로 인한 피해자를 만났고 난임을 겪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장애 학생과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공혈견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다양한 사회 구성원을 만나는 모든 경험이 초행길이기만 한 기자는 몇 번 고배를 들기도 했다.

  초면인 기자를 경계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원래 그들이 앉아있었던 ‘생각의자’를 보여주며 설득을 거듭하고 나면 오롯한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신들이 겪어야만 했던 소외당한 경험을 담담하게 말할 땐 기자도 따라 담담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들이 품어온 삶의 무게를 전부 지면에 담아낸다는 건 경솔한 일이었고 실제로도 담지 못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렇기에 기자의 펜은 더 신중했다. 사견을 싣지 않되 소외당한 이들의 일상을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고심한 기사 한편이 완성되면 생각의자는 처음 있던 장소보다 더 밝은 곳으로의 이동을 마쳤다. 이때만큼은 의자를 옮기느라 무거웠던 어깨도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이후 옮겨진 생각의자가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는다고 느낄 때, 원래 의자의 주인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전해줄 때 비로소 한 숨 돌릴 수 있다.

  이전에는 의자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이들이 생각의자에 손을 뻗는다. 잠깐 의자에 앉아보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관심을 갖고 의자를 바라보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세상이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사회 속 소외된 이들의 의자에 앉아 생각하는 일 외에도 그들을 위한 생각을 하는 의로운 사람, 생각하는 의자(義者)가 늘어난다는 의미다.

  첫번째 생각의자에 앉았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기자의 소망은 한결같다. 우리 사회 한편에 쓸쓸히 놓인 의자가 더는 방치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를 위해 중대신문의 지면은 사회를 정면으로 향하며 소외당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을 것이다. 중대신문을 통해 독자와 기자 모두가 생각의자에 앉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 박차고 일어나는 의자(義者)가 되길 소상히 바라본다.

노유림 기획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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