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페미니즘 운동이 뜨겁습니다. 반동의 역풍도 만만치 않아 성평등에 대한 요구 자체를 ‘남녀갈등’으로 오해하거나 여성을 조롱하고 낙인찍기도 하죠. 이 시점에서 2015년 10월 영국에서 개봉한 영화 <서프러제트>는 많은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동등한 인간으로서 여성의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싸운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소수자의 권리는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며 억압과 공격 또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님을 환기합니다.

  영화는 20세기 초반 영국 세탁공장 노동자 모드 와츠의 일상으로 시작합니다. 한 남자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로서 자신의 삶을 의심해본 적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이죠. 투표권을 주장하며 거리에서 투쟁하는 여성들을 목격하고도 그들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기 위해 용기 낸 여성들을 만나고,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에게 종속되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인권을 유린당하는 상황에 분노하면서 점차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에 동참하게 됩니다.

  실제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은 19세기 후반 이후 본격화됐는데요. 참정권 운동을 하는 여성들은 ‘서프러제트’라 불렸습니다.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은 대표적 실존 인물인 에멀린 팽트허스트를 연기하지요. 이들은 여성참정권 법안이 번번이 의회에서 부결되고 극심한 탄압과 폭력의 피해를 입자 ‘말이 아닌 행동’이라는 슬로건으로 전투적 운동을 전개합니다. 우체통을 폭파해 런던 시내의 전기 공급을 차단하기도 하고 번화가 상점의 유리창을 깨거나 버킹검 궁전의 난간에 몸을 묶어 저항하거나 여성 참정권을 거부하는 국회의원의 별장에 폭발물을 설치하기도 하죠.

  가장 큰 전환점은 1913년, 영국 국왕 조지 5세가 참관하는 더비 경마대회에서 발생합니다. 에밀리 데이비슨이 수많은 관중을 뚫고 울타리 밑으로 들어와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국왕의 말에 몸을 던진 것입니다. 그는 여성참정권 운동 단체의 깃발을 옷 속에 품고 ‘여성에게 투표권을’이라 외치며 트랙에 뛰어 들었습니다. 충격으로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사고 발생 나흘 후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장례식은 여성참정권 운동의 전국 집회현장이 되었고 이를 도화선으로 여성들의 격렬한 투쟁은 지속됩니다.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운동의 결과, 영국 여성들은 1918년 30세 이상 여성 참정권을(남성은 21세 이상), 1928년 마침내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획득합니다. 남성의 소유물로서 여성이라는 관념, 남편과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여성의 역할이라는 뿌리 깊은 사고에 도전하며 자유과 정의를 추구하는 일에 남녀가 다를 바 없다는 보편적 명제를 확인시킨 이들의 운동은 단순한 투표권 운동이 아닌 사회전반을 흔든 혁명이었습니다. 페미니즘의 의미를 넘어 여성들의 역사를 일깨우는 하나의 창을 제공하는 <서프러제트>! ‘교양인’을 지향하는 모든 분에게 강력히 추천합니다.

이나영 교수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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