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 하나하나에 소망을 담아
  • 이웅기 기자
  • 승인 2019.05.13 15: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리운 나의 형님, 사랑하는 나의 형님
박기택씨(60)

 

  -안녕하세요. 봉은사에 어떻게 오셨나요?

  “반가워요. 근처 주민센터에서 컴퓨터 수업을 듣고 나오는 길에 발걸음 향하는 대로 걸었는데 자연스레 이곳으로 들어오게 됐어요. 사람 구경도 하고 마음 정리할 것도 있어서요.”

  -어떤 마음 정리를 해야 하는지 궁금해요.

  “지난주 친형이 세상을 떠나셨어요. 몸도 호리호리하고 평소 사이클을 즐겨 탈 만큼 건강관리를 잘했는데 갑자기 암이 찾아왔죠. 지난해 수술을 마치고 괜찮겠구나 싶었는데 치료 때문에 잘 먹지 못한 탓인지 심장성 쇼크가 왔어요. 초등학생 손자가 커가는 과정을 좀 더 보고 가셨으면 좋았을 텐데….”

  -많이 속상하시겠어요.

  “마음이 허전해 이곳으로 오게 된 것 같아요. 앉아서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지내야 할지 생각해봤죠.”

  -어떤 목표를 정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집착을 조금 버리고 살아갈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물질 욕심이 많을뿐더러 경쟁도 심해 친한 사람들끼리도 서로 상처 주는 말을 하잖아요. 불교에서도 인생은 그저 하나의 순간이고 그런 욕심은 모두 허무하다고 하죠. 장례를 마치고 며칠간 일을 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렇군요. 평소 절을 즐겨 찾으시나요?

  “사진 찍으러 전국의 절을 돌아다녔죠. 대학생 때는 방학마다 두달씩 깊은 산 속 암자에 들어가 살았어요. 하숙 비슷하게요. 그 당시엔 방학 동안 절에서 공부하는 게 법대생만의 일종의 문화였거든요. 거기서 공부하면 책 내용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답니다. 홀로 지내다 보니 얘기할 상대도 없거든요.”

  -깊숙한 곳에서 혼자 머물면 무서울 것 같아요.

  “그럼요. 길에 불도 없던 시절이라 본당에서 암자까지 5km 정도 되는 거리를 초롱불만 들고 걸어 다녔어요. 한겨울 아침에 일어나면 암자 근처에 쌓인 눈 위에 짐승 발자국이 찍혀 있기도 했죠. 사람 손보다 훨씬 컸으니까 아마 곰이 지나갔나 봐요.”


아빠랑 사찰 나들이
임호기씨(47), 임현진씨(11)

 

  -부녀가 함께 오셨군요.

  현진: “안녕하세요. 문화유적을 답사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는 학교 숙제를 하러 왔어요.”

  호기: “가고 싶은 문화유적에 직접 찾아가 배운 점과 느낀 점을 사진과 함께 제출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많은 유적지 중에 봉은사를 고른 이유가 궁금해요.

  현진: “9살 때 이곳에 와본 기억이 있는데 다시 한번 오고 싶어 아빠에게 같이 가자고 부탁드렸어요. 또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저번에 왔을 때와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죠.”

  호기: “딸의 부탁으로 오늘 시간을 비웠답니다.(웃음)”

  -오늘 본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현진: “돌로 만들어진 ‘봉은사 미륵대불’이요. 웅장하기도 하고 저걸 어떻게 사람이 만들었을까 궁금했어요. 사찰 내 건물마다 그려진 문양도 인상 깊었죠. 숙제에 적어야 해서 꼼꼼히 살펴봤는데 아름다운 문양이 많더라고요.”

  -아버님께서 불교 신자이신가봐요?

  호기: “맞아요. 부모님을 따라 불교를 믿게 됐어요. 조계종 신도증도 가지고 있답니다.”

  -신도면 자주 오시겠군요.

  호기: “지금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일이 있을 때도 있지만 없을 때도 있어요. 없을 때마다 바람 쐴 겸 절에 들러 부처님께 공을 드리고 좋은 기운도 얻어가곤 하죠. 어려운 시기에 절에 오면 부처님이 저를 도와주신다는 느낌을 받는답니다.”

  -어떤 기도 드렸는지 살짝 물어봐도 될까요?

  호기: “국민이 먹고사는 데 큰 지장 없도록 나라가 잘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드렸어요. 여야를 막론하고 서로 본인들 잇속만을 챙기다 보니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를 바라요.”

  현진: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웃음) 우리 가족 화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원도요!”

 

‘가득 찬 달(滿月)’의 기도
강준구씨(27)

 

  -기도드리고 나오는 길인가요?

  “네. 용인에서 외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봉은사가 눈에 딱 들어왔어요. 마침 저녁 예불 시간이어서 동행한 선배에게 봉은사 앞에서 내려달라고 부탁했죠.”

  -어쩐지 사람이 많더니 지금이 예불 시간이었군요.

  “오후 6시에 저녁 예불이 시작돼요. 보통 1시간 정도 기도를 드리죠. 사실 봉은사는 오늘 처음으로 방문하는 거고 평소에는 직장 근처에 있는 조계사를 자주 찾아요. 조계사와 봉은사는 ‘대한불교조계종’으로 같은 종파고 저는 조계종 신도랍니다. 제 법명도 있어요.(웃음) ‘만월’이라고 합니다.”

  -독실한 만월 신도군요! 어떻게 불교에 입문하게 됐나요?

  “군 생활 중 종교 시설 방문은 하나의 이색체험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 훈련병 때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의지할 곳을 찾다가 법당으로 향하게 된 것 같네요. 논산에서 훈련병 생활을 했는데 법당 좌석이 야구장 의자로 돼있을 만큼 규모가 상당히 컸어요. 병사들을 위한 공연도 자주 열렸었죠.”

  -종교 활동이 큰 힘이 됐나 봐요. 그래서 사회에 나와서도 자주 가시는 건가요?

  “맞아요. 주말마다 시간을 내서 꼭 들른답니다. 예불은 주말 스케줄 중 하나에요. 밥 한끼를 먹는 것처럼 예불을 마치면 ‘오늘 일정 하나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제가 좋아하는 일정이기도 하고요. 오늘도 마지막 스케줄 무사히 마친 것 같아요. 인터뷰 끝나면 이제 집에 가서 푹 쉬어야겠는걸요?(웃음)”

  -그럼 마지막 질문하고 보내드릴게요! 준구씨가 생각하는 봉은사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봉은사는 빌딩으로 가득 찬 강남 도심 한복판에서 공원 역할을 해주죠. 이 근처는 걸을만한 곳이 많지 않거든요. 또 서울은 미세먼지와 열섬현상이 심하잖아요. 근데 이 주변은 뻥 뚫려 있는 봉은사 덕분에 상대적으로 공기 질이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있더라고요. 불교인에게는 종교 활동 장소면서 시민에게는 걷기 좋은 공원이 돼주는 거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