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처럼 판에 박힌 일상, 예술 땡!
  • 손의현
  • 승인 2019.05.1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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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줘서 고마워. 안봐도사는데 지장없는전시 展

좋은 전시, 열어줘서 고맙습니다.’ 여러분도 일상 속 사소함에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지 않나요? 느지막이 일어난 주말 아침이 주는 여유. 때마침 정류장에 진입하는 버스를 볼 때 안도감. 우리가 느끼는 일상 속 고마움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주변의 크고 작은 전시회에서도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죠. 이번주 중대신문은 일상 속 예술적 순간을 재조명한 전시회 <안봐도사는데 지장없는전시>에 다녀왔습니다. 반복되는 삶에 깊은 통찰을 제시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고 하는데요. 함께 살펴볼 준비 되셨나요?    

 

예술이 무한한 자유를 부여받은 건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는 예술사적 흐름이 등장한 이후부터다. 1960년대에 태동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주제와 형식을 철저히 구분한 기존 예술 사조를 비판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몰고 온 새로운 흐름은 예술을 감싸고 있던 권위주의적인 성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과거 예술이 도외시했던 ‘일상’은 고유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안봐도사는데 지장없는전시>에서는 쉽게 흘려보낸 일상이 어떻게 예술로 재탄생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미술관에서 오는 9월 15일까지 진행된다. 총 21팀의 국내외 작가의 순수미술 외에도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을 선보인다. ‘현대인의 일상’을 소재로 구성된 전시회를 하루일과를 보내듯 감상하며 자신이 경험한 상황과 당시 감정을 함께 떠올려보자.

 

 

  문 열자 선뜻! 햇살이 이마에 따스해라

  작품에서 나오는 빛이 어두운 전시 공간에 여명처럼 은은하게 퍼진다. 반짝이는 빛을 작품에 구현한 황선태 작가의 공간이다. 이시연 학예원은 선으로만 이뤄진 배경과 어른거리는 빛을 통해 일상이 서정적으로 펼쳐진다고 말한다. “황선태 작가는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자연광’을 주제로 빛을 통해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연출하죠. 빛의 자취에 따라 어렴풋한 일상의 잔상을 보여줌으로써 따스한 여운을 남기고 있어요.”

  「빛이 드는 공간(그림 ①)」 작품을 살펴보면 3개의 창문을 비추는 햇살에서 스테인드글라스가 떠오른다. 모눈지를 펼쳐두고 빛을 비춘듯한 부드러운 햇살은 어떤 기법으로 구현됐을까. 천유진 큐레이터는 LED 빛을 활용해 작품을 제작했다고 설명한다. “옆에서 보면 작품 폭이 두꺼운 걸 알 수 있어요. 여러 층의 강화유리와 보드판이 겹쳐진 스크린 뒤에 LED 빛을 쏘는 방식으로 햇살을 구성했죠.” 작품 속 그림자가 지는 부분은 어두운 반면 빛을 받는 부분은 밝고 선명해 그 빛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즉 빛과 그림자 간 명암 대비를 통해 사물의 존재성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물리학 법칙으로 풀어본 출근 시간

  큰 화면에 재생되고 있는 영상에 시선이 압도된다. 처음에는 형형색색의 모형이 빠르게 움직이는 듯했으나 영상은 곧 기계처럼 어디론가 향하는 군중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일본 작가 유고 나카무라의 「Humanity(그림 ⑤)」 영상 작품이다. 작품 속 군중의 모습에서 과학 교과서 속 원자 모형이 연상되기도 한다. 천유진 큐레이터는 출근하는 아침을 표현한 작품에서 물리학적 오브제가 드러난다고 말한다. “물리학을 전공한 유고 나카무라 작가는 물리학 법칙을 기반으로 자신의 철학을 표현해요. 나카무라 작가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디자인 작업을 거쳐 영상을 제작하는 독보적인 미술감독이죠.”

  일편적으로 걸어가던 군중이 서로에게 일제히 총을 겨누기 시작한다. 총을 맞은 사람들은 붉게 변하면서 쓰러지고 이내 사라져 버린다. 천유진 큐레이터는 작품 주제가 현대인의 삭막함이라고 설명한다. “처음에는 출근하는 군중이 등장하지만, 마지막에는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해치는 장면이 나타나요. 삭막한 우리의 모습을 묘사하는 심오한 작품이죠.”

 

  너와 나의 연결고리는 존재할까

  단순한 회색빛 배경에 인물들이 그려진 노연이 작가의 캔버스가 눈길을 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서로 다른 방면을 바라보고 있다. 노연이 작가는 거대한 도시의 삶 속 타인과 깊은 교류를 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인간관계를 작품에 반영한다. 이시연 학예원은 앞선 유고 나카무라 작가와 노연이 작가가 바라보는 현대인의 모습에 차이가 있다고 전한다. “나카무라 작가가 군중 전체에 집중한다면, 노연이 작가는 군중 속 개인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이는 모여 있는 듯하면서도 각자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관계를 의미하죠.”

  「타인들의 세상(그림 ②)」 작품 속 인물의 얼굴에서 어떠한 이목구비나 표정을 찾을 수 없다. 천유진 큐레이터는 표정이 없는 인물로 현대인의 잠식된 불안함과 공허함을 나타낸다고 전한다. “지극히 평범한 인물을 그렸으나 얼굴 그리고 표정까지 지워버렸어요. 「마음으로부터의 탈출」 작품 왼쪽에 위치한 한 남성의 가슴이 뚫려 있는 형태에서 텅 빈 마음을 묘사했죠.” 캔버스를 가르는 경계선과 어두운 회색빛 배경은 단절감을 강조한다. 천유진 큐레이터는 작품 바깥의 공간연출을 가리키며 파편화된 개인일지라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적 운명임을 강조한다. “캔버스를 재단하는 미세한 경계선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단절을 의미해요. 하지만 각각의 작품을 테이프로 이은 공간연출이 사실은 우리가 서로 느슨하게 연결돼있음을 상징하고 있죠.”

  가벼운 비닐봉지 속 무거운 의미

  너덜너덜한 하얀색 비닐이 마치 이불처럼 펼쳐져 있다. 그 뒤로 여러 비닐봉지가 차례대로 배열돼 있다. 각각 김태연 작가의 작품 「Plastic Island(그림 ④)」와 「Plastic Bags」이다. 섬유를 전공하고 직조가로 활동하는 김태연 작가는 평면 작업부터 입체 조형 작업,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시연 학예원은 현대 사회에서 쉽게 쓰이고 버려지는 비닐봉지의 물질성에 주목한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김태연 작가는 자연에서 재료를 구해 실을 짜듯, 비닐봉지를 엮어 예술작품으로 탄생시켰어요. 사물의 가치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죠.”

  천유진 큐레이터는 「Plastic Island」는 태평양의 ‘쓰레기섬’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비닐봉지 사용이 이슈화되는 지금 환경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에요. 쓰레기섬을 표현해 인간의 물질적인 욕망에 따라 쉽게 버려지는 주변 사물을 재고하게 하죠.” 또한 그는 폐비닐과 현대인의 모습이 유사하다는 작가의 작품 의도를 덧붙인다. “김태연 작가는 폐비닐이 현대인의 모습과 닮았다고 전해요. 일회용 쓰레기처럼 한때는 주어진 목적에 의해 쓰이지만 결국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하는 우리의 삶을 다룬 작품인 셈이죠.”

  <안봐도사는데 지장없는전시>의 작품들은 주변 가까이에 있는 예술을 조명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예술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예술은 우리 삶에 무궁무진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예술을 발견하자는 전시의 이야기. 무심코 지나치는 하루 속 어떤 예술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가?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근사한 작품으로 만드는 두 사진작가가 있다. 제임스 풀시스(James Popsys)와 조던 매터(Jordan Matter)다. 영국 출신 디지털 아티스트 제임스 풀시스는 떠오른 아이디어를 포토샵을 거쳐 작품으로 발전시킨다. 인터넷 공간에 일상과 상상력을 결부시킨 작품을 게시하며 많은 이의 공감을 받고 있다. 구름을 와이파이 형태로 표현한 작품에는 와이파이가 잘 연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전파를 잡으려는 모습이 재치있게 드러난다.

 

  미국 출신 사진작가 조던 매터는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Dancers Among Us)’ 전시회에서 일상적인 배경 속 무용수의 모습을 포착한 시리즈를 선보였다. 와이어나 안전장치의 도움 없이 무용수가 포즈를 취한 결정적인 순간을 작품에 담아낸다. 해당 전시는 사진집으로 출간된 이후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오, 주여!(Savior)」 작품에서 강아지를 들고 있는 무용수의 몸짓을 통해 바다라는 공간을 특별하게 제시한다.

  김민웅 교수(사진전공)는 예술은 삶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말한다. “예술은 독특하고 특별한 것이라기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에서부터 시작되는 창조적인 활동이죠.” 또한 김민웅 교수는 두 사진작가가 일상적인 대상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고 덧붙인다. “현대인이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현실적 공간인 일상과 생활에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이 혼재돼있어요. 두 작품 모두 일상적 대상을 활용해 현대인의 다양한 감정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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