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낙태죄가 제정된 이래로 66년 만에 낙태죄가 폐지를 향한 첫걸음을   뗐다. 지난 11일 헌법 재판소(헌재)가 낙태죄 조항에 헌법 불합치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헌법 불합치 결정은 사실상 다음 단계를 국회에 맡기는 다소 아쉬운 처사다.

  지난 2012년 헌재는 낙태죄가 합헌이라 결정했다. 당시 헌재는 자궁에 수정란이 착상한 후에 태아는 모두 생명권의 주체이며, 공익을 위해 낙태를 법으로 금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신부의 자기 결정권은 사익이고, 태아의 생명권은 공익이라 주장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비롯한 결정이었다. 임신부가 짊어져야 할 사회적·경제적 책임은 고려치 않은 결과다.

  사실상 낙태죄는 사문화 된 지 오래다. 그러나 해당 조항이 존속됨에 따라 헤어진 연인이 여성을 협박하거나 가사·민사 분쟁의 압박 수단으로 악용해 왔다. 낙태는 범법이라며 여성의 자주적 결정을 틀어막는 것은 사회가 ‘여성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외부의 손에 쥐여주었음을 방증한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책임을 여성이 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거부할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  이를 등한시하는 태도는 억압과 강제다.

  66년 만에 낙태죄가 헌법 불합치로 인정된 점은 의미가 깊다. 지난 11일 내려진 “임신한 여성의 안위는 태아의 안위와 깊은 관계가 있고,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 임신한 여성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결정은 7년 만에 낙태죄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헌재는 ‘여성의 임신 유지 또는 종결 결정은 자신이 처한 신체적·심리적·사회적·경제적 상황을 고민한 전인적 결정’이라 판단했다. 즉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우선적으로 존중할 때 태아의 생명권도 지킬 수 있다는 결정이다.

  지금부턴 국회의 차례다. 당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여성의 임신 중단 지원을 위한 국민건강보험 예산을 책정하고 관련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임신부가 임신 유지 또는 중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에게 상담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간 수술 과정에서 의료 사고나 후유증에도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없던 실정을 인지하고 사회적, 제도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의 인식 성장도 중요하다. 이번 낙태죄 폐지와 관련한 변화에 망언을 자행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 일부 관련 기사에는 ‘태아 살육자’, ‘언제 낙태할지 모르므로 임산부에게 자리 양보 말자’ 등 임신부를 향한 몰상식한 댓글이 난무하고 있다. 이는 사태의 핵심을 벗어난 혐오 조장 행위이다.

  일각에서는 낙태가 무분별하게 일어날 것이라며 여전히 낙태죄 폐지에 반대한다. 이번 결정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무지하고 아둔한 접근이다. 낙태죄 폐지가 낙태를 권장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낙태로 짊어져야 하는 신체적·정신적 고통과 변화는 오롯이 여성의 몫이다. 어떤 여성도 가볍게 낙태를 결정하지 않는다.

  이제 첫걸음이다. 이번 변화가 66년간 억압됐던 권리 해방의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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