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헌혈이 끊은 
공혈의 악순환 고리

노란 스카프 물결이
파도가 될 때까지

지난 2015년 언론의 ‘공혈견’ 보도 이후 공혈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폭했다. 한 동물보호단체가 국내 반려동물 혈액 공급을 전담하는 민간업체의 위생 상태와 동물복지 문제를 지적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후 해당 업체의 사육 환경은 일부 개선됐지만 공혈견 문제를 해결할만한 법적 제도는 여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이에 관리자 자율에 맡기던 공혈견 사육 환경을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간차원에서는 공혈견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헌혈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공혈견과 달리 헌혈견에겐 복지혜택이 보장되며 자발적인 참여로 채혈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윤리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공혈견이 처한 문제 상황에 대한 대안책과 해결방안을 전문가와 살펴봤다. 


 보호는커녕 착취만 당했다


  공혈견 사육 환경이 공론화된 이후 동물권 보장에 대한 논란은 계속돼왔다. 특히 국내에 아직까지 공혈견을 보호할 법적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과 현존하는 가이드라인이 실효성을 갖지 못하는 게 문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공혈견 사육 환경이 동물 보호법의 울타리 밖에 있음에도 당장 모든 공혈견을 없애기는 힘든 실정이다. 공혈견의 규모가 공식적으로 파악되지 않았고 헌혈로 확보한 혈액량이 수요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재 운영 중인 공혈견 사육 환경에 대한 법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가 제기됐다.
전 국회의원 장하나씨는 공혈견에 얽힌 악순환 고리를 단지 공혈견만의 문제로 생각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법적으로 사육 환경이 보장되지 않은 공혈견의 혈액은 수혈받는 반려견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쳐요. 공혈견의 채혈이 이뤄지는 환경에 대한 공식적인 감사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공혈견 문제는 반려견의 건강과도 직결된다는 인식이 필요해요.” 반려견에게 수혈될 혈액이 가진 안전상의 문제를 고려하면 자연히 공혈견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시민의 관심이 법안 개정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까지는 입법에 농장주가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어요. 농장주가 부딪힐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대항이 있었죠. 동물은 투표권이 없으니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동물복지의 필요성을 느끼는 시민이 많아져야 해요. 이러한 요구가 국회에 닿으면 공혈견을 다룬 동물보호법도 개정될 수 있죠.” 장하나씨는 반려견 주인의 인식 개선과 함께 공혈견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제도가 완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열악한 사육 환경 자체를 동물 학대의 범주에 포함하는 방법도 있어요. 쾌적한 환경에서 공혈견이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게 하는 조항도 필요하고요.” 


  건강한 나눔, 유익한 실천


  공혈견을 줄이기 위한 대표적인 방안은 헌혈견을 늘리는 것이다. 동물권단체 하이의 공동대표 조영수씨는 헌혈견을 늘려 영리취득을 위한 공혈견 사육을 근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동물복지를 고려한다고 해도 동물을 영리 목적의 대상으로 두면 동물 학대는 근절되기 힘들어요. 공혈견도 마찬가지죠. 공혈견 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려견 헌혈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해요.” 


  한국헌혈견협회 대표 강부성씨 역시 헌혈견이 증가해야 공혈견 사육농장이 가진 시장 독점구조를 없앨 수 있다고 덧붙였다. 헌혈견을 늘려 병원 측에서도 공혈견에게 뽑은 피를 구매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육 농장에서 공혈견을 계속 키우는 이유는 결국 농장주가 그 사업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공혈견 사업에 있어 수지타산이 맞지 않도록 활발한 반려견 헌혈을 통해 혈액 수요를 충족해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죠.” 그는 공혈견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반려견 헌혈 캠페인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그렇게 지난해 10월 공혈견에 대항하는 반려견 주인들의 자발적인 모임은 최초의 헌혈견 협회 설립으로 이어졌다. 


  해마루 이차진료 동물병원도 지난 3월 13일부터 한국헌혈견협회와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 해마루 이차진료 동물병원 김현욱 원장은 반려견 헌혈이 가진 이점을 설명했다. “공혈과 헌혈 모두 반려동물의 의사를 확인하고 진행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동물복지 측면에서 이 둘은 많은 차이가 있죠. 공혈은 혈액을 얻기 위해 상업적으로 개를 키우지만 헌혈은 건강한 가정견을 대상으로 이루어져요.” 그는 헌혈견이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도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건강검진, 심장사상충 혹은 외부기생충 예방약, 사료나 영양제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강부성씨는 반려견 헌혈이 공혈견 수를 줄이는 데도 효과적이지만 헌혈에 참여한 반려견의 건강에도 유익하다고 덧붙였다. 


  한국헌혈견협회는 구체적인 헌혈견 기준도 제시하고 있다. 헌혈견의 나이는 2살 이상 8살 이하, 무게는 30kg 이상의 대형견을 기준으로 한다. 강부성씨는 헌혈 과정에서 반려견에게 갈 부담을 최소화하려 이 같은 기준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병원에서는 주로 25kg 이상이면 채혈에 무리가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저희는 기준을 더 넉넉하게 잡았어요. 헌혈 주기도 3개월에 1번이 아닌 1년에 1번으로 한정했죠.” 협회 측에서 제시한 기준은 단순히 반려견의 건강을 해치지 않을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채혈 과정에서 주사 바늘을 세번 이상 꽂아도 피가 나오지 않을 경우 더 이상 채혈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조항도 있다. 공혈과 구별되는 자발적 헌혈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기준을 설정한 셈이다. 현재까지 한국헌혈견협회에 등록된 헌혈견은 총 44회의 헌혈에 참여했다. 이는 대략 132마리에서 176마리의 소형견을 살릴 수 있는 양이다. 


  헌혈 선순환 계속 되려면


  강부성씨는 협회 차원에서 헌혈을 실천한 반려견 주인이 나눔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중이라고 전했다. “헌혈의 지속성을 위해 헌혈견에 대한 병원 측의 지원이나 복지 혜택이 이어질 수 있도록 힘쓰고 있어요. 헌혈을 하러 병원에 간 개와 반려견 주인이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제가 직접 동행하기도 하죠.” 그는 향후 수도권 지역이 아닌 지방에도 헌혈이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수도권은 협약을 맺은 병원도 있고 헌혈을 원하는 반려견 주인도 많아요. 헌혈을 하려면 일정 기간 대기해야 할 정도죠. 그런데 아직까지 지방에는 반려견 헌혈이 가능한 연계 병원이 없어요.” 그는 시민의 자발적인 노력과 병원 측의 배려가 함께할 때 공혈견 문제는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한국헌혈견협회는 헌혈에 참여한 반려견에게 ‘Thank Donors’라는 문구가 적힌 노란 스카프를 선물한다. 강부성씨의 반려견인 로빈도 노란 스카프를 두른 작은 영웅이다. “헌혈한 강아지에게 주는 일종의 상징적인 선물이에요. 반려견 주인 사이에서 ‘헌혈견은 노란 스카프를 맨다’는 인식이 또 다른 헌혈을 장려하는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반려인구 천만시대’라지만 윤리의식이 결여된 사회는 필연적으로 또 다른 희생을 낳을 뿐이다. 그간 음지에서 피로 치른 희생을 강요받아온 공혈견의 삶이 이를 증명한다. 이들을 향한 최소한의 법적 제도를 갖추고, 노란 스카프의 물결이 파도가 될 때 공혈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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