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마다 상이한 진료비

반려동물 보호자 불만 잇따라

 

표준진료체계 마련해야

동물의료문제 해결한다

보건소는 국가 공공재원을 지원받아 운영되는 의료시설로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질병 예방 및 관리 업무를 수행한다. 보건소 업무의 가장 큰 특징은 기본적인 예방접종부터 소외 계층에 대한 의료 지원까지 보편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한편 동물을 위한 보건소는 없다. 이에 일부 지역에 동물의료 사각지대가 형성되거나 애초에 수요가 적은 특수동물은 기본적인 진료를 받기도 힘든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동물 보건소 설립을 문제 해결 방법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장 동물 보건소를 운영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반려동물 의료체계에 대한 동물병원과 반려동물 보호자, 국가 간 합의가 전제돼야하기 때문이다. 동물의료 지원제도를 모든 시민이 부담해야 하는 공공의 책임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동물 보건소가 자리잡을 수 없는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 동물 의료 체계의 현주소와 함께 동물 의료 부문에 공공적 지원이 이뤄지기 어려운 이유를 전문가와 짚어봤다.

  물음표 가득한 진료비 청구서

  지난달 9일 한국소비자연맹은 반려동물 보호자의 약 92%가 반려동물 진료비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반려동물 가구의 주요 불만에는 진료비 과다청구, 과잉진료, 사전정보 미제공 등이 있다. 이는 동물의료에 있어 진료항목과 진료비에 관한 정보나 별도 안내를 제공하는 공식기관이 없고 몇몇 병원 측에서도 사전에 반려동물 진료 정보를 고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수가제는 진료항목과 그에 대한 진료비를 표준화하는 정책이다. 과거 우리나라도 표준수가제가 적용된 적이 있었으나 지난 1999년 동물의료 서비스의 질 향상과 자율경쟁을 통한 소비자 이권 확충을 위해 폐지됐다. 수의사신문 데일리벳 이학범 대표는 병원마다 진료비가 상이하다는 주장에 오히려 수가제를 적용하지 않아 동물의료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보호자가 사전에 충분히 병원과 진료비를 비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필요는 있어요.” 반려동물 진료비가 병원별로 상이한 만큼 병원 측에서 반려동물 보호자에게 진료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당장 동물의료에 수가제를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학범 대표는 반려동물 보호자가 갖는 동물 진료비 인식에 대한 동물병원의 입장을 설명했다. “동물에 대한 의료는 공공의료로 분류되지 않고 있어요. 국민건강보험과 같은 별도의 국가 지원이 없기 때문에 진료비가 모두 비급여 항목으로 처리되죠. 사람의 의료 환경과 비교했을 때 본인 부담률이 높을 수밖에 없어요.” 또 그는 현재 사람의 사치성 의료에 부과하는 부가가치세가 동물의료에도 붙는다고 덧붙였다. 일부 수의사는 국가가 동물의료를 사치행위로 인식하면서 별다른 지원 없이 동물병원에 공공의 책임만을 부여하는 건 지나친 요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동물의료 사각지대, 반려동물 수난시대

  현재 우리나라는 지역별 동물병원 설치 수 차이가 크다. 지난 10일 기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등 수도권에 등록된 동물병원은 총 2260곳으로 각각 1013곳, 1247곳이다. 반면 수도권을 제외한 7개의 도와 제주특별자치도에 등록된 동물병원은 총 1710곳으로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에 등록된 동물병원 수와 비교하면 현저히 적은 수준이다. 이는 수도권 지역의 반려동물 진료 수요가 높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집중된 구조다. 이에 동물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동물 보건소 운영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보건소는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설립된 지역의 공중보건 향상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으로 민간 의료와 달리 국가에서 운영하는 의료기관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허주형 회장은 동물 보건소와 같은 공공의료 체계가 구축되기 위해 충족돼야 할 조건을 설명했다. “동물보건소에서 고도의 의료기술을 제공하려면 수의사에게 지금의 공무원보다 약 2배 혹은 3배 많은 급여를 줘야 해요. 비용의 문제가 발생하죠. 그래서 동물보호 정책이 완비된 해외 선진국의 경우에는 정부에서 보호소를 만들고 이를 민간차원에서 운영하죠.” 동물 보건소 설립에 들어갈 막대한 비용 문제가 해결돼야 동물 보건소가 운영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세금과 관련된 논의 역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기초적인 예방접종 등에 국가의 공적 자금이 투여되면 가능해요. 다만 형평성을 고려했을 때 동물을 키우지 않는 시민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죠.”  

  공공성 인정받지 못한 동물의료

  반려동물 의료체계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잇따르고 있지만 아직 정부 차원의 지원은 미미한 실정이다. 누토피아 휴니멀 협동조합 유예진 과장은 그나마 운영되고 있는 반려동물 전용 보험 역시 가입자 수가 적은 편이라고 짚었다. “지난 2017년 보험개발원 보고서에 따르면 반려동물 보험 가입률은 1%가 채 되지 않아요. 연령이나 병력에 제한이 있는 등 가입 조건이 까다롭고 중성화 수술이나 스케일링처럼 보호자가 원하는 진료에 대해서는 보장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심지어 반려동물 보험 제도를 운영하는 책임 주체 역시 개인 사업자에 지나지 않는다. 동물의료체계에 대한 불만이 민간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에 반려동물 의료 서비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동물의료를 공공의료로 전환하거나 국민건강보험과 같은 성격의 동물건강보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동물의료에 공적 재원을 투입하기는 쉽지 않다. 이학범 대표는 반려동물 의료 서비스에 공공재원을 투입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국가에서 동물의료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금과 관련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하죠. 동물을 키우지 않는 시민에게 동물의료 지원을 위한 비용을 부담하라는 주장은 공감을 얻기 힘들 수 있어요.” 동물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할 공공의료 서비스가 필요해 보이지만 공적 재원의 마련부터 분배까지 고려할 사안이 한 두개가 아니다. 이제 필요한 건 정부의 노력만 남았다. 문제 해결의 책임을 시민이나 수의학계에 떠안기는 게 상책은 아니란 사실을 이제는 인지할 때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