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알림장이 싫었다. 알림장에 적힌 숙제도 준비물도 아닌 짧은 메모 때문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알림장 검사를 할 때면 도장을 찍어주시며 메모를 남기셨다. 메모에 칭찬이 적힌 날이면 신이 나 학교에서의 하루를 세세히 부모님께 전했다. 하지만 “반찬을 골고루 먹지 않아요”와 같이 부정적인 문장이 적혀있는 날이면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려 안간힘을 썼으며 유치한 핑계 끝에 선생님이 별로라는 결론까지 다다르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 여기 알림장을 챙기는 초등학생 대신 취재수첩을 든 기자와 취재원이 있다.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고 하는 기자는 취재원에게 ‘불청객’이다. 불청객이 되기 싫은 기자와 그를 맞이하고 싶지 않은 취재원은 당장 서로의 눈앞에 놓인 불편함을 면하려고만 한다. 그것은 완벽하지 않은 세상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일 뿐이다.

  지난 기사에서 유학생 혐오 게시글 사건 이후 제시된 여러 방안이 실천됐는지 알아봤다. 그중 불건전 게시물을 정의하는 규정에 혐오·차별 항목을 추가하지 않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기존 운영 규정이 추가하려 했던 항목을 포함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기존 운영 규정이 해당 내용을 얼마나 포함하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보지 않았다. 좋은 소식도 아닌데 계속 캐묻는 기자에게 돌아올 부정적인 반응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알림장 속 메모처럼. 결국 기자와 취재원의 인터뷰는 신문 위 잉크의 의미 없는 흔적으로 남겨졌다.

  취재하는 내용에 따라 기자가 불청객이 되는 순간이 있다. 안성캠 통학 버스 요금 인상에 관한 기사를 작성하면서 그랬다. 여러 취재원과 인터뷰하면서 방어적인 답변에 말문이 막혔고 기사 마감 날까지 답변이 없는 상황에 힘이 빠졌다. 긍정적인 소식을 취재할 때와 다른 취재원의 온도 차를 뼈저리게 느꼈다. 알림장이 취재수첩으로 바뀌었을 뿐 부정적인 반응을 피하려는 마음이 크게 자리 잡은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사는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메모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보도 이후 변화를 들여다보는 뉴스A/S기사를 보고 알림장에 부정적인 메모가 적힌 이후를 떠올리게 됐다. 알림장에 적힌 한 문장은 다음날 먹기 싫은 오이 무침과 시금치나물을 꼭꼭 씹어 먹게 했다. “이제 반찬을 골고루 잘 먹어요” 작은 변화 뒤에는 선생님의 관심 어린 메모가 있었다. 좋지 않은 행동은 듣기 싫은 메모로, 듣기 싫은 메모는 좋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철부지 초등학생의 행동을 바꾼 것은 문제점을 적은 메모였다. 듣기 싫은 메모의 가치를 알고 나서야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기사의 가치를 깨달았다.

  변화의 시발점엔 긍정적인 평가보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부정과 긍정이 선순환할 때 신문과 사회는 발전한다. 문제가 보도되면 그것이 개선되고 긍정적인 기사로 다시 보도되는 ‘선순환’말이다. 기사의 순환을 통해 우리 사회가 성장하는 모습을 조심스럽게 상상해본다. 오가는 알림장을 통해 성장한 초등학생 시절을 떠올리며.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