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망각의 수사학」은 나의 첫 평론 제목이다. 소설가 성석제에 대한 글이었는데 요지는 허무와 유머에 대한 긍정이었고 이야기의 재미가 어떻게 무의미한 삶을 견디게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었다. 언뜻 보면 산뜻한 자유주의자 선언 같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깊은 허무주의와 절망의 정념이 곳곳에 눈물자국처럼 번져있는 글이다. 2000년대 초중반 나는 이렇듯 허무주의에 몸을 깊숙이 담그고 있었는데 이 행보는 니체의 저서와 더불어 깊어지고는 했다. 기존 가치와 의미에 대한 의심과 전복, 냉소는 치기 어린 청춘의 특권이지만 80년대 끝자락에서 대학을 다닌 나에게는 또 다른 사회적 맥락이 존재한다.

  이 냉소적인 허무주의자의 포즈가 사실은 역설적으로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갈구와 초조함이었음을 나는 나중에 깨달았는데 그것은 어렴풋한 삶의 지혜와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통해서다. 이 책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겪고 난 이후 로고테라피를 창시한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사람들의 심리적 변화를 관찰한 결과 충격에서 냉담과 무감각, 최종적으로 소소한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이를 통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바로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와 “나를 죽이지 못하는 한,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라는 니체적 진실이다.

  로고테라피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 로고스(logos)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본다. 실존적 위기에 맞닥뜨린 환자에게 삶의 의미를 찾게 해 치유를 돕는 것이다. 이때 ‘의미’는 다음 세 가지 특성을 지닌다. 첫째 그것은 안락과 행복이라기보다 목표를 향한 투쟁과 시련을 뜻한다. 프랭클은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안락과 항상성이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정신적 역동성이라 강조한다. 인간은 시련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련이 의미없음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 이를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빌어 강조한다. 두 번째 ‘의미’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각자 찾아내야 하는 과제라는 것. 세 번째 ‘의미추구’는 자아실현이라기보다는 자기초월과 관련된다. 진정한 삶의 의미는 자기에게 골몰하는 것이 아닌 타인, 일 등 외부적인 것을 지향했을 때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아실현’은 자기 초월을 통해서 획득될 수 있는 부수적인 결과일 뿐이다.

  ‘소확행’이 유행하는 시절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우리 시대 모토 또한 냉혹한 경쟁 사회에서 만든 소극적인 방어기제일 수 있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그러나 수동적 견딤이 아니라 진정한 행복의 실현을 위해서는 각자 그 ‘행복’을 ‘의미’의 차원으로 옮기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은경 교수
문예창작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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